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돕는 아트 매개자…"늘 예술 가까이 했으면"

[남도예술인] 클래식큐레이터 전수아
음악·미술 작품 접목 레퍼토리…기획무대 선봬
‘미술관음악회’·‘그림 속 음악 이야기’ 콘셉트
공감각 프로그램 개발·콘텐츠 브랜드화 계획도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2024년 03월 14일(목) 18:34
클래식큐레이터 전수아씨는 “클래식큐레이터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을 해설하고 소개하는 일이다.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즐기는가는 그것을 수용하는 스스로의 몫이 큰 데, 매개자로 더욱더 할 일을 즐겁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기획공연 ‘미술관 음악회’ 전경.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년 네로. 버려진 개를 데려와 극진히 간호한 그는 풍차 전소 사건에 휘말리고, 연로한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생계가 어려워진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미술대회에서 입상을 거두지 못하면서 지쳐버린 그는 루벤스의 명화를 보기 위해 눈보라 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성당 바닥에서 개와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애니메이션 ‘플랜더스의 개’는 벨기에 앤트워프의 마을이 배경이다. 성모마리아 성당 안, 고딕 양식의 웅장한 길을 따라 걸으면 비로소 루벤스의 제단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마주할 수 있다.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작품이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 순간에 이 제단화를 찾았을까.

그게 너무나 궁금했던 그는 벨기에행 티켓을 끊었다. 작품 앞에서 네로의 미술을 향한 열정, 그 간절한 마음을 비로소 이해했다고 한다. 네로와 같은 마음으로 기획무대를 꾸리게 됐다. 음악과 미술을 접목한 무대를 선보이는 ‘클래식큐레이터’ 전수아씨의 이야기다.

주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사용되는 큐레이터라는 용어를 클래식 뒤에 얹으니 어쩐지 생소하지만, 클래식큐레이터 역시 콘서트 가이드처럼 무대를 이끈다. 클래식 음악을 무대별 주제에 맞게 큐레이션해 당대 시대상 등 배경지식과 함께 들려주는 것이다.

다만, 그는 한 장르에만 치우치지 않고, 클래식 음악과 미술작품을 한 데 엮은 무대를 선보인다. 자료를 수집·연구·분류를 통해 여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교육 및 홍보까지 담당하는 콘텐츠 기획자 등 폭넓은 의미에서 여러 분야에 걸쳐 쓰이는 큐레이터와 클래식이 결합된 의미라는 이야기다.

사실 음악과 미술을 연결짓는 무대는 종종 있어 왔다. 하지만 그처럼 클래식큐레이터라는 수식어를 내걸고 클래식과 미술 작품을 전면에 내세운 기획 무대를 꾸준히 선보이는 것은 흔치 않다.

그는 “제 공연의 수식어인 ‘클래식큐레이터’는 클래식 음악과 그림을 매칭해 큐레이팅한다는 정의로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2년 5월 빛고을아트스페이스에서 올린 기획공연 ‘미술관 음악회’.
전수아씨가 벨기에 앤트워트 성당에서 루벤스의 제단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를 감상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은 물론이고, 미술의 조예도 깊어야 한다. 조선대학교에서 예술학 연구로 박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여러 장르로 이뤄진 예술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여덟 살에 피아노를 시작, 음악에 발을 내딛었다. 교회 반주를 했으면 하는 부모님의 권유였다. 넷째인 그를 포함해 네 남매가 모두 피아노를 배우게 됐다. 이들 중 그는 피아니스트이자 예술학 전공 클래식큐레이터로 성장했고, 첫째 오빠는 현재 지휘자로 나주시립합창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피아노를 줄곧 친 그는 조선대 사범대 음악교육과를 거쳐 동 대학교 일반대학원 음악학과를 졸업했다. 삶 전반을 음악과 함께한 그는 어느 순간 음악이라는 틀을 넘어 예술영역에 가닿고 싶다는 갈증을 느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피아노가 잠시 싫증이 나더라고요.(웃음) 늘 제 연구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죠. 10여년 전부터 취미로 그림을 배웠어요. 광주 피아노 두오협회 회원, 미술단체 미인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죠. 예술학 박사과정에 들어서면서 제 이름을 딴 秀(수) art 기획이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제가 그린 작품의 저작권을 등록하기도 했죠. 미술 작품을 좋아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구매도 하고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보면서 클래식과 그림을 엮는 무대를 기획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대기만성’(大器晩成)입니다. 공부에는 끝이 없고, 무엇이든 꾸준히, 겸손한 자세로 배워나가면 언젠가는 그 그릇이 채워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공연을 해설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무대를 위해 연구한 자료들로 클래식 음악과 미술작품을 매칭해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든다. 음악과 미술의 연계된 접점을 찾아 회화에서 음악적 요소를, 음악에서 회화적 요소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감각적인 공연이 그것이다.

