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광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국경의 밤
김성배

광남일보@gwangnam.co.kr
2025년 01월 01일(수) 17:56
국경의 밤(화가 한희원 삽화)
검정 점퍼 차림의 사내가 배낭을 들고 다가왔다. 부스 중간의 반원형 구멍으로 여권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사내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오른쪽 귓불부터 입술까지 이어진 흉터가 눈에 띄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는 탓에 그 흉터는 독을 품은 살모사처럼 위태롭게 꿈틀거렸다. 여권을 펼쳐 스캐너에 갖다 대자 모니터에 정보가 떠올랐다. 스물두 살, 시리아 국적의 사내는 입국 부적격자였다.

“웨이트 어 미닛.”

그렇게 말해놓고 책상 아래의 버튼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양손을 허공에서 허우적대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쏟아냈다.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기선 너머로 이스탄불발 유나이티드 항공 747기의 승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사내가 애타게 동조를 구했지만 모두 무심하게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보안요원 두 명이 바쁜 걸음으로 나타나자 사내는 부스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제발…….”

그의 입에서 뜻밖의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내가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사내는 보안요원들에게 붙들린 채 입국장 좌측의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생수병을 집어 들어 몇 모금 마셨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지는 일이었다. 입국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은 송환대기실에서 잠시 머물다가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금발머리의 여자가 부스 앞에 섰다. 스물다섯 살, 루마니아 출신, 평상복을 입고 있었지만 여권 사진은 군복 차림으로 찍은 것이었다. 최근 들어 동유럽 출신의 여군들이 유흥업소 취직을 위해 입국하는 경우가 잦았다. 거친 피부 위로 덕지덕지 발라놓은 화장이 볼품없이 떠 있었지만 특별히 문제될 만한 점은 없었다. 나는 입국 허가 도장을 찍어주고 여권을 건넸다. 곧바로 작은 체구의 사내가 다리를 절룩이며 다가왔다. 뭔가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자리에 서면 으레 그런 마음이 되는 모양이었다. 입국이 불허되면 장시간의 비행이 허사가 되고 국경 너머의 세계와 조우하지 못한 채 돌아서야 하므로 누구라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방문 목적을 묻자 알제리 출신의 사내는 안산 인근에 있는 섬유공장에서 받은 고용허가서를 보여주었다. 그의 여권에도 입국 허가 도장을 꾹 눌러 찍었다.

입사 초기에 선배들은 두 가지를 충고해 주었다. 무표정을 유지하고 말을 아끼라는 것이었다. 감정을 드러내거나 말을 섞다가 종종 곤란한 일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 일을 하게 된 뒤로 표정이 단순해지고 말수가 줄어든 건 그래서였다. 반면에 후각은 좀 더 예민해졌다. 여행객들의 옷에 배어 있는 이국땅의 내음, 구취, 향수 취향은 가로 1.5미터, 세로 2.5미터의 좁은 부스로 삼투압 되듯 전해졌다. 이제는 냄새만으로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차릴 정도가 되었다. 퇴근해서 집에 가도 그 냄새는 여전히 코끝에 맴돌았다.



대기선 너머는 비어 있었다. 몰려오는 승객들을 상대하고 나면 특히 왼쪽 어깨가 콘크리트처럼 딱딱해졌다. 오른손으로 한참 동안 어깨를 주무르고는 생수를 몇 모금 더 마셨다. 입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만성 탈수 증세였다. 의사는 소장의 수분 흡수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규칙적인 운동과 함께 물 섭취를 두 배로 늘리라고 권했다. 고개를 가만히 흔들다가 전방을 바라보았다. 오십여 미터 앞으로 통유리가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스크린 같은 유리 너머로 하루 종일 여객기들이 이륙하고 착륙하는 모습이 비쳤다. 밤이 되면 스크린은 어둠에 잠겼지만 이따금 먼 곳에서 오는, 혹은 먼 곳으로 떠나는 여객기들의 불빛이 허공을 밝혔다.

