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광남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몸 언어가 자신만의 인도(仁道)를 관철할 때: 광주시립발레단 ‘DIVINE’
광남일보@gwangnam.co.kr |
| 2026년 01월 01일(목) 2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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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시립발레단의 ‘DIVINE’ 장면 |
2023년 초연한 광주시립발레단의 ‘DIVINE’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무대화됐다. 5·18 민중항쟁을 초점화한 이 대표 레퍼토리는 ‘신성한·천상의’라는 제목처럼 광주의 존엄한 희생을 발레 언어로 육화했다. 미국 컴플렉션즈 컨템퍼러리 발레단의 주재만 발레마스터가 안무를 맡아 지역의 비극을 인류 보편의 감정으로 치환해 낸 점도 일찍이 주목받았다. 지역의 오랜 비극사를 목도하면서 브랜드 가치마저 담은 추상발레 한 편이 지역 무용예술계의 변곡점이 되길 바라는 것은 과언이 아니다.
컨템퍼러리 형식과 결합한 현실 참여극이 새로운 미적 당위를 얻기를 기대하는 마음이야말로 ‘DIVINE’의 등을 미는 이유다. 그간 5?18을 모티브 삼은 작품 다수가 망자를 위무하는 살풀이로 전락했던 것이 사실이리라. 그런 가운데 ‘DIVINE’은 오월극에 투사된 애도의 목소리가 시혜적인 레퀴엠으로만 흘러가는 것을 막는 ‘이정표’로서 무대에 섰다. 발레극이 스스로 옳다 믿는 인도(仁道)를 관철하는 최선의 길은 무엇일까. 사유를 개진하거나 웅변으로 표명하는 방식도 의미 있겠지만, 관중 앞 ‘몸 언어’의 처절하고 묵묵한 재현이야말로 한 시대를 향한 가장 명징한 공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점차 과거사 비경험 세대가 공연장에 진입하며 역사를 재언(再言)하는 작품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라는 측면에서 작품은 존재 의미를 더한다. 극이 전재하는 특정한 토포스(topos·공간)에 부재했던 이가 작품과 근원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란 어려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인간의 사유가 개별적인 시공간에 영속되는 측면이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나’의 세계를 비경험한 ‘너’가 ‘우리’로 합치하는 일이란 경계를 초극해야 하는 작업일지 모른다.
이런 난점을 타개하기 위해 주재만과 박경숙 예술감독은 중층적인 방법론을 개진해 보였다. 하나는 컨템퍼러리 안무 실험을 통해 주제의식을 보강하는 것, 다른 하나는 처참했던 현장을 그저 발레 언어로 증언하는 것이다. 각각 사유의 전이와 응축이라는 측면에서 두 명제는 상이한 길을 걷지만, 광주시립발레단은 자기모순성을 넘는 신체-발화로 후세대에 추체험(追體驗)의 감각을 남겼다. 관객을 작품 안으로 초대하고 인입 (引入)시켰다는 의미와 진배없다. 나아가 ‘DIVINE’이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지 않는 까닭은 예술과 미학이 적정선에 맞물린 데 있다. 수많은 오월극들이 태생부터 안고 있던 과제에 적절한 경계선을 그은 형국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런 균형감각이 발레의 선이 되고 면을 이뤄
Ⅰ.망자들의 육화된 언어가 짓는 표정: 컨템퍼러리 미학
