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남시론]정치는 공리주의다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광남일보@gwangnam.co.kr
2017년 06월 26일(월) 19:07
큰 길 근처로 이사를 왔다. 창문을 닫아도 달리는 차들이 만들어낸 소음이 스며들어 귀를 울린다. 꼭 정치 같다. 도무지 피할 길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년~BC 322년)는 ‘정치학’을 통해 ‘인간은 자연 본성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내놓는다. 그런데 근거로 내놓은 것이 ‘언어를 갖는 동물이다’라는 사실이었다. 아하! 그래서 정치가 그렇게 시끄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정치가 대체 뭘까?

정치는 살아있는 동물이라는 둥, 어제의 적을 친구로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둥 정치에 대해 별별 정의가 다 있었다. 이미 지저분하게 널릴 대로 널린 좌판에 명제 하나를 더 늘어놓는다고 흠이 될 것 같지 않아서 필자도 하나 늘어놓는다. “정치는 공리주의다.” 어떤가? 그럴듯하지 않은가? 그런데 명제가 그럴듯하려면 근거를 내놓아야 한다.

요즘 케이블 TV에서 방영하는 ‘대진제국3’을 즐겨보고 있다. 춘추전국시대(BC 770년~BC 221년) 중 전국시대(BC 402년~BC 221년) 진의 소양왕 시대가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다. 소양왕은 중국 통일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고, 제후국들의 주인인 주나라를 멸망시킨 주인공이다. 진시황은 소양왕의 증손자다.

진의 뿌리는 본래 한족이 아니었다. 중국의 변방 이민족이었고, 늘 괄시받던 약소국이었다. 그런 진나라가 중원의 나라들과 겨룰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진효공의 지지 속에 강력한 법치주의를 시행했던 법가(法家) 사상가 상앙(미상~BC 338년)의 ‘변법’이 있었다. 상앙은 태자까지 처벌하는 등 신분을 가리지 않고 엄격하게 적용한 법치 때문에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사서 태자가 왕이 된 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진은 상앙은 죽였지만 상앙의 ‘변법’은 버리지 않았고, 결국 진시황에 의해 중용된 법가의 후예인 이사를 앞세워 중국을 통일한다. 불행하게도 이사도 신분을 가리지 않고 법을 적용한 덕분에 상앙과 같은 종말을 맞는다. 국민 다수를 위한 공리(公利)가 기득권 세력의 이익 앞에 허무하게 무너진 것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무너졌다.

지금도 인문학의 보고(寶庫),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은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에 행해진 가르침이었다. 그런대도 중국은 시끄러웠다. 혼란스러운 시대를 끝낸 결정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준 것은 법가였다. 상앙과 이사가 법가 사상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 가를 보여주었다. 공맹의 사상은 지금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는 있지만, 실제로 인간 세상의 많은 불합리들을 교정하는 데는 실패했다. 진을 폄하하는 이들이 많으나, 필자는 묻는다. 진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 중국은 하루도 전쟁에서 편할 날이 없었다. 진이 폭정을 했다고는 하지만, 전쟁은 사라졌다. 폭정과 전쟁을 택하라면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선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두 개의 기차선로가 등장하고, 한쪽 선로의 누군가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 서두를 장식했다. 자연스럽게 ‘다수를 위한 행복’이라는 공리주의로 연결이 되었다. 책의 뒷부분에는 조건들을 배제한 절대적인 진리를 갈파한 인물도 등장했다. 칸트(1724∼1804)다. 칸트는 세상과 인간을 너무 몰랐다. 늘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시작해서 동네 사람들의 시계를 맞추게 했고, 조그만 도시였던 고향에서만 살았던 칸트가 조건들을 배제한 절대 진리를 얘기하기는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언제나 조건이 존재한다. 조건이 배제된 정치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때문에 언제나 국민 다수의 이득을 고려해야 한다. 맹자는 이득을 따지지 말고 인과 의를 생각하라고 양혜왕에게 한 수 가르쳤지만, 그건 책상물림의 환상일 뿐이다.

정치인들과 정당들은 입만 열리면 국민 다수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고 말한다. 그 의미는 그들 모두가 공리주의자고, ‘정치는 공리주의’라는 사실을 증거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에는 당을 따지지 않고 협력하는 점이 좀 수상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최근의 여론 조사를 살펴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80%에 가깝다. 자유한국당 9%,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공히 모두 7%를 기록했다. 4개 야당의 지지도는 모두 합해 30%다. 그들이 사사건건 ‘국민의 뜻’을 운운하고 있다. 정치가 언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탄생한 것이지만, 언어는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 국민의 뜻을 이야기 하려면 “우리 당을 지지하는 7% 국민들의 뜻에 따라 반대한다.”고 정확한 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앞뒤 자르고 국민의 뜻이라고 하면 안 된다. 이득을 얻는 이가 국민 중 누구이고, 불이익을 얻는 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밝혀주어야만 제대로 된 공리주의자다.
이 기사는 광남일보 홈페이지(www.gwangnam.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gwangnam.co.kr/article.php?aid=1498471629261766124
프린트 시간 : 2026년 03월 14일 01:5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