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뿐한 마음…광주시향 무한히 사랑했줬으면"

[남도예술인]정년 맞이한 광주시향 김용석·이제연 단원
시립교향악단 지탱한 중심축 이달 정년 맞아
열악한 환경 속 연주 매진…클래식 확산 기여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2025년 12월 10일(수) 18:40
이제연 상임단원.
시민 곁에서 클래식 진수를 선사해온 시립교향악단의 김용석 수석단원과 이제연 상임단원이 각각 정년을 맞는다. 사진은 김용석 수석단원.
김 수석, 타악기 불모지서 팀파니 1세대

장애인 음악교육·말렛 제작·판매 계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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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임, 관객으로 예술의전당 찾을 예정

“후배들 존중·소통 환경서 연주했으면”



광주지역 클래식 문화를 이끌어온 광주시립교향악단.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시민 곁에서 클래식 진수를 선사해온 시립교향악단의 김용석 수석단원과 이제연 상임단원이 각각 정년을 맞는다. 김 수석단원과 이 상임단원이 악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지역에서 전문 연주자를 찾기 힘든 시기였다. 하나 둘 클래식에 귀를 기울이던 때, 이들은 전문 연주자의 길을 택한 것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즐겼다는 김 수석단원은 1984년 시향에 발을 들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밴드부에 들어가 타악 파트를 맡게 되면서 ‘쿵짝쿵짝’소리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게 계기가 돼 진로를 고민하다 당시 준단원 오디션을 봤다. 스무살에 준단원이 된 그는 서울로 레슨을 다니며 타악 연주자의 길에 입문했다.

“진로를 고민하면서 산다는 게 뭔지, 아름답고 순수하게 산다는 게 뭔지 고민하다 예술가로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다시 음악을 해봐야겠다 싶어 준단원 시험을 봤죠. 시립교향악단이 제 꿈을 인큐베이팅했다고 봐도 무방하죠.”

평단원이던 때 그는 좀더 넓은 세상에서 팀파니스트로서 평가를 받고 싶었다고 한다. 지역은 타악 불모지여서다. 그래서 유학을 선택,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음악원과 독일 쾰른 국립음대를 다니며 연주자로서 보폭을 넓혔다. 1989년에 다시 돌아온 그는 상임을 거쳐 수석에 올랐다.

이제연 상임단원은 초등학교 때 음악을 시작했다. 풍금을 치다 친구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보고 어머니를 졸라 피아노를 배웠다. 고등학생 때 교내 관현악반에 들게 돼 바이올린, 비올라까지 연주하게 됐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는 고 석봉룡 선생님이 창단한 교내 관현악반이 유지되고 있었죠. 피아노를 만져봤다는 이유로 손을 들었고, 관현악반에 들어가서 비올라를 시작했어요. 높은음자리표가 아니라 한음 내린 가온음자리표 악보를 보는 게 힘들었지만 오기가 나서 음계를 터득해 연주했습니다. 그게 이어져 음대까지 들어갔어요.”

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8년 시향에 들어간 그는 1년간 비상임을 하다 그 다음해 상임단원이 돼 여러 무대로 시민들과 만났다. 이들은 클래식 연주자가 되기 위해 연습에 매진했지만 연주자를 시작할 때만 해도 열악했다고 입을 모았다. 비올라 연주를 하는 교수가 없어 바이올린 전공 교수로부터 배우면서 서울을 오가며 배움을 이었다. 팀파니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았다. 지역 클래식 발전과 함께 성장한 셈이다. 최근 400회 정기연주회를 마친 이들은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클래식이 세분화되지 않았고, 요즘처럼 미디어가 활발하지 않을 때여서 연주 역량을 키우고 싶으면 오직 발로 뛸 수 밖에 없던 시기였죠. 그래서 여전히 연습에 기댈 수 밖에 없고요. 그런 시기를 거쳤기에 연주자로서 시향의 400회 정기연주회는 상징적으로 다가왔습니다.”(김용석·이제연)

이들은 팀파니와 비올라의 매력으로 오케스트라의 중심을 잡아주는 힘을 꼽았다.

“팀파니스트로서 무대에서 곡의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노력해왔죠. 결정적인 순간, 팀파니가 오케스트라 전체의 템포와 캐릭터를 정의하는 지점이 있어요. 팀파니를 제2의 지휘자라 하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죠.”(김용석 )

“비올라는 은은하면서 깊이가 있는 음색이 아름다워요. 이런 면으로 인해 현대음악에서 솔로 악기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죠. 오케스트라에서는 선율과 하모니를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튀지 않지만, 빠지면 금세 허전해지는 악기예요.”(이제연)

두 단원은 오랜 세월 시향에 몸담았던 만큼, 각각 직장암을, 목디스크를 이겨내기도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시향 연주자를 그만둘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한다. 애초에 선택지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시향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제400회 정기연주회 ‘혁명가들’ 무대 모습.
1976년 창단해 지역 클래식 문화를 견인해온 광주시립교향악단 단원들.
아울러 연주자로서의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연주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이에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족도, 관객도, 나 자신도 바뀔 수 있죠. 처음에는 누구나 음악이 좋아서 시작하는데 요즘은 연주자라는 직업이 삶의 수단이 돼 안타까워요. 시향 연주자들은 최소한의 마음가짐이 달랐으면 하죠. 삶, 태도, 연습이 모두 예술적이어서 공연이 예술작품이 되는 가치의 변화가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김용석)

“오케스트라는 서로의 소리를 듣고, 맞추는 집단이죠. 좋은 오케스트라는 장기 근속 단원, 신입 단원, 젊은 단원이 적절히 섞여 있어야 해요. 선후배가 단순한 서열이 아니라, 동료이자 음악적 파트너였으면 좋겠습니다. 후배들이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는 환경에서 연주를 했으면 해요.”(이제연)

시향의 한 시대를 지탱해온 두 연주자는 이제 무대에서 내려와 또 다른 방식으로 광주 음악 생태계의 다음장을 써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좋은 연주를 위해서는 좋은 악기가 필요하죠. 유학 때 독일·베를린·뮌헨 등지에서 팀파니 스틱을 직접 만들어 썼던 경험을 살려 말렛 제작 회사 ‘캐릭터 킴 말렛’(Caratter Kim Mallets)을 아들과 함께 운영할 계획이에요. 연주자의 성품·캐릭터·품격까지 담을 수 있는 말렛을 만들고 싶죠. 작곡가의 개성과 음색을 오롯이 살려낼 수 있도록요.”(김용석)

“시원섭섭하지만 후련한 게 가장 크네요. 성실하게 버텨왔고, 할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은 신나게 놀러다니고 푹 쉴거예요. 이제 감상자의 입장에서 시향의 무대를 보기 위해 광주예술의전당을 찾아아죠.”(이제연 )

연주자로서 크고 작은 무대로 관객들과 만날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받은 사랑을 돌려준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매개로 청소년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한다.

김 수석단원은 광주 남구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지적장애 청소년들과 오케스트라 수업을 진행, 향후에도 아이들이 자기 세계에 갇히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돕는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이 상임단원은 곡성군립청소년관현악단 비올라 강사로 활동 중으로, 100여명의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협력하고 성장하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껴 앞으로도 꾸준히 할 계획이다.

끝으로 이들은 시향을 사랑해주기를 당부했다.

“우리 세대가 열악한 인프라 속에서 버티며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는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갔으면 해요. 앞으로도 지역을 대표하는 광주시립교항악단의 음악을 무한히 사랑해주시길 바랍니다.”(김용석·이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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