탄듀 각도나 그랑주떼의 고도보다 공연 후 관객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무용수 표정에 담긴 정동이다. 주재만은 이번 작품에서 감정 표출에 방점1)을 찍었다. 움직임, 시대와의 조응, 무대 구성 등 안무가가 컨템퍼러리 발레를 구상하는 주안점은 저마다 다르나 모션만큼이나 이모션에 역점을 둔 것은 의미가 있다. 내러티브 없이 심상으로 서사를 전하는 이 방식은 2020년 광주시립발레단이 광주항쟁 40주년을 기념해 서사 중심의 ‘오월바람’을 상연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광주예술의전당의 경우 대극장에서 상연했기에 객석 뒤편(최장 거리 32m)에서 표정연기를 온전히 느낄 순 없다. 그러나 ‘DIVINE’은 각각의 장막, 배우들의 감정이 하나로 조립되는 몽타주처럼 극 전체가 거시적 표정을 짓는다. 독립적인 갈라(Gala)와 같이 각각 이미지가 투시하는 상이 실존했던 것으로 읽힌다. 발코니형 프로시니엄 특성과 상부층까지 개방한 톱라이트 채광, 암울한 분위기의 조명과 스포트라이트도 사유의 이미지화에 한 몫을 했다. 관객들은 희로애락이 깃든 디테일을 놓치더라도 군무가 전하는 바를 뉘앙스로 전해 받는다. 이때 뉘앙스란 무대를 둘러싼 온갖 디테일의 범박한 총합이 아니라, 세밀한 태엽처럼 극의 사유와 표현 기법이 맞물려 작동하는 미적 감각의 총화에 가깝다. 다이내믹의 연결이나 섬세한 발레 라인의 구축, 다양한 발레의 배리에이션(variation) 요소도 관객들의 정념을 증폭시키는 수의근으로 분연히 작용한다.
다섯 개 노래와 안무로 채워진 1장 주제는 ‘자유’다. 무용수들은 화려한 점프 동작인 소떼나 그랑제떼 대신 바닥을 훑는 구르기를 시연하면서 관객들 이목을 사로잡는다. ‘어둠을 벗어나’라는 테마를 내건 2장에서는 보다 밝고 경쾌한 템포를 볼 수 있는데 운무로 분장한 무용수들의 코르 드 발레(군무)는 군중 위를 유영하는 단 한 명 발레리나로 초점화된다. 압권의 장면은 발레리노가 초대형 암막 커튼을 튀튀처럼 두른 채 장막을 흔드는 대목이다. 이 씬은 ‘DIVINE’이 광주의 질곡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는 계제와 같다.
주목할 부분은 극에 내재하는 은유들이다. 초입에서 발레리노는 전신에 힘을 뺀 채 발레리나를 허공에서 흔든다. 국가폭력에 탈각된 여성의 환신(幻身)은 그렇게 바닥으로 던져져 검정 재라는 다른 물성으로 전이되고, 무용수들은 흩뿌려진 검정을 흑건으로 내리쳐 반원형 파문을 만든다. 두 요소의 교섭은 오직 ‘몸’으로 이야기하거나 오브제에만 기대 묘사할 때 얻을 수 없던, 감각의 공진이요 신체 발화의 확장이다. 무용수의 감정이 투영된 듯 객석 앞에 흩날리는 분진은 공연자들의 팔과 다리가 늘어난 것 같은 환상통을 자아낸다. “정신적인 것은 몸의 기호로서 확정되어야 한다2)”는 니체의 말을 현대무용으로 재현하는 ‘잿가루’는 길이와 너비 등 고전무용의 제한적 물성을 넘어 피와 영혼을 지닌 신성무구의 아티팩트(artefact)로 현신한다. 5·18 앞에서 그리고 광주 관객들 목전에서 간신히 가능한 ‘DIVINE’의 의지다. 객석과 무대는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지만 총탄이나 포신에 묻은 화약 냄새가 좌석에 스미는 듯한 기분이 든 건 연출자의 의도일까? 고립됐던 5월의 신체가 자신만의 철학으로 스펙트럼을 넓히는 일순, 관객들은 검은 재가 허공에 시연하는 비현실적 푸에테를 목도할 뿐이다. 가령 ‘코펠리아’에서 수화를 사용해 언어 부재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그 흔한 장막 간 해설을 도입하는 방식도 ‘DIVINE’ 앞에서는 불필요한 기작에 불과하다. 이렇듯 극이 선사하는 감각은 오감 너머로 확장되지만 현실에서 펼쳐지는 각각의 장막은 오직 지금, 여기의 통각을 무대에 압인하는 데 충실하다. 아니 초연하다.
