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통과 연소…눈물로 이뤄낸 정화

고성만 두 번째 시조집 ‘마늘’ 출간
시인의 내면에 형성된 형상들 조망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5년 12월 04일(목) 18:23
‘마늘’ 표지
고성만 시인의 두 번째 시조집 ‘마늘’이 다인숲시선 7번째권으로 최근 나왔다. 이 작품집은 유년기의 향토적 추억에서 출발해 장년의 자아 성찰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내적 성장기를 그려낸 서사적 시집으로, 단순히 한 시인의 개인적 회고를 넘어, 독자에게 ‘내면을 향한 긴 여정’을 환기한다. 성장기의 순수한 동경, 현실의 굴욕과 좌절, 그리고 끝내 도달하는 정화와 성찰까지-이 시집은 우리 모두가 거쳐온 삶의 길목을 낭만적으로 비추며, 시조가 품을 수 있는 내면적 깊이를 새롭게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그의 이번 시조집에는 ‘상실’과 ‘그리움’이 넓게 드리워져 있다. 어린 시절 ‘은사시 숲속에서 첫 입술을 주던 애인’이나 ‘소중한 구슬 딱지를 건네주던 친구’는 단순한 기억을 넘어, 시적 자아가 여성성과 처음 맞닥뜨린 무의식적 원형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세계는 현실 속에서 쉽게 파편화되고, 끝내 회복되지 못하는 잃어버린 에덴으로 남는다.

시 속에서 반복 등장하는 ‘누님’, ‘누이’, ‘새댁’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에 형성된 아니마(Anima, 내적 여성성)의 다양한 얼굴로 해석된다. 이 여성상들은 보호자이면서도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고, 때로는 상실과 좌절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시인은 사랑과 성장이 언제나 아이러니와 역설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표제작 ‘마늘’은 이 여정의 정점에 있다. ‘불판 위에 올려진 이백여 뼈마디’라는 이미지 속에는 삶의 고통과 연소, 그리고 눈물로 이뤄낸 정화가 담겨 있다. 마늘은 결국 향토성과 생명력, 슬픔과 치유를 동시에 상징하는 메타포가 된다.

고성만 시인
마늘이 시인에게 삶의 고통과 연소의 상징이었다면 ‘보늬’는 낯선 단어이지만 외피로서의 삶이 아니라 내면이나 본질로서의 삶에 대한 시적 형상화다. 시인은 귀가 순해진다는 나이대를 살아내고 있어 충분한 시적 사유로 보늬같은 시적 결기를 구축할 수 있었을 터다. 여기서 말하는 보늬는 밤이나 도토리의 속껍질을 말한다. 관찰과 감성의 농밀한 밀도를 느낄 수 있다. 시인은 ‘다람쥐가 숨겨놓은/알밤에서 돋은 싹//비바람 눈보라/툭, 떨군/열매 하나//억지로 껍질 벗기면/칼날을 무는 마음’이라고 노래한다. 껍질과 칼날의 비유가 예사롭지 않은 깊이를 더한다.

이 시조집은 ‘월봉서원 앞 감나무’를 비롯해 ‘검은 꽃의 감정’, ‘보늬’, ‘눈물주의보’등 제4부로 구성됐으며, 일상 틈틈이 창작한 70편의 시조가 실렸다.

염창권 시인은 표사를 통해 “시적 자아가 유년기부터 장년기까지 아니마를 통해 자기 내면을 탐색하고 재구성해가는 드라마다. 여성상은 단순한 회상의 대상이 아니라 자아 내부에서 형성되고 소멸했다가 다시 귀환하는 심리적 실체로 나타난다. 비로소 자아의 내면을 드러내는 시조, 성장기 소년의 감수성을 잃지 않고 간직해온 나이 든 소년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근래의 시조단이 거둔 큰 수확이라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성만 시인은 전북 부안 출생으로 시와 시조, 산문을 창작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시의 경력은 이미 중견으로 진입했지만 시조는 그에 비해 경력이 길지는 않다. 2019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로 등단한 이후 2021년 첫 시조집 ‘파란, 만장’을 발간했으며, 2022년에는 시조시학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오랫동안 교육계에 몸 담았다. 광주 국제고 교사로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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