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서 삐져나온 자기 고독의 시학

박현우 시집 ‘멀어지는 것들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01월 09일(목) 17:53
“잡풀은 잡풀대로 수사가 필요하다”고 서문에서 밝힌 전남 진도 출생 박현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멀어지는 것들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문학들 刊)가 최근 나왔다.

이번 시집에서는 ‘모난 돌’들의 삶에서 그가 발견해 내는 ‘고독’의 참 의미에 주목한다. 시인은 어느 날 완도 정도리 갯돌을 밟으며 모난 돌과 몽돌의 의미를 상상했다고 한다. 몽돌은 처음부터 둥글둥글한 모습이 아니라 쉼 없이 밀려오고 밀려갔을 시간의 침식 이전까지 제각각 날카롭거나 울퉁불퉁한 ‘모’를 가진 개성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였다는 것이다. 삶이 몽돌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전제가 깔려 있는 셈이다.

항상 아직 잘 다듬어지지 않는 개성이나 분별없이 날뛰는 만용을 경계하는 데 쓰이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우리의 오랜 속담을 상기하게 한다. 시인은 이처럼 속담의 세계가 갖는 한계나 함정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그는 수시로 변하고 무수히 부서지길 반복했을 파도와 물빛 속에서 표면적으로 어디 모난 데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눈앞의 몽돌들을 바라본다. 저마다의 모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사르며/모질도록 저항’하고 거부했을 원래의 ‘모난 돌’들을 상상한다. 그러면서 비록 겉으로 어떤 ‘모’도 없이 원만한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몽돌들이 숨기고 있는 ‘불안과 상처’를 읽어 낸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가슴에 묻고 산 지 오래/완도 정도리 갯돌 밟으며 걷노라니/시시로 변하는 물빛 부서지길 몇 번//거품이 거품을 지우며 소스라치는/무변의 생존 곁에서 자신을 사르며/모질도록 저항했을 불안과/상처를 숨긴 낯빛 끝내 발하는//사계의 해조음처럼/변덕스런 시공을 살아 볼 일이지만/물살 따라간 시간들 뒤돌아보면/절도(絶島)를 표류하던 절명의 고독들이//더러는 깨어져 백사(白沙)가 되고/갯것들 사늑한 보금자리 되는/모난 돌 하나 찾기 힘든 구계등 바라/모나게 살고 싶던 날들의 신념 꺼내 보는가//오는 길 정 맞은 돌 몇 주워/빈틈 많은 생의 구멍을 메워 볼까/하는’(‘모난 돌’ 전문)이라고 노래한다.

그런 만큼 시인에게 ‘고독’은 한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쓸쓸함이나 외로움에 한정되지 않는다. 또 사회적인 단절이나 인간관계의 고립에서 오는 자기 소외와 자기 방기로부터 느끼는 감정의 하나가 아닌 듯하다. 오히려 타인의 관심이나 눈치에서 벗어나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가 자신의 존재를 더욱 뚜렷이 하는 것을 뜻한다. 무수한 이해관계나 인연으로 뒤얽힌 채 살아가는 일상적이고 비본래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비로소 순수하게 자기 자신의 본질적인 존재와의 대면을 의미한다.

박현우 시인
시인의 시속에는 유난히 많은 고독감이 읽힌다. ‘누군가 울밀한 사연 비집어 성큼/꿈의 날개를 퍼득이고 있다’(‘한여름의 눈짓’)거나 ‘부르튼 한 생 껍질까지 벗겨가며/남겨 가는 흔적이 무슨 소용/막무가내 기다리는 일은 아닌 듯도 싶어/먼 나무 향한 발걸음 헤아려 보는가’(‘산을 오르며’) 또는 ‘겨울비 울음/어둠에 묶어 보내고/산자락 자욱한 운무 보노라면/어느 틈에 다가온 잔별 하나가/손 내밀어 이부자릴 까는구나’(‘잘 자라는 말’)라고 읊는다,

이처럼 시인의 시 곳곳에는 근원적으로 홀로인 자아의 본질과 대면한다. 울밀한 사연은 무엇이고, 꿈의 날개는 어느 방향인지 알 수 없다. 또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잔별이 내미는 손을 붙잡을 수 밖에 없는 시적 자아이지만 임동확 시인이 해설에서 밝혔듯 타인 안에 존재하는 자기가 부득이하게 남과 뒤섞이면서 자존감을 상실한 채 홀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출한다. 자신이 자신의 삶을 수습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삶에 경도돼 맞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여건을 의미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임동확 시인은 해설을 통해 “시집을 지배하는 근본 기분은 고독이다. 하지만 모든 것들과 격리되거나 고립된 외톨이가 아니라 우리가 모든 사물들의 본질에 이르면서 그 이웃이 되게 하는 본래적인 힘으로써 고독이 지배 정서로 자리하고 있다”며 “고독이 지배 정서이기는 하나 단지 고립적이고 자폐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좁혀질 수 없는 거리나 간극이 엄연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 무엇”이라고 평했다.

박현우 시인은 조선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오랜 기간 아이들을 가르쳤다. 1989년 ‘풀빛도 물빛도 하나로 만나’(부부시집)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달이 따라오더니 내 등을 두드리곤 했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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