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 도시의 예술적 희망 어디에서 봐야 할까

고선주 문화체육부장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11월 09일(일) 17:54
고선주(문화체육부장)
광주는 예로부터 예향이라 불리웠다. 그만큼 예술의 지평이 넓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다방에서 전시가 열리고, 웬만한 식당에는 회화 한 점 걸려 있던 곳이 광주였다. 남종화의 본향이었고, 광주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화가 됐다. 미술계에 여전히 성행하는 레지던시 역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북경창작센터와 팔각정 스튜디오를 오픈, 운영한 곳 또한 광주였다. 이처럼 처음으로 기록된 ‘예술적 키워드’가 부자인 곳이 광주다.

이같은 찬연한 예향에 대한 카테고리는 하루 이틀사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미적 감각 혹은 예술에 대한 열린 인식이 더해져 일찍부터 그 흐름이 형성됐던 것이다.

회화에 의재 허백련 오지호 , 문학에 용아 박용철 다형 김현승, 국악에 국창 임방울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거장들이 즐비하게 배출됐고, 그 면면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근래에는 한강이 국내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면서 또 한번 광주의 예술적 자산이 확보됐다. 타지역의 시각이 의식돼 한강이 광주 사람이라는 소리를 떠들고 다닐 수는 없었으나 내적 자부심은 숨길 수가 없었다. 한국문학의 오랜 염원이었던 노벨문학상 수상은 전라도만의 경사는 아니고, 전국민의 경사이자 쾌거였다. 그로부터 1년이 조금 더 지나갔다. 그럼에도 예술계 거목들이 즐비한 광주의 고민은 찾아보면 너무나 많다. 문화도시니, 문화중심도시니 하는 명칭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진정 문화도시에 살고 있는가’라는 반문에는 흔쾌히 대답할 수 없다.

어쩌다 서울에서 예술계 손님들이 찾아오면 의외로 데려갈 곳이 떠오르지 않는데서 막막함을 느끼곤 한다. 명칭이 문화도시라고 해서 ‘문화도시가 되겠냐’고 강한 질책 혹은 의구심을 거둬들일 수 없는 현실이 야박하기 그지없다.

현시대 광주는 어쩌다 문화도시나 예술도시의 가장 높은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는지 의아하다. 예술적으로 보면 막강한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고, 전국을 주름잡는 신예 예술가들도 넘쳐나야 정상적이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인적 자산은 물론이고 공간에 관한 문제도 간단치 않다. 광주정도 되면 적어도 도심에 ‘예술특구 하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타지 사람들의 지적을 들을 때마다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한 명의 예술가가 해당 도시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이를테면 의재 허백련이 있다면 의재의 공간들과 그의 삶 및 회화정신을 기리기 위한 미술관이 자리해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만약 의재의 작품만을 본다면 미술관만 자리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의재의 명성 때문에라도 의재의 생전 공간들은 대중들의 관심 지점으로 부각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지점들을 묶어낼 때 그 파급력은 증폭된다.

그래서 작품론만 가지고는 해당 예술가를 모두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작가론 역시 중요하다. ‘작가가 어디에 살았고, 어디에서 전시를 했으며, 어디에서 작업을 했는가, 어떤 버릇이 있는가’는 그의 예술에 유무형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어 그 루트를 쫓아가고픈 욕망이 일반들에게는 생기게 마련이다. 오로지 작품으로만 그 예술가를 이야기한다면, 서사의 한축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어서 대중들의 꾸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과 지속해가는 일이 금방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예술특구같은 구역이다. 특정 예술가와 묶이지 않아도 되기에 예술에 관심이 있는 도시라면 실제 재생으로 관광까지 되살릴 수 있는 여지가 많아서 오늘날 관점에서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광주가 예술특구를 조성했을 경우 가장 설득력이 높은 도시 중 하나였다. 만약 예술의거리가 활성화됐다면 예술특구에 대한 설계가 확실하게 이뤄졌을 지 모른다. 왜냐하면 관의 인식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기에 그렇다. 예술의거리는 특화거리로 조성된 지 40여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여전히 활성화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으니 ‘예술’字가 들어간 공공의 공간이 기대만큼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술특구 하나 없으니 예술의거리라도 살아났더라면 덜 초라했을 것이다. 예술특구로 가능성이 있는 방직공장마저 근래 철거를 한 마당이다. 이 도시의 예술적 희망을 어디에서 봐야 할까 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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