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내전 겪은 사라예보에 ‘오월광주’ 전파

이매리 작가, 현대미술 매개로 프레젠테이션 성황
2025사라예보국제북페어 무대서 5·18과 한강 설명
특별전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 리뷰 현지인들 관심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04월 14일(월) 17:27
지난 9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스켄데리야센터에서 열린 2025사라예보국제북페어 공식 초청 프로그램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 특별전 프레젠테이션 모습.
지난 9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스켄데리야센터에서 열린 2025사라예보국제북페어 공식 초청 프로그램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 특별전 프레젠테이션 모습.
전쟁사를 예술로 접목한 ‘시(詩) 배달원’ 이매리 작가가 2025사라예보국제북페어를 통해 ‘광주’를 알렸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의 사건 배경이 된 광주를 설명하고 영상을 통해 화면이 소개되자 북페어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매리 작가는 지난 9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스켄데리야센터에서 열린 2025사라예보국제북페어 공식 초청 프로그램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 특별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설치작품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Seven Thousand Stars and Promised Land) 리뷰에 나섰다.

이브라힘 스파이치 북페어 조직위원장의 소개에 이어 발표자로 나선 이 작가는 전쟁사와 이주사에 대한 작업을 시작한 배경, 그리고 현재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광주에 대해 설명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사라예보 사건의 장소이자 보스니아 내전 등 아픈 전쟁사를 가진 사라예보에서 열린 행사인 만큼, 전쟁사를 작업하는 작가, 그리고 그 작품의 배경이 된 광주는 큰 관심을 끌었다. 이날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이매리 작가의 강연과 함께 광주를 알리는 영상이 상영되자 북페어 행사장을 찾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보스니아 하우스로 모여들었다.

이매리 작가는 자신의 삶의 터전인 광주에 대한 소개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이 작가는 “광주는 현대미술의 현장인 광주비엔날레가 열리는 문화중심도시이며 1980년 5월 18일 민주화운동과 수많은 광주 시민의 희생으로 이뤄진 민주화의 성지”라고 소개한데 이어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의 시대적 배경과 사건의 무대가 된 도시인 광주를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5사라예보북페어가 열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스켄데리야센터. 개막식이 열린 지난 9일 스켄데리야센터에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스켄데리야센터에서 열린 2025사라예보북페어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다.
북페어 특별전에 설치된 드로잉과 영상 작품의 타이틀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7000명의 이민자들이 집단으로 모여 살고있는 광주의 고려인마을이 작품의 모티브가 됐고, 7000개의 별은 광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의 숫자를 상징한다는 내용이다.

고려인이란 1880년대 있었던 한반도의 북쪽 지역의 기근, 1·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식민지 시대, 한국의 남북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로 이주했던 이민자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탄, 우크라이나, 몰도바 등에 거주하게 된 한민족이다. 그들의 후손들은 구소련 체제가 붕괴된 이후에 독립한 국가들의 국민이 되거나 무국적자가 됐고 2004년경부터 다시 한국으로 재이주한 이민자들이다.

이 작가는 “광주 안의 이주민들이 모여있는 장소를 통해 이주사에 주목했다”면서 “이주사가 인류의 전쟁사와 함께 역사가 이뤄지고 있었음을 인지한 지점으로부터 탐구 영역이 확장됐다”고 밝혔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라고 말한 어느 인류학자의 주장처럼 이 작가의 이번 전시는 ‘광주의 고려인마을’이 모티브가 됐지만 그 방향은 전쟁사로 귀결된다. 사라예보에서의 전시가 특별한 이유도 있다. 인류 최초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덴동산의 쟁탈전부터 21세기 현재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까지를 살펴보니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 보스니아 전쟁이 있었고 보스니아 전쟁 이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했던 발칸반도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거주지를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고, 한민족이었지만 중앙아시아의 이민자 신분이 되었다가 또다시 한국에서 무국적 이민자의 신분이 된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

이 작가는 “전쟁의 참혹함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사라예보에서 작가적 시선으로 현장에서 제작된 기록적 작업인 제 작품을 통해 개개인의 삶과 세계를 근원적인 층위에서 고찰해보고 ‘전쟁’과 ‘평화’의 이분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이매리 작 ‘호메오스타시스 사라예보’(Homeostasis Sarajevo)
프레젠테이션 무대에 함께한 박병욱 나인드래곤즈 대표는 이매리 작가의 작품에 대해 ‘시각예술의 언어가 어떻게 다양한 매체와 교호하고 다양한 담론을 양산할 수 있는가?’를 조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은 시와 소설로 대표되는 문자언어 텍스트와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협업과 교호의 네러티브”라고 규정하며 “시각미술 언어로 조형한 인류사와 전쟁사를 드로잉한 작품인 만큼 의미있는 전시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2025사라예보국제북페어’는 1988년부터 매년 4월 열리는 지역 최대 문학 행사로 출판사, 작가, 책 애호가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까지 5만명 이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다. 지난 9일부터 14일까지 신간 홍보와 문학 만남, 패널 토론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열려 200개 이상의 전시업체에서 15만권 이상의 책이 출품됐다. 이매리 작가는 지난 2월 8일부터 한 달간 ‘사라예보 40주년 겨울 축제’ 국제현대미술전에 초대돼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보스니아 역사박물관에서 개인전을 진행했으며, 한국문화예술진흥회 2025년 국제협업 지원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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