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적 재현 넘어 공간의 잔향·감각 앵글에 드영미술관 올들어 두 번째 기획초대전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
2025년 06월 30일(월) 1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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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ndows of the Future’ |
드영미술관(관장 김도영)은 개관 이후 매년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시민들의 일상 속 예술 향유를 위해 기획초대전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올들어 두 번째 기획초대전으로 리일천 작가의 ‘Phenomenon Space-Chaosmos of Healing’전(제37회 개인전)을 지난 10일 개막해 오는 9월 9일까지 1~3전시실에서 갖는다고 밝혔다. 전시는 1관에 신작 10점, 2, 3관은 작가의 작품 활동 중 전체 맥락을 보여주는 작품 등 총 32점.
44년째 사진작업에 몰두한 가운데 여백을 통해 더 큰 울림을 꾀했다는 작가는 기존 작업인 시공간 재구성을 하다가 현재 작업인 현상공간에 이르기까지 무엇을 느끼고 궁극에 이르렀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1년간 몰입해 준비한 결과물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집과 길, 도시와 건축물 등 우리는 삶의 궤적마다 다양한 물리적 공간을 만들고 스쳐 지나가지만, 그 모든 공간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이 아니어서 무심히 잊히고 사라지는 것에 집중한다. 특히 아무런 예고없이 마주친 공간의 한 장면이 뚜렷한 인상으로 남아, 기억 속 깊은 어딘가에 오래도록 머무는데 이같은 ‘문득’의 순간에 주목해 작업한 것들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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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ence’(부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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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nomenon Space X(현상공간 10)’ |
또 작가는 흑백 모노크롬의 이미지들이 표면적으로는 단순하고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안에 인간이 부재한 채 남겨진 공간이 지닌 고유한 감각과 침묵의 진동이 응축돼 있는 점을 인지하는 만큼 단순한 시각적 재현을 넘어 우리가 무심히 지나친 공간의 잔향과 감각을 되살리는 매개로 몰입한다.
작가의 작품은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의 ‘지각현상학’의 맥락에 가닿는다. 메를로-퐁티는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단순히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몸 전체로 느끼고 경험하며 세계와 관계를 맺는 과정이라고 봤다. 이를테면 우리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세계 속을 살아가며 그 안에서 끊임없이 감각하고 반응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작가의 사진은 바로 이러한 ‘살아 있는 지각’의 순간을 담아낸다. 그의 작품 속 공간은 관람자가 단순히 바라보는 것을 넘어, 직접 그 안으로 스며들고 관계를 맺게 하는 체험의 장(場)과 같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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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nomenon Space III(현상공간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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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 표지 |
이번 전시에 맞춰 작품집 ‘Phenomenon Space’도 펴냈다. 작품집은 평론 ‘현상과 침묵 사이에서 리일천의 감각의 공간, 사유의 장소’, ‘Phenomenon Space-시간의 응시, 그리고 존재의 여백’, ‘Chaosmos -혼돈과 질서, 그리고 치유’, 작가노트 ‘현상공간’, 작품 목록, 프로필 등 다채로운 내용으로 구성됐으며, 분량은 겉표지를 포함해 100여쪽이다.
드영미술관 관계자는 “작가의 사진은 단순히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각과 존재의 울림을 담아내는 매개체로, 그의 작품은 보는 이가 공간과 깊이 있게 연결되며,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안내한다”면서 “광주 예술가들의 작품세계와 삶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유명한 작가의 또 다른 예술세계를 접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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