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폭력 맞선 민초들…‘감사·연대’의 메시지

5월 광주 노래했던 박선욱 제7시집 ‘무등산’
12·3계엄 오월 아픔 상기…상처 치유 기원
4부 구성…‘5·18 항쟁’ 연작시 23편 수록도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6년 01월 23일(금)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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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카를 테어도어 다리의 동상 앞에 선 박선욱 시인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시국이다. 이런 시국에서 5·18 광주의 아픔을 정면으로 껴안았던 시인의 소회는 정말 남달랐을 것이다. 12·3내란을 통해 5·18항쟁이 오버랩되는 것은 시인에게는 당연한 이치였을 것이다.

이런 시국에서 촉발돼 다시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집이 나왔다. 5월 광주를 형상화한 시편들을 꾸준히 발표해온 전남 나주 출생 박선욱 시인이 펴낸 일곱 번째 시집 ‘무등산’(평사리 刊)이 그것이다.

5공 정권에 의해 모든 매체가 강제 폐간된 뒤 등장한 무크 ‘실천문학’의 제1호 시인으로 1982년 등단한 시인은 일찍이 김준태 시인이 “5월 광주가 탄생시킨 시인”이라고 말한 바 있을 정도로 광주를 떠나 타지살이를 해오는 동안 내내 그의 뇌리 속에는 오월 광주가 똬리를 틀었다. 군사독재정권에서부터 12·3계엄까지 이땅의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마다 민주주의 교본같은 5월 항쟁정신을 상기하고 한 달음에 달려가 민주화를 외쳤던 장본인으로 이번 시집 ‘무등산’이 지향하는 세계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있는가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앞서 선보였던 독립운동가 기림시집이자 여섯번째 개인시집인 ‘풍찬노숙’이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들에 대한 장시를 수록해 서사의 지평을 넓혔다면, ‘풍찬노숙’ 이후 3년 만에 펴내는 7시집 ‘무등산’은 역사에 대한 반추, 미래에 대한 전망이 중추를 형성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번 시집은 내란 등 부조리의 시대 악몽을 떨쳐 내며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과정의 기록으로 이해하면 된다. 불안한 나날을 살아낸 모든 이들과 함께 작은 비망록을 펼치고 독자들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행위라는 것이다. “언어도단의 시대가 도둑처럼 왔”(시인의 말)지만, 결코 절망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무등산’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제1∼3부와 제4부로 나눠 접근할 수 있다. 서로 결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1∼3부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아니 경이로웠던 일상을 36편의 시편에 담았고, 4부에서는 현대사의 비극인 5·18 광주를 연작시 23편의 시편에 담아내고 있다.

시인은 제4부로 구성된 연작시 ‘동토에서 피어난 봄의 노래’의 마지막 장에서 “우리 이제 낮이나 밤이나 억만 발걸음 멈추지 말자”(‘23. 무진악(武珍岳) 땅울림’)며 대동단결과 내일을 위한 전진을 다짐함으로써 종지부를 찍고 있다.

이 시집 4부에 45년 전 신군부의 무도한 계엄과 광주학살의 만행을 배치했다. 이는 역사를 통시적으로 바라보고 반추하며, 그 교훈을 잊지 말자는 다짐의 뜻에서다. 광주사람들은 비상계엄과 계엄군이 처음이 아니다. 그 공포스런 기억을 다시 마주해야 했다. 내란을 올곧게 기억해가자는 점이 4부에 광주의 시적 서사를 넣은 이유다.

1부 ‘호접란’에서는 시인이 새롭게 이사한 터전에서 마주하는 일상들을 옮기며, 빛이 꽃들과 의기투합해 이룬 신비를 노래하고 있고, 2부 ‘작은 새’와 3부 ‘손돌목’에서는 일제와 국가경비대, 군통수권자, 미국 이민국, 국가 고위책임자들에 의해 짓밟혔지만, 이를 견디고 극복해 왔던 민초들, 앞서 이끌었던 선각자 등 흩어진 동서고금의 조각들을 교차하며 오간다. 4부 ‘동토에서 피어난 봄의 노래’에서는 전두환의 군사 반란과 5·18 광주를 다룬 23개의 연작시로 현대사의 비감을 응축해 놓았다. 박정희의 죽음, 이 순간부터 시작된 전두환 세력의 음모와 군사 반란, 충정훈련, 사북 사태, 서울의 봄, 광주의 가두시위, 그리고 광주 시민에 대한 신군부의 압살, 계엄령 해제를 요구하는 광주의 저항과 참혹한 학살 과정을 그린다.

시인의 시집 ‘무등산’은 일상이 무너진 그날 이후, 어떻게 눈을 반짝이고 귀를 열어 버텼는지, 어떻게 흩어져 조각났던 일상의 감정을 추스르고자 애썼는지를 조망할 수 있다. 또 시인이 경험했던 5·18 광주의 시간들을 통해 마침내 꽃들과 빛의 의기투합이 이룬 우리 역사의 순간들을 자각한다. 어머니산인 무등산의 땅울음이 지켜낸 우리들의 오늘을 펼쳐 보이는 게 시적 주요 담론들이다.

평사리 관계자는 서평을 통해 “이 시집은 빛을 갈망하는 시인의 개인사와 더러운 국가 폭력에 맞서 왔던 민초들의 억만 발걸음에 대한 감사와 연대의 메시지가 담긴, 시대의 심장 같은 작품”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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