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 전남 말(午) 관련 지명 ‘전국 최다’

나주 마제촌·담양 다마산 등 유래…142개 분포
마을·거리·섬·고갯길…설화도 여기저기 전해져

임영진 기자 looks@gwangnam.co.kr
2026년 01월 01일(목) 18:44
2026년 병오년(丙午年)을 맞아 전남 곳곳에 남아 있는 ‘말(午)’ 관련 지명과 설화 등이 주목받고 있다.

1일 국토지리정보원 지명 자료에 따르면 전국 말 관련 지명 700여개 가운데 전남에만 142개가 분포해 전국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이동과 생존, 교류의 역사를 품은 생활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대표적인 곳이 나주시 다시면 ‘마제촌(馬蹄村)’이다.

이곳은 마을 지형이 말발굽처럼 휘어져 있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마을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말발굽 안에 마을이 들어앉아 재물이 모인다’는 풍수적 해석도 내려온다. 실제로 조선시대 이 일대는 영산강 물길을 따라 물산이 오가던 교통 요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안군 몽탄면 ‘하마거리’ 역시 말에 대한 설화가 있는 지명이다.

말을 타고 오던 이들이 이곳에서 말에서 내려(下馬) 장터로 들어갔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무안 일대는 서해 포구와 내륙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고, 하마거리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중심지였다.

산과 고개 이름에도 말의 흔적은 선명하다. 담양군 고서면 ‘도마산(跳馬山)’은 달리는 말이 산을 뛰어넘는 형상을 닮았다고 전해진다. 인근 마을에서는 ‘말이 하늘로 오르는 형국이라 인재가 난다’는 설화가 내려오며, 실제로 이 지역은 예부터 학문과 인물이 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섬 지역의 말 지명도 눈길을 끈다.

신안군은 ‘마을’, ‘마등’, ‘마동’ 등 말 관련 지명이 20여 곳이 넘는 지역으로, 해상 교통과 말의 이동 경로가 맞닿아 있었음을 보여준다.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인근 ‘마섬’은 섬의 형태가 바다를 향해 달려나가는 말을 닮았다는 데서 이름이 붙었다. 파도가 거셀수록 말이 바다를 향해 몸을 낮추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도초면 만년리에 있는 섬은 그 모양이 말처럼 생긴 말섬(馬島)이 있다. 장마도는 섬 모양이 말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생겼다 해서 장마도(長馬島)라고 불린다.

보성군에는 ‘말고리재’, ‘마산리’ 등 말이 쉬어 가던 고갯길과 방목지에서 유래한 지명이 남아 있다. 장흥군에는 말을 매어두던 곳에서 비롯됐다는 ‘마계(馬繫)’, 영광군에는 말 사육과 관련된 ‘마촌’ 지명이 전해진다. 섬의 지형이 말의 안장처럼 생긴 안마도(鞍馬島)라는 곳도 있다.

이들 지명은 단순히 동물 이름을 딴 것이 아니라, 말이 사람의 삶을 실질적으로 지탱하던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전남문화재단 관계자는 “전통 설화 속 말은 신성한 존재로 등장한다. 전남 곳곳에는 천마가 하늘과 땅을 오가며 복을 내렸다는 이야기, 말이 멈춰 선 자리에 마을이 형성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면서 “말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길을 열고 터를 정하는 존재로 보는 인식은 자연스럽게 지명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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