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 여객기 참사 1주기]1년의 공백, 진실은 어디에…끝나지 않은 비행

항공안전 혁신 외쳤지만 구조 개혁은 제자리 걸음
항철위 독립성 논란 제동…경찰 수사 결과도 아직
무안공항 폐쇄 장기화…지역 경제 피해 ‘눈덩이’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2025년 12월 28일(일) 18:27
1년의 공백, 진실은 어디에…끝나지 않은 비행

[12·29 여객기 참사 1주기]

‘항공안전 혁신’ 외쳤지만 구조 개혁은 제자리

항철위 독립성 논란…경찰 수사 결론 못 내려

무안공항 폐쇄 장기화…지역경제 피해 눈덩이



작년 12월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탑승객 181명 중 179명이 숨진 이 사고는 국내 항공사고 역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로 기록됐다. 사고 직후 대한민국 사회는 한목소리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이 어디까지 이행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참사는 한순간에 일어났지만, 그 이후의 시간은 길고 더디다. 정부는 항공안전 체계 전반을 손보겠다며 대책을 내놓았고, 항공업계 역시 정비 강화와 감독 시스템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사고 원인에 대한 최종 결론은 아직 나오지 않았고, 무안국제공항은 지금도 굳게 닫혀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가족들의 상처와 의문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진상 규명이 지연되는 사이, 사회적 관심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국가의 책임 있는 답변과 실질적인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참사 후 전국 공항 방위각 시설 정비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항공안전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항공안전 혁신방안’을 발표하며 공항과 항공사를 양대 축으로 한 안전 강화에 나섰다.

사고의 직접적 원인뿐 아니라 항공 안전 전반을 점검하겠다는 취지였다. 공항 시설의 구조적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항공사의 정비·운항 관리와 감독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책의 출발점은 참사의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 무안공항 활주로 끝단의 콘크리트 둔덕, 이른바 로컬라이저였다. 국토부는 무안공항을 포함해 전국 7개 공항에서 방위각 시설 개선이 필요한 9개 지점을 점검했고, 이 가운데 4곳은 이미 개선을 마쳤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제거하거나 항공기 충돌 시 쉽게 파손되는 구조로 바꾸는 방식이다.

여수공항은 이달 말, 김해·사천공항은 내년 2월까지 공사를 마칠 예정이며, 제주공항은 기상 여건을 고려해 내년 8월 착공해 2027년 3월 이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고 이후 전국 공항의 물리적 위험 요소를 단계적으로 정비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참사 현장인 무안공항만은 예외다. 유가족들이 “온전한 진상 규명이 우선”이라며 현장 보존을 요구하면서, 시설 개선 공사는 설계를 마친 채 멈춰 서 있다. 개선과 조사 사이에서 공항 정상화 일정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감독관 1명=항공기 10대 관리…인력난 그대로

공항 시설과 함께 항공사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도 병행됐다. 국토부는 항공기의 비행 전·후 및 중간 점검에 투입되는 정비 시간을 기존보다 7~28% 늘렸고, 안전투자 공시 제도를 손질해 신규 항공기 도입과 정비 설비 확충을 유도하고 있다.

활주로 이탈, 회항, 화재 발생 빈도 등을 종합 평가하는 ‘항공안전 성과지표’ 도입도 준비 중이다. 성과가 미흡한 항공사에는 신규 노선 허가 제한이라는 실질적 불이익이 뒤따른다. 형식적인 점검을 넘어 안전 성과를 기준으로 항공사를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예방 대책도 강화됐다. 국토부는 5년 단위의 중장기 ‘조류충돌 예방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공항별 연간 위험관리계획을 의무화하는 공항시설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공항별 전담 인력은 기존 2명에서 최소 4명 이상으로 확대됐고, 전국 15개 공항에 열화상 카메라도 설치됐다.