프리마돈나의 명성에 기대기보다, 무용수들의 군집과 소품을 활용해 개개인의 역량을 초월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관객과 무용수가 물아(物我)의 경지에 오르는 동안 좌석 하나의 개별성을 넘어 집단의식으로서 극에 동조하게 만드는 일종의 헤게모니 전략으로 작용한다. 작품 속 무용수들이 집단적으로 움직였듯 사유의 층위에서도 관객의 의식은 점차 집단화된다. 플로어에 누워 상체만 상-하강 운동을 반복하는 단체무를 보면서 혹자는 거대한 생명의 탄식을, 기염을, 분투를, 압제를 느꼈을지 모른다. 이는 5·18의 특성과 맞물려 무용수 집단이 관객 집단에게 응결된 독립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론에 가깝다. 결국 “무대 위와 아래의 모든 ‘우리’가 프리마돈나인 셈”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발레리노가 초대형 암막 커튼을 튀튀처럼 두르고 흑조로 변신하는 압권의 장면도 있다. 가로세로 20×9(m)의 프로시니엄 대부분을 채운 이 모습은 무아경으로 향하는 클라이맥스로 단연 손꼽힌다. 물론 주재만은 그의 다른 작품 ‘VITA’에서 ‘과유불급의 미장센3)’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으나, ‘DIVINE’에서만큼은 흔들리는 커튼이 숭고한 메시지를 시각화하는 직설적 장치로 기능했다는 데 이견이 없을 터다. 대부분 장면이 30여 명 넘는 대규모 출연진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이 씬에서는 중앙에 선 오직 한 명의 무용수만 등장한다. 그는 흡사 ‘지젤 라인’의 다른 버전처럼 쓰러질 듯 말 듯 처연한 동작을 시연하며 시선을 독차지한다. 이는 단연 5·18이 집단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개별자들의 항거였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치환은유(휠라이트)다. 이전 장막에서 집단성에 비춰 5월의 통증을 형상화한 것과 달리 한 명에 초점을 맞추는 장면이지만, 시대적 아픔을 대변하고 웅변하려는 듯한 몸짓은 커튼 뒤의 수많은 영령을 떠올리게 하므로.
광주 5·18은 민중의 개인사적 비극인 동시에 분명한 공동체적 아픔이다. 다만 무대 위 전경화된 반라의 육신은 개인적 비극을 몸으로 뒤바꾼 상징이었으며, 흔들리는 커튼은 이를 집단적 아픔이자 사회 의제로 확장시키는 추모 작업에 가깝다. 조명이 커튼에 투시한 단층 문양들은 1980년대 민주주의가 훼손됐던 당대의 천태만상을 통시적으로 사유할 기회를 제공하고, 객석은 물질과 몸의 일체화를 통해 공시적인 의제들을 마주하기 위해 치열하게 교섭한다. 전 과정에서 도드라진 내러티브는 찾아볼 수 없으나 어느 순간 관객들은 ‘지금-여기’서 행하는 치열한 사고작용만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첨병 역할을 자임한다. 극이 진전됨에 따라 관객은 시대모순을 포용하고 미래로 진전하는 현존재로 고양돼 관중이 갖고 있던 관람자적 역할(방임성)을 의도적으로 방기하고 참여하는 존재로 상승될 가능성을 갖게 된다. 당초 참여극을 표방한 작품은 아니지만 역사성과 고도의 몰입감을 선사하는 이번 작품이 이끌어낼 수 있는 또 다른 참여극의 경지다. 그 순간 우리의 사유의 층위에서 무대 위 ‘흑조’ 또한 ‘백조’로 치환되면서 선대에 획득한 민주주의의 진의를 객석에 드리운다.