갑자기 통유리 너머로 눈발이 흩날렸다. 시베리아에서 발달한 대륙고기압이 한반도 북쪽으로 남하해 눈을 몰고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맞을 모양이었다. 벌써 제설차들이 꼬리등을 밝힌 채 활주로를 오가기 시작했다. 경험으로 봐서는 폭설의 조짐이었다. 결항 사태가 빚어지면 수많은 승객들의 발이 공항에 묶이고 극심한 혼잡이 벌어질 터였다. 물을 한 모금 더 마셨다. 부스 한쪽의 문이 열리고 교대 근무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수인계를 한 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로비로 나온 사람들이 자신을 기다리던 이들과 만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가 상대를 꽉 끌어안았다. 가슴 한편이 시려왔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몇 시에 오니?>

아버지가 보낸 메시지였다. 답장을 보내려다 말고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살폈다. 사할린의 부세 호수였다. 눈 덮인 호수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광활했고 아름다웠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는 카자흐스탄의 우슈토베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이었다. 그곳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사할린으로 이주했고 러시아 여자와 혼인해 아들을 낳았다. 이반, 아버지의 러시아 이름이었다. 사할린대학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한국에서 출장 온 대기업 직원을 만나 결혼했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내의 나라에 왔다.

티브이에서 고려인들의 삶이 비칠 때면 채널을 돌리곤 했다. 동질감이 아닌 낯선 경계심만 일었다. 어렸을 적 또래들이 다른 피부색과 생김새를 갖고 놀려도 개의치 않았다. “너희가 뭐라 하든 나는 한국 사람이다, 한국 사람이다!”를 속으로 되뇌었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틈만 나면 “사할린으로 이주하자!”는 말로 어머니를 자극했다. 대기업 기획실에서 승승장구하는 아내에 대한 열등감이 그런 식으로 표출됐는지도 몰랐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해에 어머니가 운전하던 차를 덤프트럭이 들이받기 전까지 부부싸움은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이번에는 사무국에서 온 메시지였다.

<전 직원 비상근무 해주세요. 예외 상황이니 양해바랍니다!>

그때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폭설로 인해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되었다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어디론가 뛰어가는 보안요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통유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제설 작업이 한창이었지만 거침없이 쏟아지는 눈을 치우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건물 동쪽의 제한구역으로 들어섰다. 복도는 적요했다. 띄엄띄엄 천정에 박힌 등들이 희미한 빛을 뿌렸다.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유리문 너머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307호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한 사내의 옆모습이 시선을 끌었다. 그 시리아인이었다. 사내 앞으로 남자 직원과 통역으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고, 조금 떨어진 의자에서는 가스총을 찬 보안요원이 무료한 표정으로 다리를 꼰 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내가 양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린 채 무언가를 설명할 때마다 통역관이 그 말을 직원에게 전했다. 직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밖으로는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아서 자막 없는 무성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다시 걸음을 옮겨 복도 끝 301호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날카로운 눈매의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매일 같은 일을 하는 이들 특유의 권태에 물든 목소리였다. 그런 사람들이 때로 무서울 정도로 고압적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관공서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발급받던 모습이 떠올랐다. 등줄기에 땀이 배었다.

“비상근무를 하라는 메시지를 받았거든요. 오늘 제가 집에 일이 있어서…….”

직원이 소속과 이름을 묻고는 키보드를 두드려 조회했다.

“지시대로 하셔야겠는데요.”

집에 꼭 가봐야 한다고 하자 직원 미간의 주름골이 깊어졌다.

“한국말 못 알아들어요?”

“......네?”

“불만 있으면 위에 직접 건의하시든가요.”

직원이 신경질적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걸 보다가 사무실에서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통화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분명 괜찮다며 담담하게 굴겠지만 속으로는 실망할 게 뻔했다. 구부정한 모습으로 밥상을 차릴 모습이 떠올랐다. 근무 때문에 오늘 못 가요.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307호실 앞에서 다시 걸음을 멈췄다. 시리아인의 모습이 보였다. 통역관과 직원은 보이지 않았고 보안요원만이 여전히 다리를 꼰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시리아인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는 울고 있었다.