하지만 항공안전 규정 준수를 감독하는 항공안전감독관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는 감독관을 기존 30명에서 올해 말 43명, 2027년까지 57명으로 늘릴 계획이지만, 국적 항공사 11곳이 운용 중인 항공기 432대를 고려하면 감독관 1명이 평균 10대를 맡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권고하는 적정 수준은 감독관 1명당 항공기 3.3대다. 미국과 프랑스 등 항공 선진국은 1명이 2대 내외를 관리한다. 인력 확충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양적 격차’는 여전히 크다.



△발표·공청회 무산…항철위, 신뢰 회복 절실

이 같은 한계는 항공안전 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사고 이후 항공업계와 학계에서는 “안전 감독 기능을 국토부에서 분리해 독립적인 항공안전 전담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ICAO 이사국 36개국 중 32개국은 이미 별도의 항공안전 전담조직을 두고 있다.

미국은 연방항공청(FAA), 영국은 민간항공청(CAA)이 항공안전을 총괄한다. 정책·산업 육성과 안전감독 기능을 분리해 이해 충돌을 최소화하는 구조다.

그러나 국토부의 항공안전 혁신 방안에는 ‘항공안전청’ 설립이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 진행된 조직개편 연구용역에서도 당장 분리 신설은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 규명을 맡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 역시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조사 진행은 아직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고, ‘국토부 산하기관이 국토부 책임이 걸린 사고를 조사한다’는 구조적 한계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위원장 사퇴와 항공정책실장 업무 배제 등 인적 쇄신이 있었지만, 불신은 해소되지 않았다. 올해 7월로 예정됐던 중간 발표와 이달 초 계획된 공청회도 유가족 반발로 무산됐다. 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절차 자체가 멈춰 선 셈이다.

다만 최근 사조위가 국무총리실 산하 조직으로 이관할 수 있는 법 개정이 국회에서 다뤄지고 있다. 사조위가 국무총리실 산하 조직으로 이관된다면 일부 유족들의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조사에 진척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여행사·교육계 직격탄…경찰 수사 공전

179명의 생명이 멈춘 지 1년이 됐지만, 무안국제공항은 여전히 멈춰 있다. 사고 당일부터 현재까지 공항은 전면 폐쇄 상태다. 재개항 시점은 수차례 연기돼 내년 1월5일까지 폐쇄가 연장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로컬라이저 시설이 관련 법령을 위반했다고 판단한 점도 정상화를 더디게 하고 있다.

공항 폐쇄의 여파는 지역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무안공항을 거점으로 삼았던 광주·전남 지역 여행사들은 국제선 운항 중단으로 사실상 영업 기반을 잃었다. 지역 업계는 올해에만 1000억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고, 국토부 연구용역에서는 여행사 매출 손실액을 2800억원 이상으로 분석했다.

영세한 1~2인 소규모 여행사가 많은 지역 특성상 일부 업체는 이미 문을 닫았고, 상당수는 존폐 기로에 놓여 있다. 공항 종사자 104명 역시 본연의 업무를 하지 못한 채 시설 관리와 유가족 지원 업무를 이어가며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미래 항공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 현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초당대학교 항공운항학과 학생들은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해 충북 청주공항까지 오가며 비행 교육을 받고 있다. 하루 이동 시간만 8시간에 달하는 일정은 체력적·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참사의 최종 원인과 책임자 규명하기 위한 경찰의 수사도 제자리걸음이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수사본부’를 운영하고 있는 전남경찰청은 사고 책임자 44명을 피의자로 특정하고,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중 유가족이 고소한 인원은 22명이며, 경찰이 자체 인지한 피의자는 28명이다, 이중 6명은 중복된다.

세부적으로 수사본부가 입건한 28명은 관제 분야 관계자 2명, 조류 관계자 3명, 2007년 공사·허가 관련자 8명, 2023년 공사·허가 관련자 15명 등으로, 모두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받고 있다.

유가족 측은 지난 5월13일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을 포함한 22명을 상대로 중대재해처벌법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현재 경찰은 방위각시설, 조류 충돌, 조종, 엔진 등 각 분야 전문가 면담과 항공 관련 법률 검토를 병행하며 사고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지만 워낙 입건자가 많은 터라 수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현재까지 축적된 수사 기록은 1만5000쪽의 방대한 분량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면밀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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