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희망의 식탁

조길예 광주지속협 지속가능한먹거리전환위원회 고문·(사)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

광남일보@gwangnam.co.kr
2024년 11월 03일(일) 20:09
조길예 광주지속협 지속가능한먹거리전환위원회 고문·(사)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
[기고] 과학자들은 인류가 이제 ‘미지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한다. 지구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년부터 양상과 규모 면에서 전례 없는 기후재난들이 발생하고 있다. 섭씨 75도까지 치솟았던 중국 신장지구의 폭염, 40도까지 올랐던 브라질의 겨울 폭염, 사막에 호수를 만들어낸 집중호우 등 기후와 생태시스템이 이미 회복력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를 넘으면 안된다. 1.5도는 ‘정치적 협상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물러설 수 없는 물리적 한계치’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유엔 기후협상에 참여하는 전세계 국가들이 이 목표에 합의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은 1.58도 상승했다. 올해 가을부터 시작되는 라니냐로 인해 일시적으로 기온이 낮아질 수 있지만, 과학자들도 이제 1.5도 상승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육지의 생태계와 바다는 그동안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절반을 흡수해줬다. 지구가 아직 1.5도를 넘지 않은 것은 생태계의 엄청난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발표된 지구건강체크 Planetary Health Check 보고서에 따르면 생물다양성 손실, 수자원 고갈, 벌목을 통한 토지개발, 토양과 해양생태계의 질소와 인 축적, 플라스틱과 화학물질 오염 등의 영역에서 지구는 이미 위험 한계선을 넘었다고 한다. 인간의 학대를 견디며 균형과 조절자의 역할을 하던 자연의 도움이 끝나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는 가뭄과 산불로 인해 나무와 토지가 탄소흡수원으로서의 기능이 멈췄다고 한다. 올 여름까지 이어진 엘리뇨로 인해 해수면의 온도도 급등했다. 온난화 열기의 90%를 흡수해주던 바다의 역할에도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과학적 지표들이 보여주듯,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의 시간은 너무 짧고 상황은 절박하다.

2021년 UN IPCC(유엔 기후변화 협의체)는 이 같은 상황에 비추어 향후 10년간은 온실가스 중에서 특히 메탄가스 감축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대기 중에 머무는 기간이 100년 이상인 이산화탄소와 달리 메탄은 12년 정도면 대기 중에서 대부분 사라지는데, 이 기간 동안 이산화탄소보다 80배나 강력한 온난화효과를 발휘한다. 메탄을 줄이면 지구를 냉각시키고, 기후를 안정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 전세계 메탄 배출의 32%는 축산업에서 기인한다. 메탄은 소와 양의 소화과정과 가축의 방귀와 분뇨에서 발생한다. 축산업의 메탄에서 자유로운 비건채식은 현재의 국면에서 매우 효과적인 대응 전략이 될 수 있다.

식단의 전환 없는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 과학자가 제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2030년까지 배출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에는 50억t의 총배출을 탄소흡수원에서 상쇄시켜 혹은 ‘넷제로(Net-Zero)’, 즉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6년 미국국립과학원 회보에 실린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식생활을 계속할 경우, 2050년에는 먹거리 단일 영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무려 114억t에 이를 것이라 한다. 에너지 분야를 비롯한 다른 영역에서 완전한 탈탄소에 성공해도, 지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먹거리 영역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만으로도 탄소중립 목표치의 2.3배를 넘기 때문이다.

농경지의 80%는 축산업에 사용된다. 여기서 인류가 얻는 칼로리는 18%에 불과하다. 육식 때문에 더 많은 땅이 필요하고, 더 많은 땅을 경작하기 때문에 화석연료로 만든 비료와 더 많은 에너지가 사용된다. 비료와 축산분뇨 속의 질소와 인 성분은 땅에 축적돼 독성층을 형성할 뿐 아니라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 녹조와 해양데드존의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발생하는 녹조는 이제 강과 바다 생태계 뿐 아니라 녹조 독성으로 오염된 수돗물과 농업용수를 통해 우리의 삶과 건강에 직접적인 위해 요인이 되고 있다.

2019년 통계 기준 우리 국민 1인당 하루 육류 섭취량은 186g이다. 하루 수산물 섭취량은 191g으로 전세계 1위이다. 네이처 푸드에 발표된 옥스퍼드 보고서를 보면 하루에 100g의 육류를 섭취하면 1일 온실가스 배출량이 10.24㎏인데 비해, 비건은 2.47㎏에 불과하다. 비건채식을 하면 온실가스를 무려 75%나 줄일 수 있다. 수질 오염과 토지 이용량도 75% 줄어든다. 생물다양성 손실에서도 그 피해를 66%나 줄이고, 물 사용도 54% 줄어든다고 한다. 우리가 식단을 바꾸면, 위기는 상당 부분 완화될 것이다. 비건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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