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광주 북구, 75년 침묵 넘어 기억·위로의 길 열다 이승미 광주 북구 문화교육국장
광남일보@gwangnam.co.kr |
2025년 07월 30일(수) 16: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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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미 광주 북구 문화교육국장 |
발발 이후 3년간 이어진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국토의 3분의 1이 초토화되고 각종 기반 시설 전반이 파괴됐으며 특히 수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전쟁으로 인한 국군 전사자는 약 14만명으로 나타났다. 전쟁 이후 정부는 매년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하고 기념식 및 행사를 개최하는 등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지나간 아픔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의 규모는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난다.
대한민국 통계연감에서는 전쟁 중 남한의 민간인 사망자는 37만여명에 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전쟁 기간 중 사망한 민간인이 적군의 총탄에 의해서만 사망한 것이 아니며 군경 즉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도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희생이다.
해방 이후 극렬한 이념 대립이 발생한 한반도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 시기까지 정치·사상범으로 분류된 재소자가 급증했다. 광주형무소의 경우도 1950년 1700여명 수준이었던 재소자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광주 일대에서 예비검속된 보도연맹원 등의 구금으로 3000여명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7월, 광주형무소에는 재소 중인 사상범과 예비검속자를 처형하라는 상부 기관의 지시가 내려진다. 이후 7월 한 달간 적법한 절차는 생략된 채 집단 처형이 자행됐으며 이때 대부분의 재소자가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당시 희생자 중에는 독립운동가 이덕우 선생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인 장재성 선생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75년 전 발생한 안타까운 역사는 북구와도 관련이 있다.
진화위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집단 희생이 발생한 장소로 추정되는 7곳 중 3곳(동림동 불공고개, 양산동 장고봉고개, 장등동 도동고개)이 북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평범한 마을의 언덕이지만 그곳은 75년 전 말할 수 없는 죽음이 스러진 자리였다.
이에 북구는 국가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억울함을 달래고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자 올해 처음으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 사업 추진에 나섰다.
이는 단지 과거를 기리는 행사가 아니라 누구도 기억하지 않았던 이름들을 다시 불러내고 공동체가 외면해온 침묵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이었다.
먼저 지난 2월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광주시 유족연합회를 포함한 20여개의 시민단체와 간담회를 개최하고 위령비 설치와 위령제 봉행 등 위령 사업 추진 방향에 대한 논의를 마쳤다.
이후 지난 6월 동림동 불공고개, 양산동 장고봉고개, 장등동 도동고개 등 3곳에 위령비를 세웠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비문에 새겼고 주민의 품에서 위로받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또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희생 영령을 기리기 위한 첫 번째 합동 위령제를 봉행했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광주시 유족연합회뿐만 아니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여수순천10·19사건유족회, 지역 시민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무고하게 죽어간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는 단지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리는 자리를 넘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반복되어 온 국가 폭력의 상처를 마주하고 위로하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지나간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기억하는 방식에 따라 현재는 더 정의로워질 수 있고 미래는 더 평화로워질 수 있다. 망자는 말이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억울함에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 책임이며, 마주해야 할 역사적 과제다. 북구가 추진하는 이번 위령 사업이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첫걸음이, 그리고 향후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