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 칼럼]문화전쟁, 흥망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전장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
광남일보@gwangnam.co.kr |
2025년 09월 16일(화) 18: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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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이 ‘나의 소원’에서 남긴 이 말은 문화가 단순한 예술 장르가 아니라 국민의 정신과 품격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동력임을 압축한다. 선생은 일찍이 ‘문화의 힘’을 꿰뚫어 보았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한국은 ‘K-컬처’라는 이름으로 선생의 소망을 구체적 성취로 바꾸고 있다.
K-드라마, K-팝, K-푸드, 웹툰, 게임 등으로 확장된 한국 대중문화의 약진은 네 가지 요인이 맞물린 결과다. 독창적인 콘텐츠, 전통과 현대의 조화, 글로벌 전략, 그리고 민관 협력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문화산업을 국가 전략으로 격상시켰다. 현 정부 역시 ‘문화강국’ 비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책의 일관성이 생태계를 키우고, 튼튼하게 성장한 생태계는 세계적 히트를 낳는다.
문화는 ‘굴뚝 없는 산업’이자 본질적으로 ‘사람의 산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나라의 상징적 업적 가운데 문화적 성취는 늘 최상위에 놓였다. 그래서 역사 속 많은 전쟁은 자원과 영토뿐 아니라 장인, 기술, 서책, 지식을 겨냥한 ‘문화 전쟁’의 성격을 띠었다. 임진왜란이 그 상징적 사례다. 메이지 시대 일본 학계 일각에서는 이 전쟁을 “사치스런 해외 유학”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에겐 참혹한 비극이었지만, 강제 이주·납치·약탈을 통해 일본으로 옮겨진 기술과 지식은 이후 동아시아 문화 지형을 바꾸는 기폭제가 됐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유재란 당시 장수들에게 “세공 기술자와 손재주 있는 여성을 특별히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특히 탐낸 것은 도자(陶瓷)였다. 이때 끌려간 조선 도공 이삼평은 규슈 아리타에서 일본 최초의 자기 제작을 시작하게 했고, 심수관 가문은 사쓰마 도자의 명가로 이어졌다. 조선의 막사발은 일본 다도의 최고급 찻사발 ‘이도다완’으로 격상돼 권위와 명예의 상징이 됐다.
18세기까지 도자기는 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오늘날의 반도체에 비견됐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만든 조선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지녔지만, 일본은 목기와 도기 제작에 그쳤다. 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없어 중국·조선에서 완제품을 구하거나 약탈해 사용했으며, 전쟁을 통해 아예 도공을 납치해 규슈에서 생산하게 한 것이다.
사가현의 도자기 마을은 지금도 그 흔적을 간직한다. 아리타는 매년 봄 ‘도자기 축제’로 세계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이마리시 오카와치야마에는 이름 없이 생을 마감한 조선 도공들을 기리는 ‘무명 도공의 탑’과 880기의 무연고 묘가 남아 있다. 전쟁의 어둠과 산업 발전의 빛이 같은 공간에서 공존하는 모습이다.
도자만이 아니다. 일본에는 서책과 금속활자, 인쇄 기술도 대규모로 유입됐다. 1593년 조선에서 반출된 금속활자와 장인은 일본의 ‘게이초 인쇄’ 확산을 이끌었고, 이는 에도 시대 출판 번영의 토대가 됐다. 약탈된 서책들은 일본의 도서관과 사찰에 흡수돼 지식 기반을 넓혔다.
지식인 납치 또한 동아시아 사상사의 변곡점을 만들었다. 영광 출신 강항(姜沆)은 억류 중 후지와라 세이카와 교유하며 성리학을 전했고, 귀국 후 남긴 ‘간양록’은 일본 사상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됐다. 세이카는 도쿠가와 유학의 선구자가 되었고, 조선 학통은 일본 정치·교육·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이동은 사상과 제도의 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조선은 깊은 상흔을 입었다. 장인, 지식, 책과 도구의 유출은 생산 기반과 정신문화에 큰 공백을 남겼다. 왕실은 그릇이 없어 잔치를 열 수 없었고, 책이 부족해 세자를 교육하기 어려웠다. 명나라도 참전과 전비 부담으로 재정이 흔들리며 쇠락했고, 청의 부상 속에 동아시아 질서는 재편됐다. 반면 일본은 전리품으로 삼은 도공·서책·유학을 내재화해 문화 부흥의 토대를 쌓았다. 문화 역량의 격차가 곧 국가 경쟁력의 격차로 이어진 것이다.
임진왜란의 교훈을 ‘징비(懲毖)’ 하지 못한 조선은 곧 병자호란을 겪었고, 결국 1910년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다. 일제 36년의 치욕은 국가 몰락의 참담한 결과였다. 역사는 반복된다. 지나간 역사에서 우리는 준엄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오늘의 교훈도 분명하다. 문화의 중심은 사람이며, 특출한 인재 한 명이 거대 기업과 맞먹는 파급력을 발휘한다. K-컬처 시대, 정부는 생태계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원칙’을 지키고, 민간은 스토리·캐릭터 같은 원천을 직접 확보해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야 한다. 그래야 히트가 일시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자산으로 축적된다.
문화 전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다. 인재를 지키고 키우는 나라가 흥하고, 인재를 빼앗기거나 소홀히 하는 나라는 쇠한다. 배부른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결국 문화의 씨앗을 뿌리고 정성껏 키우는 일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