*

집안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거실 커튼을 걷자 희미한 새벽빛이 스며들었다. 빌라 건물 앞의 목련 나무가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채 서 있었다.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렌지주스를 꺼내려는데 네모난 치킨 포장 용기가 눈에 띄었다. 전날 모친을 추모하는 밥상에 올랐던 모양이었다. 주스를 한 잔 마시고 거실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밤샘 근무를 마치면 누군가 어깨에 올라앉은 듯 몸이 무거워졌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벌써 여러 해째 불면에 시달리고 있었다.

티브이를 켜자 관중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복면을 쓴 선수와 얼굴이 털로 뒤덮인 선수가 양손을 맞잡고 서로를 쓰러뜨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미국 프로레슬링 경기였다. 균형이 무너지며 복면이 털보의 팔목을 비틀었다. 털보가 유연하게 몸을 빙그르르 돌리더니 오른쪽 무릎으로 복면의 턱을 강타했다. 복면이 쿵,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관중석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털보가 로프로 달려가 몸을 튕기고 돌아와 복면의 몸 위로 날아올랐다. 심판이 손으로 바닥을 내리치며 카운트했다. 칠까지 세었을 때 복면이 허리를 번쩍 들어 올려 털보를 튕겨냈다. 아버지가 즐겨보는 채널이었다. 때리고 쓰러뜨리고 깔아뭉개는 장면이 화면을 채울 때마다 아버지의 이마에는 시퍼런 힘줄이 돋아나곤 했다.

리모컨을 눌러댔다. 셰프들이 요리를 해서 푸드파이터들의 평가를 받는 채널에서 멈췄다. 쉴 새 없이 만들어진 요리들이 푸드파이터들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다혜가 좋아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 셰프들의 레스토랑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그러자고 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다혜는 신우신염을 앓는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연변에 갔다가 한 달 만에 재입국했다. 아니, 입국하지 못했다. 위조된 여권을 지니고 있었던 탓이었다. 이따금 꿈을 꾸면 그녀는 보안요원에게 끌려가며 나를 애타게 불렀다. 젖은 눈동자, 일그러진 입술…….

눈을 떴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샹들리에가 보였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장식들은 먼지가 끼고 변색되어 원래의 투명함을 잃고 회색에 가까워져 있었다. 몸 위로 담요가 덮여 있었고 티브이는 꺼져 있는 상태였다. 부엌에서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담요를 접었다. 벽시계가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부엌으로 가자 아버지가 구부정한 자세로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었다. 전기밥솥 상단의 밸브가 쉭쉭 소리를 내며 회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깊이 잠든 것 같아서 안 깨웠다.”

아버지가 등을 보인 채 말했다. 나는 냉장고에서 반찬통들을 꺼내 널찍한 접시에 반찬을 조금씩 덜었다. 물컵 두 개에 물을 채웠고 밥솥에서 신호음이 울리자 그릇에 밥을 퍼 담았다. 찬장에서 조미김을 꺼내는 동안 아버지는 된장찌개 뚝배기를 상에 올렸고 나뭇잎 모양 접시에 계란말이를 내온 뒤 토마토케첩을 뿌렸다. 나는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물컵을 비우고 다시 물을 채웠다.

“요새도 탈수가 심하냐?”

“…….”

“여기 물이 안 맞아서야.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아질 거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밥알을 씹었다. 아버지가 사할린대학에서 취득한 건축사 자격증을 인정해 주는 한국의 건축사무소는 없었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에 아버지도 서서히 등을 돌렸다. 어머니가 국내 대학 편입을 권했지만 아버지는 거부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늘 그림자처럼 집에 늘어져 있었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떠나자 건축현장 인부로 나섰지만 이층 난간 공사 중 추락해 허리를 크게 다쳤다. 이후로는 혼자 외출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이따 나랑 어디 좀 다녀오자.”

나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며칠 전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인근 도시에서 행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행사에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었지만 좋은 기억은 전혀 없었다.

