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은 삶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자 숙명같은 것이죠"

[남도예술인]‘제26회 신세계미술제’ 신진작가상 임다인
미술제 수상 터닝포인트…전업화가에 더 확신 계기
뉴욕 유학 후 귀국 8년차 전업화가로 창작활동 활발
"현장에서 좋다는 평…도움주는 작가 됐으면 해요"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10월 15일(수) 18:07
임다인 작가는 “선한 영향력의 작가가 되는 게 오랜 꿈”이라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중 수 있는 작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밝혔다.
‘Clear-ish’
광주시립미술관 북경창작센터에서 2019년 1년 동안 입주작가로 활동을 펼친 이력이 있음에도 이름이 낯설었다. 그는 광주출생으로 광주예고를 거쳐 경희대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미국 프랫인스티튜트 순수미술대학 회화전공(석사)을 끝마친 뒤 현재까지 서울을 연고로 전업화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어서다.

화가의 경력은 개인전 기준으로 하면 2016년 미국 뉴욕 소재 The Path Home, Steuben 갤러리에서 가졌으니까 9년차로 볼 수 있다. 화가로서의 첫 발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2012년 서울 Spielplatz Han 갤러리에서의 ‘시작’전을 꼽을 수 있겠다. ‘시작’전으로 하면 그는 13년차 경력을 가진 화가라 할 수 있겠지만 가장 정확하게 따져보면 전업화가 이력은 2013년부터 시작된 유학 생활을 2017년 끝내고 한국으로 아예 돌아와 전업화가로서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2018년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그래서 햇수로 8년차로 채 10년이 안된 신예다.

고향인 광주에서는 그렇게 크게 부각된 것이 아니어서 그의 이름을 눈여겨보지 않으면 인지할 수 없기는 하다. 더욱이 광주예고 시절 동기들이 거의 창작을 놓은 상태인 듯하다. 누구의 동기, 이런 식으로 연결지어보려 했지만 단 한명의 이름도 거명되지 못했다. 이처럼 눈에 설은 작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 17일 ‘신세계미술제’ 시상식을 앞두고서였다.

그가 ‘제26회 신세계미술제’ 신진작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창문을 통해 삶의 일상과 순간 등 시간성을 투영해 작업을 펼쳐온 ‘창문의 화가’ 임다인 작가(36·경희대 출강)가 그다. 임다인 작가의 화면에는 창문이 자리한다. 그 창문은 단지 투영된 세계만이 반추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와 과거라는 시간성 뿐만 아니라 구상과 추상의 작업적 기법까지 망라돼 있어 일상적 창문 들여다보기의 무료함만이 있지는 않다. 그의 창문에는 한 작가의 지금까지의 삶을 응시할 수 있는 마음 안팎의 풍경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의 화면을 바라보는 일이 적적하고 심심함만이 그득하지는 않다.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거나 흘러가는 물결같은 일상의 한 장면이 그대로 멈춘 듯하며, 의식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소소한 일상의 한 단면으로 채워져 있다. 이런 그가 신세계미술제 신진작가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가 신진작가상을 수상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따랐다. 실제 신세계미술에서의 수상은 그에게 터닝포인트 마련이라 할 수 있다.

뉴욕 유학시절(2013∼2017) 때 ‘광주신세계미술제’를 알게 됐고, 귀국하면 신세계미술제부터 거쳐야겠다는 생각을 다진 듯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6년이 흘러가던 2023년 신세계미술제를 도전했지만 1차 심사만 통과했다. 2차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작가에게 신세계미술제는 다른 작가들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국내 많은 미술상 중 고향에서 수여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가장 공정하고 유망한 작가들에 주는 상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신세계미술제에서의 수상은 어느덧 한국에 돌아온 뒤 제1의 목표가 돼 있었고, 드디어 자신만의 숙원이 풀리게 된 것이다.

‘Night’
“신세계미술제 수상은 비로소 제대로 된 시작점을 맞이한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2023년 때 처음 응모를 했는데 그 당시 2차 심사 때 심사위원들께 피드백을 받았고, 발전을 시키고 싶었는데 놓치고 있던 힌트를 얻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무렵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는데 개인적으로 확신하던 것이 없어 고민하던 시점이었어요. 동굴에서 수련하는 기분으로 작업을 다시 되돌아본 게 큰 힘이 된 것이죠.”

