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색채 배제…흑백대비의 화면 구성에 방점 [남도예술인] 서양화가 이석원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
| 2024년 03월 07일(목) 1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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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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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련’ |
그의 작업실은 2층에 자리하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이지만 산골이라 추워 난로에 의지해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계단을 타고 작업실로 가니 난로 옆을 빼면 냉골이었다. 난로에 의지한 채 그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목포교대를 거쳐 전남대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한 뒤 미술교사로 5년을 재직했다. 어찌보면 그는 교사 5년과 미술문화원 20년을 합하면 대략 25년 넘도록 초등학교 건물에서 동고동락해온 셈이다.
그의 작업은 아크릴 물감을 주사기에 주입해 입체적 화면 구축을 위해 쏘아 쌓아올리는 기법을 구사한다. 그러다보니 작업 시간이 만만치 않다는 후문이다. 아크릴이 굳기를 기다려야 다시 쌓고 하는 작업들을 수행할 수 있어서다. 유화 물감을 쓰지 않는데는 아크릴보다는 굳는 시간이 더디기 때문이다. 작가 스스로 노하우를 찾아냈으며, 노하우를 축적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 방식이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제가 하는 작업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닙니다. ‘무신도’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그 영향도 있어요. 초창기에는 염원과 기원, 안녕, 만복, 명상을 모티브로 작업을 했죠. 여기에 오방색을 주제로 한 채색화를 구사했다는 이야기예요. 언제부터인가 조금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색을 줄여나갔습니다. 그래서 주제는 그대로 살리되 다른 화가들처럼 담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붓을 벗어나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이죠.”
그가 논문으로 선택했던 ‘무신도’(巫神圖)는 무당들이 받들고 모시는 여러 신들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무신도’를 공부하며 민속적 염원 등이 함축된 민간신앙, 더 나아가 전통 사상과 조우했다. 그는 ‘무신도’에는 갸름한 얼굴은 없고 모두 보름달같은, 복스런 얼굴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복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형상을 갈구한 근거이자 민초들의 소원과 기원의 열망이 담긴 증거라는 설명 또한 잊지 않았다. 그는 ‘무신도’의 세계를 공부하며 회화적으로 접근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삶의 근원과 전통에서부터 현대적 사유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유해 나간 것이다.
그는 ‘자신만 좋은 작업보다는 가족의 안녕 등 보편적인 소망이 무엇일까’를 생각한 것을 계기로 색을 다소 없애 사군자에 대한 전통적인 재해석을 시도하는데 몰입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그의 회화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면에는 입체가 존재한다. 평면이지만 화면이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하는데 집중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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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화가 이석원씨는 “평범한 인물과 풍경을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 보편적인 감성을 표현하면서 입체적 작업을 구현하는 작가로 기억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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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
또 그는 시력적인 부담감이 커져서 한편으로 걱정이다. 하지만 조형언어를 가미하는데도 열심히 임한다. 가령 지난해 6월에 열린 ‘코리아아트페어’에 다른 화가들은 주로 평작작품을 대다수 출품했지만 그는 모노크롬 작품을 출품했다.
중요한 점은 장르 구별보다는 재료 구현을 통해 하는 표현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화려한 채색을 구사했고 오방색을 주제로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식상하고 피로감을 느끼게 됐죠. 그래서 우리 것이면서 편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모색했어요. 가령 흰 여백에 흰색 또는 그대로 살려 입체성을 확보했어요. 대비 효과를 거두기 위해 검은 먹 대신, 다른 검정을 표현하는 데 치중해 왔습니다. 이렇게 작업을 한 지 10년이 지났죠.”
그는 초창기 딱딱한 스티로폼을 잘라서 작업을 하다가 보관이 어렵고 해서 영구적으로 해나가기에는 어렵다는 판단 아래 서서히 물감으로 옮겨 왔다. 처음에는 굵게 표현됐지만 점차 섬세함을 생각하게 되면서 포착된 게 주사기였다. 주사기 작업 이전에는 종이컵을 오브제로 작업을 벌였다. 이때가 2005년 초다. 평면화와 병행하던 무렵이다. 물론 민족적인 것도 추구했다. 그래서 종이컵 오브제는 그를 상징하는 기법이었다.
그에게는 몇 차례 기법에 변화를 일으킬만한 계기가 찾아왔다. 1976년 전남도전 입선을 통해 화단에 존재감을 알린 그는 풍경화가 아닌, 인물화 작업을 이 무렵 집중했던 일과 1986년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렸던 한국화가 박생광 화백 1주기 추모 전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일, 그리고 논문으로 다뤘던 ‘무신도’가 그것이다. 그의 인물 작업은 보편적 인물을 탈피해 원근감이 살아있는 인물화를 추구, 그만의 독창적 화면을 구현해냈다.
그런데 그의 인물화에는 뚜렷한 특징이 포착된다. 인물 표현 중심의 구상화 시기와 민화 바탕의 내면화 시기, 오방색 중심의 색채 시기, 오방색과 오브제의 혼용 시기, 오브제 사용과 입체화 시기, 수묵화 기반의 입체화 시기가 차례대로 병존했다. 이런 시기를 거친 그의 인물화는 한층 더 깊이를 더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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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병’ |
“저는 머물러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시대가 빠르게 변화해 가고, 사람들의 생각도 변화해 가는데다 자꾸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잖아요. 그것들을 모두 수용해 어떤 모티브로 구현할까가 가장 큰 고민입니다.”
최근 그는 전통수묵화에 내재된 담백하고 절제된 표현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구현하기 위해 화려한 색채를 배제하고, 모노크롬적인 흑백대비로 화면을 구성해 나가는 동시에 현대적 조형어법으로 단조로운 화면에 생동감있는 변화를 주기 위해 아크릴 물감을 쌓아올려 입체적 화면을 구현하는데 진심이다.
그중 ‘매화’ 시리즈는 전통수묵의 사군자와 맥락을 같이 하며 이를 현대 트렌드에 맞게 조형언어로 재해석한다. 캔버스의 흰 바탕 위에 하얀 아크릴 물감을 겹겹이 쌓아올려 고결함과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표현해낸다.
마지막으로 그는 ‘미술계로부터 어떤 화가로 인식됐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대해 ‘꾸준히 자기변화를 추구하는 작가’라는 답을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평범한 인물과 풍경을 그리는 작가가 아니라 보편적인 감성을 표현하면서 입체적 작업을 구현하는 작가로 기억되길 희망하죠. 더 나아가 꾸준하게 자기세계에 변화를 추구하는 작가로 평가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고선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