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자리로 돌아온 풍경

엄수경 동화작가(오월문예연구소 위원)

광남일보@gwangnam.co.kr
2025년 07월 03일(목) 17:56
엄수경 위원
요즘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유월이 되어 제자리로 돌아온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태극기이다. 태극기는 대한민국 상징일 뿐만 아니라, 5·18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 당시 반독재와 민주주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태극기부대와 극우, 보수 강경 세력 전유물처럼 오용되고 변질했었다.

이제명 대통령이 단 태극기는 ‘진관사 태극기’를 본뜬 것이다. 불에 타 손상되어 있다. 우리나라 역사와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의미를 모르는 자들이 “태극기 찢은 이재명, 국기모독죄로 대검에 고발한다”라는 어이없는 기사를 냈다. 역사성을 무시한 채 외형만 보고 문제 삼는 건 왜곡된 애국심이다.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 먹으로 덧그린 3·1운동 직후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 하나뿐인 유물이다. 찢어진 천 조각이 아니다. 항일 독립 의지와 애국심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 역사를 묵묵히 증언한다. 태극기는 2009년 5월 26일 진관사 부속 건물인 칠성각을 해체 복원하는 공사 중 내부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발견됐다. 1919년 6월부터 12월까지 발행한 독립신문류와 함께였다.

칠성각은 본래 도교에서 온 신앙이다. 북두칠성을 신격으로 모신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장수, 재물을 비는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불교가 우리 토속신앙과 습합되면서 사찰안에 칠성각을 짓고 칠성신을 모시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만 나타나는 신앙 형태다.

엄수경 동화작가(오월문예연구소 위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또 하나 풍경은 우리 토속신앙 무속이다. 누군가 -거명하지 않아도 안다- 때문에 혹세무민 종교가 돼버렸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씻김굿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파울 첼란 ‘죽음의 푸가’는 홀로코스트 참상을 반복과 변주라는 음악을 통해 공포와 죽음 이미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마치 라벨의 ‘볼레로’와 우리나라 ‘강강술래’를 감상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소년이 온다’는 조곤조곤 읊조리는 씻김굿이다.

씻김은 죽은 영혼을 깨끗하게 씻겨 저승으로 잘 갈 수 있도록 하는 의식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 삶에서 얽힘, 한, 업보를 씻기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있으면 씻기고, 씻기고, 또 씻기고 있다는 느낌이다. 고통과 죽음, 그 이후 삶, 살아남은 자를 위해 넋두리처럼 씻기고 있다.

군인에게 학살당한 동호 이야기는 씻김굿에서 공수다. 무당 스스로 신이 되어 인간에게 전해주는 말이 공수다. 공수는 일종의 신탁과도 같은 것이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중략-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57쪽~58쪽). 이 부분을 김대중(강원대)은 “일종의 씻김굿을 하듯 동호의 혼이 내는 목소리는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사라져버린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보이지 않던 죽은 이와 살아남은 이들과 그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게 하는 것”이라고 한 논문에서 언급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통해 씻기고, 씻기고 씻김으로써 5·18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영혼과 살아남은 자들을 위해 씻김굿으로 위로한다. 고통과 아픔을 강렬한 어조로 말하지 않는다. 심장에서 사그락사그락 소리를 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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