그의 작품의 중요한 키워드는 ‘안식처’인데 작가의 시작점을 신세계미술제를 통해 의미있게 시작하면 개인적으로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희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수상하게 돼 감사할 따름이라는 소감을 빠뜨리지 않았다.

수상 요인으로 그 전에는 야망을 가지고 작가로서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잔뜩 힘을 주며 긴장된 상태로 한때 작업을 했지만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며 작가로서, 한 사람으로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근본적 이유가 무엇일까’를 되새겼고, ‘왜 그림을 그려야 하며 그림을 통해 대중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한 시간들로 보냈다고 한다.

새롭게 시도한 추상과 구상의 공존 형태, 그리고 창문의 형태를 그림으로 그리던 것에서 작은 조각으로 퍼즐처럼 퍼트리거나 확장시키는 형식을 보인다거나 또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됐던 계기가 이번 신세계미술제였다고 귀띔했다. 그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보였던, 새로운 시도나 연구, 진정성어린 태도가 이번 심사에 잘 전달된 듯하다는 것 같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8년차에 이르러 신세계미술제 수상을 통해 터닝포인트를 마련한 작가는 예술에 대해 더욱 소중한 인식을 가져가는 것으로 읽힌다. 그는 8년차가 돼 보는 예술에 대해 “연애같다”고 들려준다.

“소중하고 귀하며 뜻깊은 인연이죠. 제 감정과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에 떼려야 땔 수 없는, 또는 잡으려 하면 멀어지거나 멀어지다가 가까워지는, 건강한 줄다리기 같은 존재같아요. 그래서 탐구나 실험을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익숙하다 싶으면 제 그림이 금방 알아차릴 뿐만 아니라 어떤 매너리즘이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요. 작업은 제 삶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자 숙명같은 것이죠.”

‘Outhouse’
‘Whispering Slit1’
그는 작업에 대해 포기할 수 없는 것이자 놓을 수 없는 것, 마땅히 해야 될 일로 인식한다. 어찌됐든 신세계미술제 수상은 전업작가로의 확신을 더 굳히게 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상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는 전업화가로서의 진로에 변함이 없다. 전업작가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생계의 불확실함이나 현실적인 두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8년간 작업을 해본 바로는 작업을 놓지 않고, 자기를 계발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이어가는 한편, 꾸준함을 이어가면 그림만으로 삶이 유지되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에 전업작가가 두렵거나 망설여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전업화가를 하지 않았으면 강의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다만 미국에서 어렵게 석사까지 하고 ‘박사학위는 왜 안 하느냐’는 질문에 출강 자체를 대학강단에 서는 일로 단순하게 해석하지는 않아서인 듯하다. 그는 대학 출강 이유에 대해 생계나 일이 아니라 제 가치관 때문에 병행하고 있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다만 한국 대학에 없는 커리큘럼이 미국에서는 있었는데 이를 후배나 동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 강단에 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이 미국에서 축적하게 된 노하들을 학생들과 나누면 그뿐인 듯한 인상이 강했다.

“한국 대학에서 가르치지 않은 재료학 실습실험이 있었는데 국내 대학에는 없었어요. 굉장히 아쉬웠죠. 그때 당시에 ‘이런 교육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작가의 길을 더 빨리 개척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죠. 그래서 대학 강단 기회가 주어지면 후배들과 동료들에게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이 마음이 있어 지금 출강을 하고 있는 것이구요. 교단에서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교수나 강사의 노하우 등 실제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니까 오히려 진정성이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작가는 친인척 하나 없는 뉴욕으로 유학을 감행한 것에 대해 언급했다. 자신을 시험해 보기 위한 취지였으며, 새로운 문화를 흡수해보는 등 자신을 위한 테스트였다는 것이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기로 했으니까 실험해보자는 뜻으로 감행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작가가 꿈이라고 전했다.

“제 꿈이 선한 영향력의 작가가 되는 게 오랜 꿈이었습니다. 제 스스로 의심스러운 시간이 있었으니까 참 편안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자 편안한 사람으로 위안을 주며 안아줄 수 있는, 위로를 챙겨주는 작가가 되고 싶죠. 아울러 학교가 모든 것을 가르쳐주는데는 한계가 있죠. 현장에서 좋은 작가로 평가받으면 좋겠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작가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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