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킹 (가장 낮은 자유의 무대) 박성언 음악감독
광남일보@gwangnam.co.kr |
2025년 09월 25일(목) 17: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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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언 음악감독 |
나는 얼마 전부터 ‘소스 따로’라는 닉네임으로 버스킹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연이나 녹음이 없는 날 조금은 실험적인 음악을 연주해 보고 싶어서 버스킹을 했었다. 공연 예술인들은 공감하겠지만 특정 공연이나 녹음은 클라이언트나 기획자의 의도에 의해 준비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신만의 새로운 사운드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연주는 구연할 기회가 많지 않다. 나는 그런 나만의 니즈를 실현하기 위해 거리의 연주를 택했다. 버스킹 횟수가 많아지면서 몇 가지 느낀 점과 문화적인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것은 참으로 유쾌하고 소중한 경험이다.
일단 특정 장소에서 버스킹을 하다 보면 매일 마주치는 특별한 사람들을 알게 된다. 그들은 내가 그곳에서 연주하기 이전부터 그곳을 자주 왕래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그 장소는 나름 특별한 것이다. 우리가 텃세라고 부르는 특정 자리싸움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분야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매일 광장을 돌아다니는 청년은 내가 연주를 시작하면 반갑게 손짓하고 연주가 끝나면 내일 또 보자고 인사한다. 붉은 반짝이 옷을 입고 매일 같은 길을 걸어 다니시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은 나에게 기타만 연주하지 말고 싱어를 구해서 같이 하라고 매일 충고하신다.
이제는 그 잔소리가 반가워서 싱어는 절대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팁박스에 사탕과 음료수를 두고 가는 귀여운 아이들이 있고 본인이 밴드에서 노래와 기타를 연주한다면서 매일 와서 나의 연주를 듣는 잘생긴 청년도 있다. 참. 가끔은 화가들이나 사진 작가들이 지나가며 내가 연주하는 모습을 스케치해서 선물로 주고 가기도 한다. 그렇다. 우리가 특정 공연장에서 기획공연을 하는 경우 그 공연을 보러 와주는 관객은 대부분 지인들이거나 그 공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버스킹의 경우는 완전히 상황이 다르다.
그냥 지나가던 사람들이 연주를 듣고 가던 길을 멈추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실로 감사하고 감동적이다.
확실한 것은 연주를 잘하고 있을 때는 그만큼 많은 관객이 걸음을 멈춘다. 반대로 내가 실수가 많거나 헤매고 있으면 냉철할 만큼 사람들은 금방 지나친다. 어쩌면 버스킹은 진짜 나의 실력과 매력이 어느 위치에 와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인 것이다.
수 없이 지나치는 사람들이 관객이 될 수도 있고 그냥 행인이 될 수도 있는 자유의 무대인 것이다. 마지막 연주를 마치고 짐을 정리하면서 팁박스에 들어와 있는 지폐와 동전을 세어 본다. 오늘은 꽤나 많은 팁을 받았다. 거리의 바닥에서 아무의 도움도 없이 오롯이 나의 손가락의 힘으로 기타줄을 튕기며 땀을 흘려가며 번 가장 귀한 노동의 개런티이다. 이 순간 가장 높이 올라오는 감정의 단어는 ‘자유’이다. 그 누구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싶은 곳에서 마음껏 하고 그것을 응원해 주고 박수를 보내주는 거리의 관객들이 있는 한 나는 여전히 자유로운 예술가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문화예술지원사업들이 축소되어 간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사업예산들이 축소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위축되고 좌절하기보다는 거리로 나와서 자신만의 끼와 매력을 발산해 보는 것을 어떨까. 팁 박스에 지폐 한 장 없이 동전만 담긴다 하더라도 그 순간 광장에 진짜 예술가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