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실근 실근, 시리렁 시리렁…대박을 타보자

정승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관

광남일보@gwangnam.co.kr
2025년 10월 20일(월) 18:27
정승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관
미국 ‘이게 왜 되지?’, 일본 ‘이게 왜 되지?’, 한국 ‘이게 왜 되지?’.

최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케데헌’ 관련 짤이다.

한국인이 제작에 대거 참여하기는 했으나 기획도 자본도 플랫폼도 한국과 관계없는 작품이 잘 돼도 너무 크게 잘 되고 있으니, 모두가 당황하는 중이다.

1992년 ‘마카레나’ 이후 20년 만에 전 세계를 단결시키며 사람들을 여러 가지 의미에서 충격에 빠뜨렸던 ‘강남 스타일’은 빌보드 핫100 차트 2위에 올랐다. “졌.잘.싸. (졌지만 잘 싸웠다)” 분위기로 훈훈하게 마무리되나 싶더니 결국 2020년 8월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1위? 뭐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국뽕’ 충만한 분위기를 만들고야 말았다. 특히 앞선 2월에는 ‘기생충’ 열풍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고, 코로나19로 힘든 가운데서도 큰 힘이 되었었다.

일각에서는 “흥의 민족이 저력을 발휘했다”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철저한 기획력과 전문 예술인 양성 시스템이 만든 결과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아 올린 끝에, 이제는 한국 자체가 대중문화의 플랫폼이 되어 아이디어와 사람,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

여기까지는 예측 가능한 성공 신화다. 그런데 한국적인 소재로 남들이 주도하여 만든 콘텐츠가 글로벌 히트를 치고, 빌보드 핫100 역사상 네 번째 걸그룹(이라고 해야 하나?) 1위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보면, 만든 사람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게 왜 되지?”라는 반응이 더욱 와 닿는다.

다시 2020년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유튜브에서 평범한 공공기관 홍보영상이 5천만 뷰를 넘긴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바로 “범 내려온다”다.

이 곡은 2018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양정웅, 김보람, 장영규 등과 함께 제작한 ACC 미디어 판소리 첫 번째 시리즈인 《드라곤 킹(원작 수궁가)》 OST로 전통의 재연이나 퓨전이 아닌, 우리 시대에 함께 살아 숨 쉬는 판소리 형식을 취했다. 소리꾼 개인의 인기가 폭발적이었던 경우는 과거에도 (1930년대 “쑥대머리”로 100만 장을 넘겼다는 전설이 있는 임방울 선생님 이야기) 있지만 전통 기반 콘텐츠만으로 세대를 넘나들며 히트한 사례는 드물다. “범 내려온다”의 성공 요인은 “우리 것이니까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강요하지 않고 그저 재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공연을 만드는 방법과 즐기는 방법 모두 과거와는 달라졌으니, 오늘을 사는 예술가와 관객도 그들에게 맞는 방법론이 필요했고, 그러한 요구를 읽었을 뿐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온갖 것에 그놈의 “K-”를 붙이려는 병이 재발한다.

“아니, 케데헌 우리 이야긴데 왜 우리는 이런 거 못 만들어?”, “오징어 게임 같은 거 안 되나?”, “범 내려온다 Ⅱ 같은 것 좀 만들어봐.”

앞선 히트작들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기획자와 예술가가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철저한 계산을 한 끝에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기획을 잘하고 예산을 지원한다고 모든 것이 다 터지지는 않는다. 운과 타이밍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데 결국 그 운과 타이밍마저도 읽어내는 자가 크게 성공한다.

자, 그럼 우리는 열심히는 하되 마지막에는 운에 맡기는 ― 진인사대천명을 해야 하는가?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는 마당에 그럴 수는 없다. 성공을 꿈꾸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열정이나 근성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지고 사라지는 시대에 우리는 트렌드를 읽되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는 감각을 길러야 한다. 유행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개미 투자자가 망하는 지름길은 신문을 보고 매수 주문을 날리는 것이고, 자영업자는 “요즘 이거 유행이래!”라고 생각하는 순간 개업하기도 전에 폐업의 길을 걷게 된다. 특히 15분짜리 영상도 끝까지 보지 못하고, 5분도 길어서 1분 숏츠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두 시간 동안 꼼짝 못 하고 객석에 앉아 있어야 하는 공연 장르는 이런 점에서 더욱 취약하다.

그래서 필요한 건 ‘기획력과 이를 구현하는 연출력’인데 이는 나 혼자 만족한다고 끝나지 않고 예술 작품의 최종 감상자인 관객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자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타이밍에 세상과 만날지를 계산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여기에 더해 ‘감’도 중요하다. 감은 끝없는 연구와 실험에서 나오고, 연구와 실험은 많은 실패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과학도 그렇지만 예술에서도 투자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야 소위 ‘대박’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형 블랙박스를 메인으로 갖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은 이렇게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만든 곳이라 연출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극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 ‘드라콘킹’ 제작진들이 7년 만에 다시 모여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 흥보가 터뜨린 박에 못지않은 빅재미를 건져 올리려고 실근 실근… 시리렁 시리렁… 박을 타는 중이다. 예술의 금은보화가 나와서 관객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의 전통 소재가 21세기의 옷을 입고 우리 세상으로 다시 들어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대박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니, 치열하게 준비하는 한편, 20세기 초대 헌터이신 저고리 시스터즈의 축복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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