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소서에 여름 더위 찾아온다

서금석 전남대학교 사학과 강사

광남일보@gwangnam.co.kr
2025년 07월 07일(월) 06:57
서금석 전남대학교 사학과 강사
여름 더위,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요즘에야 실내 에어컨 바람이 피서(避暑)지만 그들도 계곡이나 강가를 찾았다. 선풍기 역할을 했던 부채에 왜 그리 계곡물과 소나무 그림이 많았는지를 알겠다. 1745년 김홍도와 같은 해에 태어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살았던 이인문의 부채 그림 ‘송계한담도(松溪閒談圖)’를 감상하자. 울창한 소나무 계곡 숲 사이에서 한가로이 세 사람이 담소를 나눈다. 그런데 그 주위 풍경은 시원함을 넘어 위험할 지경이다. 납량특집이 따로 없다. 한쪽 작은 계곡 폭포에선 물줄기 시원히 떨어지고, 소나무숲 사이를 휘감아 도는 계곡물은 바위를 몰아칠 정도로 꽐꽐 흐른다. 자칫 계곡물에 쓸려갈 것 같다. ‘피서는 이런 거야’를 보여준다.

소서에 여름 더위 찾아온다. 24절기 중, 하지 다음 절기로써 더위 경보였다. 양력으로 7월 6일 경이다. 올해는 7월 7일이 소서다. 소서 다음이 대서(大暑)이다. 작은 더위라고 하지만 여름에 작은 더위 큰 더위가 따로 없다. 이 시기는 모두 더울 때다. 소서 지나야 초복이 온다. 하지와 소서 그리고 삼복을 얘기하자면 재밌다. 24절기는 대체로 15일 간격이다. 그래서 하지 15일 후가 소서이다. 삼복은 다르다. 하지 후 세 번째 경(庚)일이 초복이다. 경(庚)일은 10일 간격이니, 하지 후 20일이 지나거나 30일 이전에 초복이 들어 있다. 요컨대 소서와 대서 사이에 초복이 들어 있게 된다. 여름철 절기의 패밀리 세트다.

가장 많이 햇빛을 받는 시기에 채소 과일들이 많이 난다. 굶어 죽으란 법은 없다. 수박, 호박, 옥수수, 복숭아, 자두 등 군침 흐르는 과일들을 이때 볼 수 있다. 여름철 수박 서리 기억이 난다. 그 맛이 밤 중 꿀맛이었다. 지금은 절도죄로 잡혀간다. 서리하는 애들이 있고, 지키는 어른들이 있었다. 수박밭 지키는 외막 풍경이 아련하다. 요즘 세컨하우스로 농막이 유행이다. 농막의 피서도 해볼 만하다.

수박을 영어권에서는 워터멜론(watermelon)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서역에서 온 과일이라고해서 서과(西瓜)라고 했다. 일본에서도 서과라고 하고, 그 발음은 스이까(すいか)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수박이라고 불렸는지 모른다. 고려말 문인 이색의 문집에서도 서과(西瓜)라고 하고,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수박을 서과라고 쓴 것을 보면, 고려 말 사람이나 조선 사람도 수박을 서역 과일로 봤다. 서과와 발음이 비슷해 수박으로 불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한자에 익숙치 않은 민가에서는 물도 많고 ‘박’ 같은 것이라고 해서 수(水)와 우리말 ‘박’을 붙여서 수박이라고 했을 것 같다.

수박의 원산지는 남아프리카 열대·아열대 건조한 초원지라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가까운 이집트로 전파됐다. 아주 오래전 4000년 전이다. 이집트를 점령한 로마인들도 수박을 맛봤다. 유럽에 쳐들어간 몽골 전사들도 수박을 먹어보고 신기하게 반했을 것 같다. 그리고 고려와 몽골 전쟁 중에 홍다구가 수박을 고려에 들여왔다고 알려졌다. 홍다구는 고려계 몽골 장수이다. 그의 아버지 홍복원은 고려 출신이지만 고려에 반기를 들고 몽골로 도망가 몽골 장수가 됐다. 홍다구는 몽골에서 태어났다. 그는 선봉장이 되어 고려를 괴롭혔다. 다시 말해, 그의 집안은 고려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몽골에 항복하고 도리어 고려를 공격한 매국노 집안이다. 13세기의 일이다. 고려에 수박이 전래된 역사적 배경이 이렇게 얽힌다.

이맘때쯤, 썩썩 썰어진 수박을 입에 물고 마당 와상에 누워 밤하늘을 보자면 무수히 많은 별이 쏟아질 듯하다. 연기로 모기를 쫓느라 젖는 나무에 불을 지폈다. 여름철 무더위뿐만 아니라 모기와의 싸움도 만만치 않았다. 모기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사람이나 동물에 피해를 입어 죽은 사람보다 모기에 물려 죽은 사람이 더 많다. 그 생명력도 우수하다. 인류가 출현하기 전부터 모기는 생존했다.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공룡 복원의 씨앗은 피가 가득한 고대 모기 화석이다.

‘고려사’ 달력 편에서 음력 6월 절기로, 소서를 소개하고 있다. 소서 15일 중, 처음 5일인 초후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고 했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장마철 바람이다. 마파람이다. 순수 우리말이다. 마파람은 비를 몰고 온다. 또다시 5일 차후 때는 귀뚜라미가 벽에서 산다. 요즘 사람들은 모른다. 옛날 집은 흙벽집이었다. 가을이 되면 갈라진 흙벽 틈에 귀뚜라미 소리 들린다. 여름철 귀뚜라미가 흙벽 속으로 들어간 이유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5일 말후는 매가 새를 잡기 시작한다. 습하고 건조한 땅에 온갖 벌레들이 움직인다. 새들이 놓칠 리 없다. 더 높은 곳에서 매는 새를 사냥한다. 자연의 움직임이 교묘하다.

폭서기 건강 관리 따로 없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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