“못 가요. 밀린 잠을 좀 자야겠어요.”

아버지의 얼굴에 서운함이 스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렇게 해라. 혼자 가도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광장에는 무대가 널찍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그 앞으로 간이의자들이 열병식을 하듯 일정하게 늘어서 있었다.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였다. ‘고려인 한마당 아리랑 대축제’와 ‘동포 특별법 제정 촉구’ 같은 문구들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를 따라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집행위원회 사람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석유난로 주위에 모여 있었다. 아버지는 작은 체구의 노인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나는 노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도 아버지처럼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후예였다.

스피커에서 아리랑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아버지가 텐트 안에서 노인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나는 바깥을 서성였다. 전날의 밤샘 근무로 인한 피로가 몸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아버지가 눈길에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어쩔 수 없이 따라온 것이었다. 가끔 행인들이 천막 앞을 지나쳤다. 자원봉사자들이 전단지를 나눠주고 따뜻한 커피를 권했지만 하나같이 호주머니 속 손을 빼기 귀찮다는 듯 그냥 지나갔다. 눈은 멎었지만 기온이 뚝 떨어져 있었다. 광장에서 식은 커피가 든 종이컵을 들고 추위를 견디는 건 고려인의 후예들뿐인 듯했다.

무대 위에서 진행자가 마이크 테스트를 했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제 말 잘 들리십니까? 진행자가 묻자 “네에!”하는 목소리가 주위에서 터져 나왔다. 진행자의 머리 위로 ‘화합을 위한 고려인 노래자랑’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간이의자를 차지하고 앉기 시작하자 나도 한쪽에 착석했다. 갑자기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마이크가 꺼져버렸다. 기계 고장인 모양이었다. 날짜를 잘못 잡았어. 누군가 그렇게 말했고 주위 사람들이 비슷한 어조로 수군거렸다.

파카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이에 잠시 졸았던 모양이었다. 고장 났던 걸 고쳤는지 무대 위의 진행자가 그 날 행사의 취지를 길게 늘어놓았다. 이어서 관공서에서 나온 인사가 축사를 했고 마이크를 넘겨받으며 진행자가 박수를 유도했다.

“추운 날씨에도 이렇게 많이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름 관중이네요? 그렇죠?”

진행자의 말에 오십 명도 안 돼 보이는 사람들 중 몇몇이 낄낄거렸다.

첫 참가자는 일흔이 넘어 보이는 노파였다. 반주에 맞춰 ‘고향 생각’을 불렀다. 음정도 박자도 엉망이었지만 절반쯤 부르자 ‘딩동댕’ 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파가 내려가자마자 삐에로 복장의 중년 남자가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의 반주가 나오자 그는 제법 능숙하게 춤을 추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멋대로 춤을 췄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봤는데도 아버지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광장 끝 화장실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뚝 걸음을 멈췄다. 시민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이 사진전을 열고 있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아르메니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 고려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 아래 네모 칸에는 형형색색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어떤 칸은 스티커로 가득했고 어떤 칸은 텅 비어 있었다. 인터넷으로도 투표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1등으로 선정된 사진의 주인공에게는 현지 왕복항공권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사진들을 훑어보다 한 군데에서 시선이 머물렀다. 이반의 미래. 사할린의 부세 호수를 배경으로 조부모와 어린 시절의 아버지가 서 있었다.

국경의 밤(화가 한희원 삽화)
*

축구팀 유니폼을 입은 사내가 부스 앞에 섰다. 거리낄 것 없다는 듯 표정이 밝았고 동작에도 여유가 묻어났다. 스물다섯 살, 베트남 국적의 사내는 자국 프로축구팀의 클럽 대항전을 관람하려는 목적으로 방문한 것이었다. 나는 모니터를 꼼꼼히 살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호치민의 한 클럽팀 응원단에 섞여 입국한 수십 명의 베트남인들이 잠적한 일이 있었다.

