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송[김상훈의 세상읽기] 칩플레이션과 가격역설계
김상훈 기자 goart001@gwangnam.co.kr
2025년 06월 29일(일) 18:41
김상훈 주필
#1.

칩플레이션에는 두가지 뜻이 있다.

우선 영어 표기 ‘chipflation’은 반도체 품귀 현상에 따른 가격 인상을 말하는 데 전기차와 스마트폰 등 관련 품목의 가격도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반도체를 의미하는 칩(chip)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조합한 단어다.

또 다른 하나는 ‘cheapflation’이다. 값이 싸다는 의미의 ‘칩(cheap)’과 역시 인플레이션을 조합한 것으로,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서민들에게 필요한 저가의 생필품 가격이 더 많이 오른다는 이야기다.

이 말은 지난 2022년 영국의 요리사로 활동하면서 빈곤퇴치 운동에 앞장선 잭 먼로(Jack Monroe)가 소셜미디어에 화두를 던지면서 주목받았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저가 브랜드 식료품 가격이 평균보다 빨리 오르기 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이 더 힘들고, 그에 따라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공급망 붕괴 등으로 세계 각국이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동안 가격이 싼 식료품 값이 훨씬 더 많이 올랐다는 연구 결과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최근 ‘생활물가 흐름과 수준 평가’보고서에서 “저가 상품 가격이 고가 상품보다 더 크게 상승하는 ‘칩플레이션’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면서 “생활물가가 높을수록 서민 취약계층의 체감물가가 더욱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생필품인 가공식품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생활물가 상승률은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19.1%(누적)의 상승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15.9%)보다 3.2% 포인트 높은 수치다.



#2

이처럼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이 상품 가격에 한층 예민해지면서 유통업계에 ‘가격역설계’제품이 뜨고 있다고 한다.

보통 제품 판매가는 원가와 이윤에 따라 정해지는데 가격역설계는 판매가를 먼저 정하고 원가와 이윤을 이에 맞춰 조정한다. 즉 이윤을 일부 포기하는 대신 ‘박리다매’식으로 판매량을 늘리거나 신규 고객을 유치하려는 ‘불황형 대응 전략’인 셈이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초저가 경쟁’은 올 들어 한층 더 치열해지고 있다. 초기에는 식품, 화장품에 극한됐다 최근 주류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롯데마트는 다음달 9일까지 전 점포에서 치킨 한 마리를 행사카드로 결제하면 5000원에 제공하는 ‘통큰치킨‘을 판매한다고 한다.2010년 선보였던 것을 같은 가격에 15년만에 출시한 것이다.

이마트는 최근 5980원 초저가 위스키 ‘저스트 포 하이볼’을 내놓았다. 현재 시판 중인 위스키 원액 중 최저가로 제조 원가를 낮추고자 용기도 유리병이 아닌 페트병으로 제작했다. 위스키로 만들 수 있는 하이볼은 355㎖ 잔 기준으로 8잔 안팎이다.

편의점들도 여기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880원 육개장, 990원 과자·채소, 봉지당 480원인 라면, 2900원짜리 캡슐커피(10개입)도 나왔다.

다이소의 1,000원 생활용품, 5000원 뷰티 제품 등 균일가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고 쿠팡 등 온라인 쇼핑몰도 초저가 PB상품,타임특가 이벤트를 실시하며 가세하고 있다.



#3.

유통업계가 초저가 상품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고물가 장기화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 가장 크다. 지속되는 경기침체와 고물가 등 경제 불확실성이 증가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 절약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SNS, 유튜브 등에서 가성비 쇼핑 추천 증가 등 ‘가성비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변화도 한 몫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는 객단가가 낮지만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초저가 상품 개발과 출시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는게 현실이라는 얘기다다.

물론 업계도 이러한 초저가 상품들을 내놓기 위해 원재료 선매입, 유통 과정 간소화, 제조 공정 효율화 등 다양한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제품은 마진을 최소화하거나 포기하면서까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수익보다 소비자 유입과 브랜드 충성도 확보를 우선시한 데 따른 것이다.

경기불확실성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유통업계의 초저가 경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절약이 키워드인 시대, 어떤 제품이 출시돼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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