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없는 대한민국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광남일보@gwangnam.co.kr |
2025년 01월 22일(수) 1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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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
웃음소리 같지만 과학이다. 아침 사과는 식이섬유가 독을 빨아들여 똥으로 내놓고, 프락토스가 에너지를 지속 공급한다. 저녁사과는 소화가 느려 잠의 질을 떨어뜨린다.
삶과 함께해서인지 사과가 서양의 갈마(역사)를 바꾼다.
누구나 아는 에덴의 사과가 있다. 선악의 사과다. 따 먹으면 좋고 나쁨을 알게 되니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이브가 따먹고, 아담과 나눈다. 결과는? 천국이라는 에덴에서 쫓겨난다.
아무리 맛있어 보여도 덥석 따먹을 일 아니다. 2024년의 대한민국 비상계엄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선악의 기준? 상식이다. 풀잎사람(서민)이 알아먹는 지식이나 판단력이다. 상식의 기준은 ‘나’가 아니라 ‘우리’다. ‘나’를 앞세우면 남 탓하고 명령을 한다.
하지만, ‘우리’를 떠올리면 겸손과 고마움을 함께 나눈다. 검찰권력과 정치권력의 상식으로 선악을 나눠서는 안 된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파리스의 사과가 있다.
나는 선택의 사과라 부른다. 권력을 준다는 헤라와 지혜를 준다는 아테나와 아름다움을 준다는 아프로디테 가운데,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준다.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운 헬레네를 파리스의 아내로 보내고, 이 때문에 트로이 전쟁이 터진다.
파리스의 사과는 신화의 세계에 빠져 신만 바라보던 사람들을 사람의 세계로 이끌었다. 생각의 중심을 신이 아니라 사람으로 바꿨다.
특권 없는 사회의 시작이었다. 반칙조차 벌을 받는 대한민국에서 무속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흔들게 놔둘 수 없다. 손바닥에 ‘왕’자를 쓰고, 사람을 손바닥으로 누르려는 정치세력에게 대한민국을 맡길 수 없다.
소크라테스의 사과도 있다. 제자들이 ‘인생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을 사과밭으로 이끈다.
사과밭을 지나면서 딱 하나의 사과만 딸 수 있고, 되돌아가서 딸 수 없다고 말한다. 제자마다 딴 사과의 크기는 달랐다. 인생의 열매처럼!
살면서 판단력을 쌓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느냐는 교훈이 담겼다. 사실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질문)은 어리석다. 인생이 무엇인지 찾으려다가 꿩도 매도 다 놓칠 수 있으니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질문) 또한 부질없다. 삶(인생)은 ‘누구랑 살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니까.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느냐, 누구를 국회의원으로 뽑느냐에 따라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목숨 걸고 전쟁과 시위에 나가야 하는가? 내 삶은 뻔한데 뽑힌 사람들의 멋들어지는 삶만 지켜봐야 하는가?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도 목대잡이(리더)에 따라 우리의 삶이 확 달라지지 않는가?
활을 잘 쏘는 빌헬름 텔의 사과가 있다.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놓고 빌헬름 텔에게 쏘라고 한다. 돌봐야 할 사람들에게 총칼을 들이대는 비상계엄처럼 끔찍한 일이다.
사과를 명중시킨 빌헬름 텔의 화살은 가혹한 지배의 합스부르크 왕가로부터 스위스 독립을 가져온다.
독립의 길은 곧 민주의 길을 연다. 민주주의는 검찰이나 군인이나 친일파가 주인이 되는 나라가 아니라 풀잎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길이다.
진실의 힘을 알려주는 백설공주의 사과도 있다. 진실은 성형수술과 디올백 같은 겉치레로 가릴 수 없다.
진실은 부역하는 언론으로 감출 수 없고, 총칼로 숨길 수 없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지킬 수 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닫게 한 뉴턴의 사과가 있다. 관찰의 힘이 세상을 바꾸고, ‘왜?’를 자꾸 물어 삶의 바탕으로 삼으면 더 나은 나날이 우리를 기다린다.
뉴턴의 사과는 삶을 과학으로 바꾸고, 과학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게 만든다.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속을 쉽게 믿는다.
스티브 잡스의 사과도 있다. 한 입 베어 문 스티브잡스의 사과는 정보혁명을 이끌었고 데이터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모아 예측 가능한 사회로 이끌었다.
정보를 모아 정리하고 분석하여 활용하면 비상계엄을 막고 평화를 지킬 수 있다. 데이터는 어느 점쟁이보다 정확하다.
공화정이란 더 많은 사람이 합의하는 정치다. 한 줌의 권력으로 주권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일이 아니다. 권력의 언저리를 서성이는 언론인과 검찰과 군인과 정치인과 관료와 지식인이 자신들의 잇속을 탐하면서 남의 권리를 빼앗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종로에 사과나무를 심어보자고 줄곧 노래하던 이용의 사과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도 공화정의 사과나무는 보기 어렵다. 작지만 큰 나라 대한민국, 가진 것이 없지만 가진 것이 많은 대한민국은 새로운 공화정을 앞두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대한민국의 길을 누가 가로막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