조회 결과 인적 사항을 위조한 여권이었다. 손을 뻗어 책상 아래 버튼을 눌렀다. 사내의 눈빛이 흔들렸다. 대기선 너머에는 같은 유니폼을 입은 사내들이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사내가 부스를 잡아 흔들며 서툰 영어로 욕설을 토해냈다. 일행들도 몰려와 소란을 피우는 사이에 보안요원들이 달려왔다. 사내들의 고성이 복도 너머로 멀어져서야 나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입국이 불허된 사람들이 머무는 송환대기실은 한 번 경험하면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좁고 답답한 공간이었다.

다혜는 그곳에서 이 주를 보냈다. 하루에 한 끼만 제대로 제공될 뿐 나머지 두 끼는 간단한 빵과 음료뿐이었다. 친분이 있는 공항 직원의 도움으로 그녀에게 포장된 음식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다혜는 멈춰버린 시계 같았다. 젓가락을 들고는 있었지만 음식을 먹지도 말을 하지도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내가 자주 들르던 집 근처 마트의 계산원이었다. 늘 물과 이온음료만 한가득 사가는 내가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어느 날인가 탈수증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자 “계속 낫지 않아서 어떡해요?”라고 관심을 표해줬고 우리는 서서히 가까워졌다.

“저 국경은 너무 높아요. 절대 넘을 수 없을 거예요.”

마지막 날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불법체류자 신분이었고 부친 때문에 출국한 뒤 브로커를 통해 위조여권을 만들어 재입국하려 했던 거였다. 불법체류 사실을 자진신고하고 출국했으면 재입국을 허용해 주는 제도가 있다는 걸 몰랐느냐고 묻자 고개를 완강하게 흔들었다. 연변으로 계속해서 돈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한국을 떠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방법이 있을 거예요. 어떻게든 제가 찾아볼게요.”

내 말에 다혜가 희미하게 웃었다.

“애쓰지 말아요. 그래도 당신은 국경 안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부스 문이 열리고 교대 근무자가 나타났다. 인수인계를 마친 뒤 건물 동쪽의 제한구역으로 들어섰다.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유리문을 지나치다가 307호실 앞에서 걸음을 늦췄다. 며칠 전에 봤던 시리아인은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직진해서 303호 문을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 전의 비상근무를 두고 불만을 표했던 것과 관련해 확인할 게 있다면서 인사 담당자가 호출한 것이었다. 나는 그의 질문에 순순히 답했다. 어머니의 기일과 어머니가 좋아했던 치킨을 밥상에 올린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대목에서 경직되어 있던 인사 담당자의 표정이 풀렸다.

303호에서 나와 복도를 걷다가 갑자기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직진해서 자판기가 있는 휴게실로 들어서자 누군가 공중전화부스 앞에 서 있었다. 그 시리아인이었다. 뭐가 잘 안 되는지 그는 카드 투입구에 카드를 넣었다가 빼내는 걸 반복했다. 옆에 앉아 있는 보안요원은 휴대폰으로 뭔가를 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가 내가 다가서자 고개를 들었다. 엊그제 307호에 있었던 그 보안요원이었다.

“혹시 전화카드 있습니까? 되게 귀찮네 이 친구.”

보안요원이 투덜댔다. 그 사이에도 시리아인은 카드투입구에 카드를 집어넣고 있었다. 살펴보니 사용할 수 없는 카드였다. 나는 지갑에서 선불 국제전화카드를 꺼내 시리아인에게 내밀었다. 예전에 다혜에게 주려고 구입해뒀던 거였다. 시리아인이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순진한 눈빛으로 양손을 펼쳐 공손하게 전화카드를 받았다. 그는 이내 누군가와 통화를 하기 시작했고 훌쩍이며 눈물을 흘리던 끝에 전화를 끊고 나서 양 소매로 눈가를 닦았다. 전화카드를 돌려주려 해서 나는 가져도 된다는 뜻으로 손사래를 쳤다.

“나는…… 칸입니다.”

그가 어눌한 한국어로 말했고 자신의 얼굴 흉터를 가리켰다.

