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고선주 문화체육부장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08월 17일(일) 17:54
고선주 문화체육부장
우연히 접했던 노벨상 수상자이자 미국의 경제학자인 러셀 로버츠의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은 여전히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지난 8월 이후 1년을 되새겨보는 시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 어느 1년 간보다 롤로코스터 위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2024년 10월 그것이 발표될 때는 시내 한 식당에서 시인들과 함께 술밥을 하고 있었고, 12월 그것이 발표될 때는 집에서 무료하게 TV 앞에 앉아 있었다.

전자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말하고, 후자는 야심한 한밤 중 당시 대통령의 비상계엄(친위쿠데타) 발표를 의미한다. 두 소식 모두 결은 달랐지만 충격 그 자체였다.

이 둘 사이는 교집합으로 연계돼 있는 듯하다. 노벨문학상의 직접적 계기가 5·18항쟁이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그의 수상작 ‘소년이 온다’는 5·18항쟁의 실재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 출신 작가가 광주의 이야기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것은 어쩌면 후대에 다시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소년이 온다’는 5·18항쟁의 숭고한 정신에 대한 ‘다시 읽기 버전’ 같아 전율이 일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상상해보지만 한강이 5·18항쟁이 예민한 현재 진행형의 문제라고 해서 집필을 접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찔한 생각이 든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의 오랜 염원이었지만 결코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만 믿어왔다. 지독히도 가난한 나라에 ‘무슨 노벨문학상’ 하며 기대 전에 스스로 걷어 들여야 했던, 씁쓸한 기억들을 모두 지니고 있을 터다.

우리는 매년 뉴스에서 다른 나라 문학가들이 수상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구경꾼 일뿐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사건은 1년여가 돼 가는데도 믿을 수 없는, 일대 사건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정말 믿기지 못할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2개월 후인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발동되면서 정국은 혼란에 빠져들었고, 국민들은 모두 거리로 나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내란세력 척결을 위해 힘을 모아 투쟁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당사자는 탄핵이 됐고,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그의 부인 또한 여러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돼 사상 초유의 전직 대통령 부부 구속이라는 사태를 맞게 됐다.

5·18과 비상계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비극점에 자리하고 있다. 지역민들에게는 심각한 트라우마다. 5·18항쟁 때 겪었던 비상계엄을 다시 일깨운 것이다. 지난 겨울 지역민들 역시 탄핵과 내란세력 척결을 위해 거리에서 외쳤다. 평온한 일상을 뒤로 하고 투쟁에 나섰던 그 결심, 결심들이 모여 이재명 정부(국민주권정부)를 출범시켰다. 여전히 내란세력들이 척결되지 못하고 있지만 불과 몇 개월전보다 삶이 훨씬 평화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단적으로 지난 3년여간 보지 못했던 뉴스를 맘껏 볼 수 있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되고 있다.

모든 행복의 출발은 크든, 작든 결심이 필요하다. 결심하지 않으면 어떠한 행동을 촉발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결심을 해야 하는 순간들과 마주한다. 한강이 ‘소년이 온다’를 쓸 결심이나 대통령이 자행한 비상계엄에 저항하겠다고 생각한 국민들의 결심이 없었다면 노벨문상 수상 소식 등을 망라해 소소한 평온이 찾아왔을까. 다만 1년도 되지 않았는데 감각이 무뎌진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제 무수히 많은 일상에서 순간, 순간마다 발동됐을 그 결심들을 들여다보기를 희망한다.

필자 역시 쉬는 날을 중심으로 지난 겨울 거리를 누볐다. 그것 역시 큰 결심이 아니었다면 행동을 촉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2013년 박근혜정부 당시 블랙리스트로 낙인이 찍혔 때나 올해 3월 대통령탄핵촉구 긴급시국선언 때 한강 등 414명과 함께 했던 한줄성명 발표 때도 결이 비슷한 결심이 필요했다. 멈칫멈칫 했다면 두고 두고 후회할 뻔 했다. 또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2년여 전 부친이 요양병원에 입원했을 때 주사 바늘 하나도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딸내미의 대학 문제 역시 쉽지 않은 결심이 필요한 순간 중 하나였다.

결심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할 일에 대해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정한 것이 사전적 의미지만, 결심을 내려야 하는 당사자가 처한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다른 행동이 촉발된다. 그런 만큼 모두가 옳다고 인정하며,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내고 도출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이처럼 소소한 일상 속 곳곳에는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이 도사리고 있다. 나라든, 개인적이든 온전한 결심이 선한 영향력으로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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