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에 잠긴 삶의 터전…"앞으로 어떻게 사나"

전자제품·가구 등 가재도구 침수…주민들 망연자실
차수판 설치해도 무용지물…포크레인·장병 등 동원

윤용성 기자 yo1404@gwangnam.co.kr
2025년 07월 20일(일) 17:52
김민석 국무총리가 20일 광주 북구 신안교를 찾아 제방 유실 및 침수 피해 현황 보고를 받고 있다. 최기남 기자 bluesky@gwangnam.co.kr
“장판, 벽지는 모두 뜯어냈습니다. 장농 등 성한 가재도구가 하나도 없습니다.”

20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동 서석고등학교 주택가 일대.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3일 동안 내린 500㎜가 넘는 물폭탄으로 상점, 주거지 등 생활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나와 청소를 하는 등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거리 곳곳에는 토사와 오수가 뒤엉킨 흙탕물 흔적이 가득했다. 도로 한 켠에는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을 비롯해 가구, 옷가지 등이 빗물에 젖은 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주민들은 젖은 옷을 세탁하고 말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집 내부까지 들어온 빗물을 다 빼지 못해 양수기나 바가지 등을 이용해 퍼내는 이들도 있었다.

물에 젖은 물품을 문 밖으로 하나둘씩 꺼내고 청소를 하는 대다수의 얼굴에는 근심과 원망이 가득했다. ‘물폭탄’이 휩쓸고 간 흔적을 멍하니 바라보다 힘없이 고개를 숙이기 일쑤였다.

가전제품 수리업체 앞에는 물에 잠겨버린 전자제품 수십여개가 진열돼 있었고, 쌓여 있는 공구 트레이에는 빗물이 가득했다.

정모씨(71)는 30여년간 이 일대에 거주하면서 올해와 같은 물난리는 처음 겪었다고 하소연했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모래주머니와 80㎝ 높이의 차수판을 설치했지만 멈추지 않고 내리는 비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집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 물은 금세 허리 높이까지 찼고, 미처 대피하지 못한 채 옥상으로 올라가 물이 빠지길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정씨는 “장마철이면 혹시나 침수되지 않을까 걱정돼 밤잠을 설친다”며 “가장 피해가 컸던 2020년에도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찼는데 올해는 비가 순식간에 쏟아지면서 허리까지 찼다. 이런 비는 난생 처음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주변 가게에서 나온 냉장고 등의 물건들이 둥둥 떠다녔다”며 “이제 정리를 해야하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18일 오전 광주 북구 공구의거리에서 상인들이 침수로 젖은 공구와 자재를 꺼내 말리고 있다. 최기남 기자 bluesky@gwangnam.co.kr


이번 폭우로 큰 피해를 입은 북구 신안동 신안교 일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른 아침부터 생업 현장을 찾은 상인과 주민들은 제31보병사단 장병들과 함께 복구작업에 나섰지만, 표정은 무겁기만 했다.

가슴 높이까지 차올랐던 빗물은 빠졌지만 건물 내부 벽지 등 곳곳에 남은 흔적들이 당시 상황을 대변하고 있었다.

인도에는 물에 젖은 각종 물품들로 가득 차 있었고 장병들은 연이어 피해 물품을 옮기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포크레인을 이용해 쌓여 있는 피해 물품을 옮기는 모습도 보였다.

인근 식당은 물은 빠졌지만 집기들이 흙탕물에 휩쓸려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영업을 잠정 중단해야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복구 작업을 한참 멍하니 쳐다보던 일부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뭐부터 정리를 해야 될지 갑갑하다’ 등의 말을 하며 가슴을 내리쳤다.

20여년 간 신안교 인근에서 카센터를 운영한 김모씨의 가게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밀려드는 빗물 등에 온전한 유리창이 없었고, 대부분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김씨는 “가게를 운영하면서 수없는 물난리를 겪었는데 올해는 역대급이다. 일을 하던 중 물이 차오르더니 순식간에 가슴 높이까지 올라와 황급히 직원과 대피했다”며 “이제 물이 빠져서 청소를 해야 하는데 너무 막막해 시작을 못하고 있다. 피해가 너무 막심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광주지역에는 지난 17일부터 전날까지 최대 527.0㎜의 비가 쏟아졌다.

특히 지난 17일의 경우 하루 동안 411.9㎜의 극한 호우가 광주지역에 내리면서 관측 이래 가장 많은 강수량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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