“폭탄에 아팠습니다. 테러리스트 아닙니다.”

그 말에 보안요원도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관심을 보였다. 칸은 한국 드라마로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드라마 속 세상에는 테러도 폭격도 살인도 없었다. 반군에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지만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시리아를 빠져나와 이스탄불발 항공기에 올랐다고 했다. 칸은 돌아가면 죽게 될 거라고 통역관에게 설명했지만 상황이 여의치는 않은 듯했다. 내전, 수시로 발생하는 테러, 납치, 살인, 폭격, 그로 인해 세계를 떠돌게 된 난민들…… 그들의 비극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한국에 있고 싶습니다. 저는 정말 그럴 수 없습니까?”

칸이 그렇게 말해놓고 울먹였다. 보안요원이 그만 가자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다. 유리문 너머를 살펴보니 칸은 음울한 표정으로 구석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담당 직원이 나에게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나는 부탁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이 송환대기실로 들어가서 칸에게 말을 건넸고, 칸은 천천히 일어나 직원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나를 보자 칸의 얼굴에서 긴장했던 기색이 사라졌다. 며칠 전에 봤던 보안요원이 우리와 동행한 채 가까운 휴게실로 향했다.

포장 용기에 담긴 양고기 카레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칸은 햄버거가 제공돼도 빵과 야채만 겨우 먹을 수 있었다. 쇠고기 패티라 해도 돼지고기가 섞여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칸은 밥과 섞인 카레를 연신 떠서 입에 집어넣었다. 맛있다는 듯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기도 했다. 그는 대학에서 기계설비를 전공했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세계적인 엔지니어가 되는 게 꿈이었다. 반군에 밉보여 그게 불가능해지자 쇼핑몰 설비팀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했다. 그의 손마디마다 구슬 같은 옹이가 박혀 있었다.

“이 세계는 나아지고 있습니까?”

칸이 물었다. 나도 보안요원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입안의 음식 때문인지 어떤 감정 때문인지 칸의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한테 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는 듯 씹고 또 씹어 마침내 카레를 다 비웠다.

보안요원이 그만 가봐야 한다고 말하자 칸이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창문 쪽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살라트. 무슬림들의 기도 의식이었다. 무릎이 굽혀지고 양손이 올라가다가 얼굴이 바닥에 닿을 듯할 때 바닥에 내려앉았다.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절대자가 있는데 세상은 왜 계속 이 모양일까. 물론 그건 속으로만 맴도는 질문이었다.

기도를 마친 칸이 이마의 땀을 소매로 닦았다. 할 말이 있다는 듯 입술을 달싹이던 그가 내 눈을 바라봤다. 변호사를 알아봐 주기로 했던 건 어떻게 됐느냐고 물으려는 듯했다. 여기저기 문의해본 바에 따르면 칸은 난민 자격을 얻을 가능성이 희박했다. 시리아의 내전이 끝났던 게 난민 인정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된 듯했다. 내가 미적미적 말을 아끼자 칸은 이미 상황을 알아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체념한 것 같기도 하고 초월한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여러 날 잠들지 못했습니다. 수면제도 소용없습니다.”

칸이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근데 당신은 국경 안에 있습니까? 아니면 밖에 있습니까?”

칸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기선 너머는 텅 비어 있었다. 하노이발 항공기가 착륙한 뒤 승객들이 한바탕 몰아친 직후였다. 입안이 바짝 말라 있어서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의사는 장 기능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약을 몇 개 더 처방해 주었다. 운동을 꼭 하세요. 판에 박힌 충고였지만 일주일 전부터 근무 전후로 공항 내부를 걷기 시작했다. 그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그 사이에 칸도 여러 번 만났다. 안면을 튼 직원이 편의를 봐줘서 칸에게 음식을 가져다줄 수 있었지만 며칠 전부터는 그러지 못했다. 사무국에서 신분이 불분명한 자와의 허락되지 않은 접촉을 금하라는 지시가 내려와서였다.

