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응시 ‘화해와 포용의 무늬’ 발현 장애선, 등단 27년 만에 첫 시집 ‘시간의 무늬’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
2025년 08월 24일(일) 1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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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첫 시집은 시간의 흔적들이 새겨진 일상들을 침잠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시인 역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람쥐 쳇바퀴처럼 일상의 굴레에 순응해서만은 어렵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래서 촌각을 다투는 일상에서 잠시 한 호흡을 갈무리하려 한다.
특히 시인은 오랜 세월 사물과 삶을 경험하고 응시하면서 반목과 갈등보다는 화해와 포용의 무늬를 발견하려 한다. 그의 시들은 모두 표제어처럼 시간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시 ‘간고등어 한 손’에서 ‘갈맷빛 등때기 물빛으로 치장하여/바닷새 입질에 온전히 제 살점 아껴/짜지도 싱겁지도 않게/짭조름 고소한 간이 배고/한 놈이 다른 한 놈을 껴안고 누울 때/비로소 한 손이 되는 간고등어’라고 노래한다.
이 시를 보면 그의 시적 어조가 잔잔하고 섬세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시간의 거리가 작용하기 때문인 듯하다. 또 ‘등나무를 보며’라는 시에서 ‘기둥을 감아 오르는 등나무’는 ‘낮술에 취해 길가에 누운 사내’와 ‘옷자락을 당기는 젊은 아낙’의 무참한 현실과 오버랩된다. ‘갈등’의 상황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 욕망과 쟁투 같은 현실 너머 화해의 세계를 본다. ‘서로 의지하고 기대야만/온전히 설 수 있는 생’은 눈물 ‘그렁그렁 보랏빛 환한 등꽃‘과 같다는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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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선 시인 |
농로에서 함께 일하던 영감은 멀리서 달려오는 차를 보고 ‘할멈의 허리춤 잽싸게 낚아채/안으로 당기’(‘가을 풍경’)고, 한여름 무더위에 지쳐 잠든 가장의 짐은 새우등에 비유된다. 이를테면 ‘등 굽은 새우 소금 위에 올려놓고/군침 흘리며 살을 발라먹던/여름날의 푸르른 밤’ ‘계속되는 열대야에 지쳐/거실에 웅크리고 잠들어버린/발갛게 익은 새우 굽은 등’(‘새우’) 말이다.
여기다 시간에 역사가 얹힐수록 서사의 폭도 깊고 넓어진다. 저자 세대들이 경험한 마을 공동체나 역사적 상처의 무늬가 기억의 회랑 가득 출렁거린다.
시인 겸 문학평론가 박철영씨는 “그의 시들은 단순하게 감정의 범람으로 쓰인 시가 아니다. 한 편 한 편의 삶이 옹골차게 자리 잡아 순정한 마음으로 재현된 서사는 우리 사회가 잊어버린 아름다운 온정이자 인정을 담고 있다. 그 매사에는 언제나 뜨거운 가슴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고 평했다.
장애선 시인은 전남 강진 출생으로 조선대 국문과와 전남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 1998년 ‘사람의깊이’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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