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세상읽기]‘케데헌의 힘’…한국호랑이 멸종사 세계에 알렸다
김상훈 기자 goart001@gwangnam.co.kr
2025년 09월 28일(일) 16:53
#1.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호랑이의 나라’라 불리웠다. 조선시대 한반도 전역에 널리 분포했던 호랑이는 단군신화, 민담, 전래동화 등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우리 민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물이었다. 우리나라 지도는 오래전부터 호랑이 형상으로 표현돼 왔고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마스코트 또한 이를 모티브로 한 ‘호돌이’였다. 한민족의 기상과 용맹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우리 역사와 문화에 뿌리 깊이 내려 온 것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제거의 대상이 됐다.

일본은 해로운 짐승이라 부르며 1917년 민간 사냥꾼으로 구성된 정호군(征虎軍)이라는 대규모 사냥대를 조직, 박멸에 나선 것이다.

조선 총독부의 지원을 받은 이들은 총기와 화약으로 무장하고 지리산 태백산 백두대간 등 호랑이 서식지에 들어가 조직적으로 사냥을 했다.

대대적인 토벌작전으로 호랑이 개체수는 단기간에 줄었고 죽은 호랑이의 가죽과 송곳니, 뼈는 귀한 사냥전리품으로 일본 본토로 반출됐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벌목과 개발로 서식지가 줄어든 상황에서 대규모 토벌까지 겹치면서 호랑이는 차츰 한반도에서 사라져 갔다.

1920~1930년대 호랑이 목격사례는 거의 없었고 1940년대 이후에는 사실상 멸종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일제의 호랑이 사냥은 단순한 시민안전 차원을 넘어 조선의 상징적 존재를 통제해 식민지배의 질서를 확립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조선인의 용기와 자존심의 상징인 호랑이가 일본 식민통치의 걸림돌이 되자 이를 제거한 것이다.



#2.

그렇게 ‘통한의 역사’의 한장으로 남아 있던 우리나라 호랑이가 최근 전 세계인의 재조명을 받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스트리밍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보급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이를 소환했다는 것이다.

일본 소니 픽처스 등이 만든 이 영화는 3명으로 구성된 K팝 걸그룹이 악령을 사냥하는 퇴마사로 활약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한국 전통문화와 무속 신앙, K-POP 팬덤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지난 6월 20일 공개이후 지금까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 특성상 보통 2~3주면 뜸해지는 인기를 3개월 가까이 유지하고 있고, 오히려 글로벌 음원 차트와 챌린지, 굿즈 품절, 한국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실제로 플랫폼 콘텐츠 중 세계 최초로 누적 시청수 3억회를 돌파했으며 OST는 빌보드 핫100 싱글차트, 스포티파이 1위 등 세계적인 음악 차트 상위권에 머물러 있으며 ‘넘사벽’인 BTS의 기록까지 뛰어 넘을 기세다.

특히 영화속에 잠깐 등장하는 호랑이 캐릭터 ‘더피’는 아픈 우리 역사를 세계에 알리는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다.

‘더피’에 매료된 한 해외 인플루언서가 한국 호랑이를 검색하다 호랑이 멸종사를 알게 됐고 이를 글로벌 숏폼 동영상인 틱톡 영상으로 올리면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 영상은 조회수 170만회,좋아요 18만개를 기록할 정도로 퍼져 나갔고 많은 네티즌들의 공감을 불러왔다.

일부 네티즌은 댓글창에 “한국이 불쌍하다”, “아직도 일본이 사과하지 않았다”는 반응을 이어가면서 위안부 등 다른 일본의 과거문제까지 소환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일본 회사가 만든 한국적인 스토리가 의도치 않게 일본의 과거 만행을 다시 환기시키며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3

중국에서도 일본 과거사를 정면으로 고발하는 콘텐츠가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731부대가 자행한 생체실험을 다룬 영화 ‘731’이 최근 개봉됐는데 개봉 첫날 3억 위안(약 585억 원)을 벌어들이며 중국 영화 사상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이다. 1931년 9월 18일 일본이 만주를 침범한 날짜에 맞춰 공개된 이 작품은 3000명 이상의 중국인, 한국인, 러시아인이 희생된 사실을 토대로 제작돼 중국 관객들의 큰 호응을 사며 반일감정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들 영화는 현대 사회에 있어 문화 콘텐츠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보여주는 사례이자 대중에게 친숙한 애니메이션 등이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확산시키는 매개체가 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잘 만든 문화콘텐츠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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