그날 근무를 마쳤을 때 칸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교대 근무자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표정으로 부스 앞에 선 채 떠벌리고 있었다. 화장실에 갔던 칸은 보안요원이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종적을 감췄다고 했다. 비상이 걸렸고 보안요원들이 곳곳을 뒤졌지만 그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늘로 솟았나? 아님 땅으로 꺼졌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대는 교대 근무자에게 수고하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평소라면 곧바로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향했겠지만 걸음을 망설였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얼마 전에 서른 중반의 모로코인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본국으로 돌아가면 살해될 거라고 주장하던 그는 난민신청이 거부되자 송환 당일에 화장실에서 넥타이로 목을 맸다.

휴대폰이 울렸다. 공항 내선번호가 액정에 뜨고 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핏기 없는 목소리가 지금 당장 내가 가야 할 곳을 말해주었다. 방향을 틀어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등줄기에 땀이 배었다. 긴 복도를 지나 적갈색 문 앞에서 멈췄다. 심호흡을 하고 노크를 한 뒤 안으로 들어섰다.

“거기 앉으세요.”

안경을 쓴 사내가 철제의자를 가리켰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자 보안요원이 내 뒤로 다가와 섰다. 사내가 칸과의 관계를 물어서 있는 그대로 답했지만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한 모양이었다. 칸에게 접근한 이유와 현재 그의 행방까지 추궁했다. 나는 칸에게 약간의 친절을 베풀었을 뿐이며 그의 실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답했다. 사내가 서류를 뒤적이더니 부친이 사할린 출신이냐고 물었다. 순간 숨이 멎는 느낌이었고 동시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저도 당신들과 같은 한국인이란 말입니다!”

사내가 놀란 듯 의자를 밀며 물러섰다. 보안요원이 내 어깨를 잡고 의자에 앉혔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노라니 서류를 검토하던 사내가 그만 가봐도 된다고 말했다. 칸이 발견되면 한 번 더 부를 수 있다는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곳을 빠져나왔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쪽 휴게공간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자 아버지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주일 뒤 떠나는 카자흐스탄 방문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나 모르게 추진해 온 모양이었다. 고려인 행사장에서 만난 노인이 동행하니 말릴 생각은 아예 말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전화를 끊었다. 어느새 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활주로를 벗어나 허공으로 치솟는 여객기의 궤적이 이어졌다. 그 아래로 관제탑이 불을 밝히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하역작업을 하는 인부들이 보였다. 순간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한 사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칸이었다. 내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자 그는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등을 돌려 활주로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통유리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칸이 있던 자리엔 노오란 불빛만이 남아 있었다. 눈이 활주로를 덮고 있었고 제설차들이 불을 밝힌 채 바쁘게 달려오는 중이었다.

*

손을 들자 대기선 너머에 서 있던 여자가 다가왔다. 북경발 항공기 탑승객 중 마지막 심사 대상자였다. 여권이 반원형 구멍으로 밀려들어왔다. 서른한 살, 연변에서 온 여자였다. 불법체류자였지만 자진 출국 이후 재입국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잠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주눅 든 얼굴로 양손을 꼭 쥐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도장을 집어 들고는 여권에 꾹 눌러 찍었다. 그제야 여자의 얼굴에 안도감이 번졌다.

통유리 밖으로 또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아버지는 카자흐스탄으로 떠나 몇몇 장소를 방문한 뒤 사할린까지 둘러볼 예정이었다. 넌 모를 거다. 그곳 공기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말이야. 아버지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멀리 활주로로 여객기 한 대가 조용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저 안에 칸이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실종 다음 날에 칸은 사라졌던 것처럼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환풍기 배관을 교체하기 위해 천장 위에 올라갔던 설비팀 직원이 한쪽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그를 발견한 것이었다. 보안요원들에 의해 붙잡히는 순간에도 칸은 담담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뒤 미칠 듯이 잠이 쏟아져서 누울 만한 곳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칸이 그 좁은 공간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활주로로 미끄러지던 여객기가 마침내 바퀴를 접고 허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국경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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