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골프장 ‘배짱영업’ 이대로 괜찮나 정현아 경제부장 광남일보 @gwangnam.co.kr |
2024년 08월 11일(일) 17: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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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앉아서 하는 행위 중에 제일 쾌락을 느끼는 것은 마작, 누워서 하는 행위의 최고는 섹스, 그리고 서서하는 행동 중에 최고는 골프라고 한다. 골프는 어려운 운동 중 하나다. 14개의 채를 두루 잘 다뤄 보다 적은 타수를 기록하는 기술을 익히기도 쉽지 않거니와 시간과 비용, 동반자 확보, 체력, 가족의 이해와 협조 등 여러 조건을 갖춰야 비로소 즐길 수 있다. 물론 골프가 심신을 단련하는 스포츠로서 효용이 얼마나 높은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운동을 빙자한 놀이라고 낮춰보는 이도 적지 않다. 갖춰야할 여러 조건과 효용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단점을 “너무 재미있는 것이다”고 답하는 골퍼가 있을 정도로 골프는 도파민 중독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스포츠다.
2022년 기준 국내 골프산업 규모는 자그마치 20조원에 이른다. 어른들의 놀이로 여겨졌던 골프가 지난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 시기 동안 비정상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이 코로나 감염 우려로 제약을 받은 반면 골프는 야외, 비대면 스포츠라는 이유로 제약 없이 즐길 수 있었다. 코로나로 통제된 상황 속에서도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유, 과시하는 바람을 타고 젊은층들이 골프 시장에 대대적으로 유입됐다. 골프장에 나가보면 라운딩보다 사진찍기에 골몰하는 청춘남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골프 의류업계가 급성장하고 골프장마다 부킹 전쟁이 벌어졌다.
덩달아 골프장 이용료는 천정부지로 올랐다. 그린피는 물론 카트비를 변칙적으로 올리는가 하면 비싼 식음료비에 심지어는 클럽하우스 이용료랍시고 별도의 서비스 요금을 받는 얌체 골프장까지 생겨났다. 코로나 특수를 누리면서 대놓고 ‘배짱장사’를 했다.
그러는 사이 젊은 골퍼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골프장을 찾았지만 도파민이 뿜어져 나올 정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골프라는 것이 한두 해 연마한다고 곧바로 ‘손맛’을 알 만큼 실력이 늘지 않은 특성을 간과했던 것이다. 골프복 대여 서비스까지 이용하며 화려함을 뽐내던 SNS 인증도 사계절을 지나고 보니 시들해졌다. 무엇보다 지갑의 두께가 얇은 젊은층이 감당하기에 골프 플렉스(flex)는 너무 버겁다.
장년층도 슬슬 골프장을 떠나고 있다. 당장 과소비를 강요하는 골프가 부담스럽고 불투명한 미래가 두려운 현실 인식이 원인인 듯하다. 압도적인 가성비를 앞세운 파크골프도 골퍼를 노골적으로 빼가고 있다.
천년만년 호황일 것 같던 일본의 골프산업이 장기불황의 시기 ‘잃어버린 30년’ 동안 나락으로 떨어졌다. 더 가까이는 무려 31개의 골프장이 골퍼의 등골을 빼먹다 엔데믹 후 이용객이 급감한 제주도에서는 굿샷 소리보다 비명이 더 크게 들린다는 한탄이 나온다.
전남지역도 골프장이 44개에 이른다. 알게 모르게 거대한 골프시장을 형성하고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경기불황 속에 골퍼가 빠져 나가고, 일본·동남아 등 해외 골프장과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골프장들의 높은 콧대가 조금씩 낮아지는 기미가 보인다. 선착순 특가, 여성 우대 등 갖은 명분으로 가격할인 경쟁을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그린피를 내리지 않고 서로 눈치를 보며 버티기를 하고 있지만 임계점은 멀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임계점 그 이후다. 골프장 하나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고 전남의 골프업계가 공멸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선제적인 가격 인하와 서비스 개선에 골프장 업계는 물론 자치단체가 나설 때다. 일본과 제주도의 골프산업 붕괴가 우리 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