어두운 커튼 하나만으로 ‘빛의 사유’를 형용하는 이 발화 기법은 신이나 천사를 말하지 않고도 빛을 몽상하는 천상의 표현법에 다름없다. 여흥을 고조시키는 디베르티스망이나 프랑스 발레의 아기자기함 같은 요소 없이 강렬하고, 직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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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시립발레단의 ‘DIVINE’ 장면 |
무대 위에서 계속되는 5월에 대한 증험은 신체언어와 알레고리의 상호침투(cross penetration)를 통해 의미를 강화한다. 이는 ‘DIVINE’이 말하려는 비평적 현실을 아름다움으로 환치시키는 방법론에 가깝다. 불의에 대한 항거라는 주제의식이 몸 언어에 심지를 두면서 현대성 등 겹겹 추상으로 표피를 치장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안과 밖의 교호작용은 체화된 언어들에 신성성을 더하고 관객에게 설득력을 얻는다.
엥겔스는 ‘자연변증법’ 중 ‘변증법’이라는 메모를 통해 대립물의 상호침투 원칙을 언급한다. 통일성을 유지하는 사물은 서로 대립하는 요소를 지니고 이것이 상대를 제약하는 모순성을 갖고 있다는 것4)이다. 이때 대립요소의 한쪽이 다른 편을 압도하면 사물은 새로운 존재로 전화(轉化)한다.
‘DIVINE’은 몸 언어와 무수한 알레고리의 상호침투작용을 거친다. 직설적인 몸의 진술과 완곡한 알레고리의 스파크는 극 중 서로 우위를 점하려 경합한다. 화려한 오브제가 범람하기에 관객들은 일순 알레고리가 몸 언어를 제약한다는 오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광주 출신으로 “부모님이 어릴 적 이불로 창문을 막던 모습, 골목을 뛰어가던 발소리가 생생하다”고 말하는 주재만은 몸 언어에 패권을 준다.
극한상황을 묘사하는 1장 ‘Freedom’은 세트, 소품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5월 잔혹성을 무대화했다. 그러나 이를 압도하는 대목은 솟아나는 꽃봉오리를 표현하는 무용수들의 간절한 동작이다. 발레단은 행위(모션)가 감정(이모션)에 깃듦을 증명하듯, 희망으로 피어나는 꽃 모양을 형상화했다. 이 같은 알레고리는 장식물이나 스크린도 필요 없이 오직 ‘몸’이 중심이 된다. 사선으로 주홍빛이 쏟아지며 쇠창살을 그린 대목도 마찬가지, 암울한 조명은 죽음을 빗댔지만 그 아래 무용수들이 서로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이야말로 진짜 ‘한’에 대한 조명이다. 빛으로 유비 치환된 조명과 몸에 대한 비춤(조명)이 조응하지 않는다면 모든 상징과 은유는 발레 언어로 체화되지 못한 채 엑스트라로 전락했을 것이다.
‘강물빛’, ‘기도’ 등 4개 악곡이 흐른 2장 ‘Out of the darkness’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드러난다. 머리에 솜털을 두른 무용수들은 얼핏 오브제가 공연을 끌고 가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관객들의 시선은 구름 무용수들의 군집 위를 유영하는 단 한 명 발레리나로 응결된다. 이 소실점을 중심으로 전체 장면을 파악할 때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마흔다섯 개의 빛기둥, 악곡들, 항구적 평화를 은유한 디테일이 비로소 의미망에 묶인다. 물론 말미의 배 모양 조형물이나 군무에 활용한 티셔츠 등은 다소 소품의 층위로 전락한 면도 있다. 허나 확고한 몸 언어 위에 적층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란 메시지는 수사에 머물던 알레고리에 명확한 힘을 실어준다. 이렇게 복권한 알레고리 요소들은 몸짓과 교호작용을 하며 고결한 가치로 전화되고 종막까지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그 확고함으로, 광주시립발레단은 모호성이나 판단 중지(Epoche)와 같은 해체주의적 아이러니를 벗어나 고유한 브랜드 가치를 형상화한다. 나아가 5·18이 직면한 당대적 현실 또한 10개 섹터에서 상투적 시행으로 열거되지 않고 물활한다.
