| 최선희 ㈜베스트디자인연구소 대표 삶이 녹아든 공간디자인 '스페셜리스트' 되다 이현규 기자 gnnews1@gwangnam.co.kr |
| 2015년 12월 06일(일) 1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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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희 (주)베스트 디지인연국소 대표가 좋은 디자인은 일상속에서 함께 생활하고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시간이 지날수록 취업에 대한 압박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어느덧 24세가 된 그녀는 대학시절 3년동안 재밌게 배웠던 디자인에 눈을 돌렸고 겁도 없이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작은 연구소를 세워 강좌와 인테리어디자인 사업을 시작했다. 직원은 본인 고작 한명.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전국 어디든 직접 발품을 팔며 돌아다녔고 인정받으며 사세 또한 점점 커졌다. 30년이 지난후 이 여대생은 광주ㆍ전남을 넘어 전국을 대표하는 공간디자인의 전문가가 된다. 바로 최선희(여ㆍ51) ㈜베스트디자인연구소 대표의 이야기다.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겨서요.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최 대표가 기자에게 건넨 첫마디다. 사실, 최 대표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학교수와 강사를 비롯해 여러 단체의 수장, 그리고 어머니 역할까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만큼 그녀는 각양각색의 분야에서 활동중이다. 그녀에게 있어 공간 디자인 일은 천직이다. 디자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고 디자인을 사랑한다. 디자인과 관련된 질문이 이어질동안 최 대표의 얼굴에서는 자신감이 넘쳤고 미소가 떠나가질 않았다.
"24세의 철 모를 나이에 첫 사업을 시작했어요. 사업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적은 규모였지만 그때만큼 즐거웠던 적은 없던 것 같아요. 지금에 와서야 말할 수 있지만 사범대 졸업시절 학교에 취업이 안된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저에게 있어 디자인은 하늘이 내려준 천직이라 할수 있죠."
물론, 힘들때도 많았다. 직업의 특성상 국내ㆍ해외 출장이 잦았는데, 아이를 둔 어머니 입장에서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이때마다 큰 힘이 되어준게 최 대표의 친 언니다. 대기업에 다녔던 남편은 지방 출장이 많았던 터라 최 대표 언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현재의 그녀도 없었다고 말한다.
최 대표는 일 욕심이 특히나 많았다. 결혼 초기, 신혼때에도 배움의 열망을 절대 끊지 못했다. 오히려 더욱 바쁘게 살았다.
뱃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을 30세 무렵에도 주부이자 대학원생으로 교육현장과 인테리어 실무현장을 종횡무진 했다.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면서 소규모 현장에서 대규모로 업무 범위도 점점 확대됐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첫 기회가 찾아왔다.
2001년 개통된 서해안고속도로의 전구간 중 4공구의 신축 고속도로휴게소 디자인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이다.
최 대표는 화장실 디자인에 특히 신경을 썼다. 이 화장실은 당시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이용객으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해외 출장을 다녔을 때에도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녔어요.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화장실을 꾸미게 되면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깨끗함을 선사할까 항상 고민했죠. 흔히 화장실은 사람들이 볼일(?)을 보러 가는 곳 이었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아이템을 구상할수 있는 장소였던 거죠."
이후 최 대표는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그녀의 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광주ㆍ전남을 벗어나 전국적으로 일감이 몰려왔다.
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 문화원, 동신대학교 문화박물관, 광주시의회 홍보관,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홍보부스, 마인플라자, 히딩크 PC텔, 전주완주혁신도시 사인물 공사, 유탑하우스 메뉴얼 디자인 설계 등 주거부터 상업, 전시 공간까지 눈길 가는 건축물 가운데 그녀의 손길이 안거쳐 간게 없을 정도다.
최 대표는 현재 본업인 베스트디자인연구소 대표 이외에도 (사)한국여성벤처협회 광주ㆍ전남지회 초대 회장도 맡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사업 활동을 이어 가고 있는 지역 여성 벤처기업인들을 돕고 또 육성하기 위해 이 단체에서 중임을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여성 벤처기업의 홍보ㆍ전시를 비롯해 산ㆍ학ㆍ연과 연계한 심포지엄 개최, 우수한 여성벤처기업 발굴을 위한 공모전 등을 추진했다. 지난 7월 광주 U대회 기간 동안에는 우리 지역의 우수한 중소기업 제품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는 '광주전남 우수기업 제품 박람회'를 개최했다.
얼마 전에는 광주신세계와 공동으로 광주ㆍ전남지역 우수 중소기업 제품 판매전을 열기도 했다. 최 대표가 회장을 맡고 난 뒤, 70여개에 불과 했던 회원사는 현재 100개가 넘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초대 회장으로서 여벤처 협회를 이끌어온 최 대표는 지역의 신생업체가 기틀을 잡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욱 매진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사실 회장직 제의가 왔을때 많이 망설였어요. 저는 교수이고 디자이너지 벤처 협회를 맡을 만한 사업가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마 남편의 권유가 없었다면 회장직을 고사 했을겁니다. 기왕지사 시작하게 된거 여벤처 협회가 더욱 발전 할수 있게 총력을 다할거예요."
최 대표는 마지막으로 창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성 후배들을 위해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 분야에 빨리 뛰어 들어야 하고 청년 실업을 탓할 게 아니라 올바른 직업관을 가져야 한다며 조언했다.
"창업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가지만 가지고 승부를 보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요즘엔 융복합이 대세라고 생각해요. 여러 분야에 대해 고민을 해봐야 합니다. 정부측에서도 창업자를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구요."
인터뷰가 끝난 직후 그녀는 재빨리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또 다른 일을 찾기 위해서다. 지역을 대표하는 공간 디자이너, 유능한 벤처인, 존경받는 어머니에 이어 철인 최 대표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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