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균수 칼럼/ 현대산업개발 붕괴사고가 보여주는 것 주필 여균수 기자 dangsannamu1@gwangnam.co.kr |
2022년 01월 23일(일) 1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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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드러난 주요 붕괴 원인은 콘크리트 타설 무자격자 재하도급과 대리 시공, 이로 인한 콘크리트 건조기간 부족과 지지대 설치 미비 등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콘크리트 타설을 무자격자가 재하도급 형태로 시공한 정황이 드러났다.
콘크리트 타설 업무는 전문건설업체인 A사가 HDC현대산업개발과 계약을 맺었다. 붕괴 당시 8명의 작업자가 타설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A사가 아닌 장비 임대사업자인 B사의 직원들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B사는 레미콘으로 반입된 콘크리트를 고층으로 올려주는 장비(펌프카)를 갖춘 회사로 A사에 장비를 빌려주는 임대 계약을 맺은 곳이다.
원칙적으로는 B사가 장비를 이용해 콘크리트를 고층으로 옮겨주면 타설은 골조 계약을 맺은 A사가 전문성을 가지고 직접 해야 한다.
그러나 콘크리트 운반과 함께 콘크리트 타설까지 일괄로 B사에 맡겨지면서 B사의 직원들이 이른바 ‘대리 시공’을 했다.
법률 관계상 불법 재하도급이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원청→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재하도급의 구조를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부실시공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며 재하도급 행태는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이러한 행태가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원청에서 하청과 재하청으로 내려갈수록 공사비가 깎이게 됨으로써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 부실시공이다.
지지대를 충분히 설치하지 않아 최상층 타설 무게를 버티지 못한 구조물이 무너진 것이란 추정도 제기되고 있다.
현산은 당초 39층 바닥 면 슬라브 두께를 15㎝ 타설하겠다고 당국의 승인을 받고, 무단으로 설계를 변경해 실제로는 35㎝ 두께로 콘크리트를 타설한 것으로 드러났다.
콘크리트 타설 두께를 2.3배 늘리고 공법도 바꿨다면 하중을 고려한 안전 보강 계획이 다시 세워져야 했으나 지금까지 드러난 사진자료 등을 살펴보면 보강작업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고는 처음 사고가 났을 때 만해도 외벽붕괴로 알려졌으나 수평 판상인 슬라브 등 안쪽 구조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슬라브가 무너졌다는 것은 타설 공사가 진행 중이었던 층의 아래층들에서 임시기둥 등 지지대를 애초에 설치하지 않았거나 기술적인 판단 미비로 일찍 철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콘크리트 반죽을 굳히는 양생 기간이 부족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늦어진 공사 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무리하게 서둘러 공사를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겨울철에는 콘크리트가 잘 마르지 않아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굳혀야 하는데 공정이 부실해 거푸집 하층부가 무게를 지탱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시공사가 계획했던 골조 공사 마무리 기간은 12월 말까지였지만 1월 초까지도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공사 기간이 늘어지면 공사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하는 것은 물론이다. 자칫 입주예정일을 맞추지 못하면 지체보상금도 감수해야 한다.
늦어진 공사기간을 단축하려다 보니 영하의 날씨에도 콘크리트 타설을 강행하고 충분한 양생 기간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공사를 진행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향후 수사를 통해 콘크리트 타설 공사의 재하도급 등 불법성, 현장에서의 부실시공 여부 등을 가려낼 방침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하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건설업계에서 후진적 참사는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 광주 화정아이파크 신축공사 붕괴사고는 안전을 도외시한 또 하나의 ‘인재’라는데 이견이 없다.
고질적인 하도급과 저가낙찰 관행은 언제 어디서든 이번과 같은 사태를 재발시킬 수 있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이 먼저인 건설업계의 구조적 시스템을 개조하지 않는 한 현장 노동자는 더 이상 산 목숨이 아니다.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인 건설 노동자 6명이 불법 하도급과 무단 설계 변경 등의 부조리 속에서 일하다가 죽거나 실종 당했다. 안전이 100% 확보됐을 때라야 일하는 세상은 대체 언제나 올 것인가.
여균수 기자 dangsannamu1@gwangnam.co.kr 여균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