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퍼즐 맞춰…‘아카이브 공간’ 문 열었다

나주정미소, 방치된 2동 복원 마무리
작은미술관·공연장…자료 제시 가능

엄재용 인턴기자 djawodyd0316@gwangnam.co.kr
2025년 09월 14일(일) 16:58
나주 정미소 2동이 아카이브 공간으로 탈바꿈돼 복원 전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가장 마지막까지 방치됐던 나주정미소 2동이 최근 복원돼 아카이브 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사진은 나주 정미소 2동 전경
나주학생독립운동의 장이 됐던 나주 정미소가 문화·예술의 장으로 새롭게 탄생한 가운데 5개동 중 2동은 가장 마지막까지 방치돼 왔다. 특히 2동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으로 평가받아 왔다. 나주학생독립운동이 모의됐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2동 건축물이 3일 준공 기념행사를 열고 새로운 아카이브 공간으로서의 출발을 대내외에 알렸다. 다만 원형을 되살리기 위해 자재들을 재활용했지만 공간이 조금 늘어난데다 높이를 조금 높여 완공하는 등 다소 오늘날 관점으로 접근해 아쉬움을 남기기는 했다. 현재 나주 정미소의 복원 전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번에 2동이 복원되면서 전남 나주 성북동에 위치한 나주 정미소는 더 완벽한 역사거점이자 문화예술 거점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나주정미소는 1920년대에 호남에서 최초로 세워진 기계식 정미소로, 일제강점기에 세워져 강제 수탈을 당한 아픔이 서려 있는 곳으로,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던 호남 유일의 정미소였다.

1929년 10월 30일, 조선인 여학생(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박기옥)을 못살게 굴던 일본 학생들과의 충돌이 생겼다. 박기옥의 댕기머리를 잡아 희롱하던 일본인 남학생을 박기옥의 사촌동생인 박준채가 항의한 것이 패쌔움으로 번졌다. 이것이 계기가 돼 자신의 형인 박준삼이 건립한 나주 정미소에 모여 회의를 한 것이 학생독립운동의 바탕이 되고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1950년대부터 1971년까지 금호그룹의 창업자인 고 박인천 회장이 ‘죽호정미소’로 운영하다가 불이 나 1980년대 이후로는 폐건물로 존재했다.

나주 정미소 5동 미술관 내 카페 전경
이 장소를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2016년 나주시에서 매입해 문화·예술의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나주읍성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이 주관한 ‘작은 미술관 조성 및 운영 지원사업’으로 만들어진 작은미술관은 지난 2024년 지역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공간은 공연장으로 활용돼 음악회, 토크 콘서트 등이 열리며 지역민에게 열린 문화 무대가 되고 있다. 5동은 내부에 카페가 있어 음료나 다과를 즐기며 작품 관람할 수 있어 모두에게 호평받고 있다.

작은미술관은 ‘수줍은 고백, 평범한 날들의 특별한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개관 2주년 기획초대전을 열고 있다. 이번 초대전은 오는 29일까지 나주정미소 내 전시관 4, 5동에서 진행된다.

김현희 총괄 큐레이터는 “지역민이 편안하게 오갈 수 있는 미술관의 느낌으로 참여작가도 일상을 그려내 관람하는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전시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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