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미·토끼·소금, 가을에 만나는 광주시립미술관" 윤익 광주시립미술관장
광남일보@gwangnam.co.kr |
| 2025년 11월 13일(목) 18: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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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익 광주시립미술관장 |
전시실에 들어서면 우선 ‘장미’의 공간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시간이 멈춘 듯 화려하게 빛나는 연분홍 꽃잎, 깨어지고 재결합된 도자의 형상은 아름다움이 가진 덧없음을 일깨운다. 이어지는 ‘토끼’의 섹션에서는 남겨진 개인이나 집단의 상실감을 드러내며 현실의 문제에 대한 공감을 이끈다. 마지막 ‘소금’의 공간 역시 존재의 생명과 기억의 장이다. 나무와 이끼, 식물의 독백이 관람자들에게 감성의 언어를 전달하며, 쌓아진 소금 결정의 형상과 빛은 관객의 마음을 달래며, 고통과 치유, 기억과 망각의 경계를 서정적으로 드러낸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은 관람객이 단순히 ‘보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작품의 의식에 ‘참여하는 존재’로 초대된다는 점이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멈춰 서는 순간, 이미 제의의 한 부분이 된다. 빛과 시간, 소리와 형상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우리는 무의식의 감각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제의’로서의 예술이 인간의 내면을 어루만지는 과정이다. 이처럼 미술관을 방문한다는 것은 단순한 전시 감상이 아니라 문화적 재충전의 시간이다.
빠르게 흐르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사유와 감정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경험, 그것이 미술관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이다. 작품을 보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레 타인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익숙했던 사물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예술은 결국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문화적 자극이며, 그것은 곧 삶의 감수성을 넓히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광주시립미술관은 특히 지역민에게 ‘일상 속의 문화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비엔날레 전시를 계기로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제시하는 동시대 예술의 언어를 직접 접할 수 있으며, 지역 청년 작가들의 실험적인 시도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지역과 세계, 개인과 사회를 잇는 문화적 교류의 장이자, ‘광주’라는 도시가 예술로 성장하는 과정 그 자체이기도 하다. 전시 관람을 마친 뒤에는 중외공원의 ‘아시아 예술정원’을 산책하길 권한다. 미술관을 품고 있는 이 아름다운 정원은 가을의 풍경 속에서 예술의 여운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완벽한 장소이다. 다채로운 조각 작품이 숲과 어우러져 있으며, 바람결에 흔들리는 잎사귀 사이로 예술이 자연과 만나는 풍경이 펼쳐진다. 잠시 벤치에 앉아 전시에서 느낀 감정을 되새기다 보면, 예술과 일상이 한데 이어지는 경험으로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가을의 미술관은 단순히 계절의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에 감각을 불어넣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어주는 ‘문화적 제의’의 장소다. ‘장미 토끼 소금’ 전시는 그 제의의 중심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아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전시장을 나와 공원의 길을 걸으며, 삶이 여전히 아름답고 유한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예술은 언제나 그 계절의 언어로 말을 건다. 이 가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살아 있는 제의’를 공감하고, 중외공원의 가을빛 속을 걸으며 마음의 호흡을 가다듬어보자. 그것이야말로 예술과 자연이 함께 건네는 가장 깊은 위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