그렇게 첫 선을 보인 게 지난 2022년 5월 빛고을아트스페이스에서 올린 ‘미술관 음악회’다.

삶의 궤적이 비슷한 음악인과 미술인을 매칭해 조명했다.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반려자이면서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렸지만 연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첼리스트 자클린 뒤 프레와 멕시코 민중벽화의 거장인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이자 교통사고로 인해 신체적·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화가 프리다 칼로를 연결짓는가 하면, 시인이자 서양화가인 윌리엄블레이크의 작품을 읽고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 미국 현대 작곡가·피아니스트인 윌리엄 볼컴과 팝아트 및 신사실주의 미술에 영향을 미친 미국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를 연결짓는 식으로, 이들의 삶과 예술세계를 들여다봤다. 이외에도 피아졸라와 피카소 및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을 연계한 무대를 올리기도 했다.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는 전수아씨.
전수아씨가 아트투어를 위해 찾은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서 페이메이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감상하고 있다.
두번째 공연은 오는 4월4일 오후 7시30분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아트홀에서 열린다. ‘그림 속 음악이야기’라는 주제로 채워질 이번 무대는 미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곡들로 이뤄진다.

리스트가 연인인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이탈리아 여행 중 보나미코 부팔마코의 ‘죽음의 승리’를 감상한 뒤 강렬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는 ‘죽음의 춤’, 러시아 작곡가 무소르그스키가 친구이자 화가인 하르트만이 급사하자 유작을 모아 열린 전람회에 전시된 10개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전람회의 그림’, 드뷔시가 루브르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프랑스 화가 장 앙투안 와토의 회화 ‘키테라섬의 순례’를 보고 영감을 얻은 ‘기쁨의 섬’ 등이 관객들을 기다린다. 이와 함께 라흐마니노프가 스위스 화가 뵈클린의 ‘귀향’을 보고 영감을 받아 완성한 ‘프렐류드’, 엔리케 그라나도스가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을 보고 작곡한 ‘고예스카스’ 중 ‘비탄 또는 처녀 그리고 나이팅게일’ 등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지역 음악인들의 연주로 꾸민다.

그는 지난해부터 이같은 기획무대 뿐만 아니라 국내 첫 해양치유센터를 개관한 완도에서 치유음악회를 기획, 연구하고 있다. 향후에는 미디어 공연예술 등 창의적인 공연 콘텐츠로 브랜드 공연을 제작하고 싶다는 계획이다. 또 어린이들이 예술적 감각을 공유하고 사유할 수 있는 힘과 사회성을 길러 지경(地境)을 넓힐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할 뜻을 내비쳤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트투어를 다니는 것은 앞으로도 지속해나갈 전망이다.

끝으로 그는 사람들이 늘 예술을 가까이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들려줬다.

“클래식큐레이터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예술을 해설하고 소개하는 일이죠.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즐기는가는 그것을 수용하는 스스로의 몫이 큰 데, 저는 매개자로 더욱 더 할 일을 즐겁게 하고 싶죠. 관객들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일이 제가 겸허히 할 일이라 생각해요. 저를 통해서 관객들이 공연 한 편 혹은 그림 한 점, 음악 한 곡에라도 관심을 갖고 예술을 가까이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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