천상의 레오타드 드레스로 치장한 무용수들의 도약은 역사 속에서 인류를 겁박해 온 차꼬와 수갑을 풀어내는 해원의 동작들이다. 점층적으로 화려해지는 의복들도 연출가의 의도일 것, 3막에 도달한 관객들은 빛을 마주하지만 작품이 제시하는 새카만 공동(空洞)을 벗어나는 진짜 방법은 극장 출구를 벗어남에 있다. 예술단의 목표대로 발레를 감상했다면 관객들은 커튼콜 뒤 천사의 나팔소리가 섞인 후주곡(postlude)과 함께 정규 레퍼토리에 없는 4막 ‘Get out of despair era’를 마주할지 모른다. 5·18을 초점화한 작품이 우·러, 이·팔 등 국제분쟁의 시류와 연쇄해 동시대적 가치로 전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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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시립발레단의 ‘DIVINE’ 장면 |
관객들은 1막에서 3막으로 향하는 변증 속에서 제주 4·3사건이나 부마민주항쟁 등을 마주했을 수도 있다. 저마다의 감상은 저마다의 몫이기에. 5월을 매개로 그 인접 지대마저 톺아보게 하는 감각은 비장미와 어우러져 극적 고양감을 선사하기 충분하다. 75분에 걸친 10개 안무들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해조(그라데이션) 작용처럼 자연스럽게 펼쳐졌다는 평가다.
물론 컨템퍼러리의 파격이 더 있어도 좋았겠다. 사유 층위에서 결국 종막이 헤겔식 변증논리로 치닫는 것은 약간의 고민거리다. 절망이라는 테제(1장)를 압도하는 5월 투사들의 저항 안티테제(2장), 그리고 이들을 민주주의 빛으로 종합하는 3장 ‘The Divine Human Beings’은 5월의 격정에 불구하고 논리 측면에서 다소 ‘차분’하다. 이에 대해 아도르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세계에 정(正)과 반(反)만이 병존한다 보았고 헤겔식 합(合)이 예술의 본래 아우라를 지워버리는 폭력이라 생각했다. 폭력을 직시하는 5월 작품인 만큼, 비슷한 결론으로 매조지어버린 작품이 많았던 만큼 헤겔식 평화를 거부해보는 것은 어땠을까. 작품 속 컨템퍼러리가 형식미학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전위적 사고의 삼투도 고려할 만하다. 전개 논리의 측면에서 예측불허의 미감을 선사하는 것도 컨템퍼러리의 한 지대 아닐까 싶다.
같은 맥락에서 작품이 조금 더 아방가르드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무용의 형을 과장하는 데포르망을 접목하거나 무질서 속 질서의 제시, 군무 편제와 배열의 무산 등 어떤 예측도 불허하는 장면을 더 기대했던 까닭이다. 광주는 5월에 대한 ‘다시 말하기’, 즉 되풀이되는 예술의 화법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망을 한 구석에 갖고 있다. 5?18이 새롭게 내거는 기치가 5월 비경험 세대의 포용이요 확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소품 배치나 무용수 등장 위치를 기존 방식에서 이탈시켜 새로운 형을 오버로크하는 방법도 좋을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는 살롱 피플만을 객석에 앉히기보다 젊은 세대까지 수용하기 위해서는 자극과 시각에 민감한 해당 세대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뜻밖이지만 근래 크로스오버를 지향하는 일부 창극, 국악관현악 등에서 이러한 무용수 배열이 탐색 되곤 한다. 서양 기원의 발레가 동방의 창극을 참조하는 예술의 선순환이 이뤄져도 좋겠다. 다른 장르지만 광주시립오페라단이 펼친 ‘토스카’ 중 1막도 좋은 참조점이 된다. 작품은 스카르피아의 그릇된 욕망을 뒤틀린 성당 배경 이미지로 구현했으며, 세로축 기둥은 좌표를 일그러뜨려 반원형으로 쌓았다. 합창단마저 종횡으로 교차하며 십자가 형태로 등장했다. 그들의 몸(배열) 자체가 하나의 언어로 기능한 셈이다. 5·18 자체가 민중이 헤아릴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됐듯 동선의 파괴와 무대 축을 넘어서는 경계 확장이 모색될 수도 있다. 