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유보통합은 ‘속도보다 어울림’

김인수 사회부장

김인수 기자 joinus@gwangnam.co.kr
2025년 12월 21일(일) 19:05
지난 가을, 광주 광산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인터뷰 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교육부로 다 넘어갔다는데, 정작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전남 순천의 한 공립유치원 교사는 또 다른 고민을 전했다. “하나의 체계로 묶여야 한다는 점에 공감은 하지만 무언가 손해 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기대와 불안, 환영과 혼란이 교차하는 풍경. 이것이 지금 광주·전남 유보통합 현장의 솔직한 얼굴이다. 30년 넘게 논의만 반복되던 유보통합이 행정 일원화라는 가시적 단계에 들어선 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러나 통합은 선언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가장 첨예한 쟁점은 교사 자격의 통합이다.

유치원 교사와 보육교사는 양성 과정과 자격 기준, 전문성의 방향이 다르다. 이를 단기간에 하나의 자격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현장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사립유치원에서 유보통합 간담회가 열릴 때마다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고 한다. “우리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교사들 사이에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 농산어촌 지역의 현실은 더 복잡하다. 전남지역은 경력 많은 보육교사들이 지역 돌봄을 사실상 떠받치고 있는 구조다. 이들에게 일괄적인 추가 교육이나 자격 전환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성도 낮고, 지역 돌봄 체계를 흔들 수 있다.

그래서 교사 자격 통합은 ‘직선 도로’가 아니라, 지역과 경력, 역할을 고려한 ‘느린 곡선’이어야 한다.

행정 통합의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관리 부처는 지난 2024년 6월 교육부로 일원화됐지만, 광주·전남의 보육 행정 실무는 여전히 지자체에 상당 부분 남아 있다. 중앙의 지침과 기존 복지 행정 체계 사이에서 현장 공무원들은 새로운 연결 고리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중앙의 통합보다 더 어려운 것은, 20~30년간 굳어진 업무의 관성을 다시 짜는 일이다. 충분한 로드맵 없이 추진될 경우 혼란은 불보듯 뻔하다.

재정 문제는 광주·전남에서 특히 민감하다.

민간·사립 시설 비중이 높고, 소규모 어린이집이 많은 지역에서 예산의 불확실성은 곧바로 서비스 공백으로 이어진다. 과거 누리과정 예산 갈등 당시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이유다. 유보통합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단순한 예산 확대가 아니라, ‘특별회계’를 마련하는 등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재정 구조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교사 자격 통합은 단계적이고 차등화된 상향 평준화 방식으로 접근해야 그나마 원만한 통합을 이룰 수 있다. 신규 교사부터 통합 양성 체계를 적용하고, 기존 교사에게는 지역 기반 연수와 충분한 전환 기간을 제공해야 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연찬회 역시 갈등을 완화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또 하나 분명한 원칙은 지방자치단체를 배제한 유보통합은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이와 부모의 삶은 결국 지역 행정과 맞닿아 있다. 교육부·교육청·지자체 간의 삼각 협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통합은 ‘서류 속 제도’에 그칠 뿐이다.

무엇보다 유보통합의 중심에는 언제나 아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제도 논의가 가열될수록 정작 영유아는 논리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현실이다. 지역에서 작은 어린이집 하나가 문을 닫는 것은 단순한 시설 폐쇄가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런 지역성을 반영하지 않는 통합은 ‘소탐대실’의 헛발질로, 결코 오래 갈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유보통합은 ‘누가 이기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함께 가느냐’의 문제다. 속도를 조금 늦추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 조정하며,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특히 광주·전남처럼 사립·민간 어린이집 비중이 높고, 농산어촌 돌봄 수요가 고르게 분포된 지역일수록 ‘속도전’이 아닌 어울림에 기반을 둔 ‘맞춤 설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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