특히 광주예술의전당에는 전·후진 이동형 무대(1대)를 비롯해 승·하강무대(4대), 오케스트라용이지만 리프트까지 갖춰져 있다. 대중가수처럼 스테이지 언더에서 점프하거나 로프를 타고 활공하는 ‘태양의 서커스’를 펼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수평축에서 꼬리를 무는 무용수들의 능란한 움직임은 이미 훌륭한 진전을 보여줬다. 물론 과도한 오브제들이 등장하거나 물성이 난립하게 되면 무용수에 대한 집중을 방해하거나, 무용의 전체 형을 흩어놓는 계륵에 다름없기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공연의 좌표축을 3차원 이상으로 확장할 때 작품이 더 큰 표정을 짓게 됨을 지각해도 좋다.
나아가 현재로서 어느 정도 성취를 이뤘으나 숭고와 비탄 너머의 인간애 철학도 더 다면적으로 형상화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DIVINE’이 답습되던 5월 주제극을 자신만의 논리 구조와 철학으로 개진하며 신성한 층위까지 끌어올린 것은 맞다. 애써 예증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5월극 공연 단체들의 난장에 가보면 젊은 세대는 그 앞에 거의 없다. 상연하던 작품을 재연하고 또 재연하지만 과거사의 재현→어둠을 딛고 승리하는 이원적 구조만 답습될 뿐이다. ‘DIVINE’도 이 같은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나, 작품은 자신만의 전위로 통상의 얼개 너머에서 숭고함과 미적 고양감까지 선사하며 일정 부분 오월극의 확장을 성취해 냈다. 참여극이 특정 장소나 시대에 얽매이지 않는 아토포스(Atopos)의 가능성을 미래세대에 열어 보였다는 평가도 과하지 않다. 다만 공연장을 나오며 “작품만의 비전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감상자들에게 물었을 때 백가쟁명식 답변이 돌아온 것 같진 않아 못내 아쉽다. 앞서 언급한 경험의 재현과 압제를 딛고 일어선 승리라는 변증법적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의미와 맞물린다.
그럼에도 이런 비평적 발상들은 ‘DIVINE’이 쌓고 있는 아성에 금이 가게 하진 않는다. 꿋꿋하게 발레 언어로 제 할 말을 하는 격조, 인류 보편의 가치에 천착하는 세련미와 현대성, 전 인류가 추구해야 할 고결한 에티카를 현전하는 이 작품은 앞으로의 5월 예술에 참조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각주
1) 김혜라,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기형적인 단체의 실상이 드러나다」, 『더프리뷰』, 2024.08.28. http://www.thep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9718
2) 이광래, 『미술과 무용, 그리고 몸철학』, 민음사, 2020.
3) 장지영, 「[리뷰] 서울시발레단 창단공연…감각적인 미장센과 안무, 하지만 ‘과유불급’」, 『국민일보』, 2024.08.25.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0453694
4) 엥겔스, 『자연변증법』, 새길아카데미, 2012.
참고문헌
1.단행본
이광래, 『미술과 무용, 그리고 몸철학』, 민음사, 2020.
엥겔스, 『자연변증법』, 새길아카데미, 2012.
2.신문 기사
김혜라,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기형적인 단체의 실상이 드러나다」, 『더프리뷰』, 2024.08.28. http://www.thep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9718
장지영, 「[리뷰] 서울시발레단 창단공연…감각적인 미장센과 안무, 하지만 ‘과유불급’」, 『국민일보』, 2024.08.25.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204536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