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 드러난 인간의 내면…'칼 드레이어' 회고전

2월 6일~3월 2일 광주극장서…'오데트' 씨네토크도
데뷔작 포함 무성·유성 등 장·단편 17편 '스크린에'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2026년 01월 30일(금) 18:26
‘재판장’
칼 드레이어 감독.
세계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영화감독이자 수많은 영화 작가들의 영감이 된 칼 드레이어 감독. 그는 무성영화 시기에 데뷔해 기독교적 사유, 사회적 편견, 운명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세계의 불가해한 질서를 영화 언어로 풀어내왔다. 이런 그의 장·단편을 한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회고전이 펼쳐진다.

광주극장과 광주시네마테크는 2월 6일부터 3월 2일까지 광주극장에서 덴마크의 거장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1889~1968)의 회고전을 갖는다.

상영작은 초기 무성영화부터 대표작까지 폭넓게 구성됐다. 장편 10편과 단편 7편을 만날 수 있다.

먼저 그의 데뷔작인 ‘재판장’(1919)은 신생아 살해 혐의로 사형을 앞둔 젊은 여인과 그가 오래전에 버린 딸임을 알게 된 재판장의 내적 갈등을 그린 멜로드라마다. 플래시백 기법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이 작품은 노르디스크 영화사에서 각본가로 활동하던 감독의 연출적 역량을 분명히 보여준다.

‘사탄의 책’(1921)은 인간이 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지를 두고 하느님과 사탄이 벌이는 내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탄은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도록 만드는 바리새인, 스페인의 잔인한 종교재판장, 프랑스 혁명 당시 경관, 러시아-핀란드 전쟁에서의 혁명분자 승려로 등장한다. 신성모독적인 묘사로 당대 교회와 좌익 양측의 비난을 받았던 문제작이다.

‘사탄의 책’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1922)는 러시아 유대인 지구에 살고 있는 한네 리베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해 오빠가 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면서 남자친구 사샤와 재회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계급과 성, 반유대주의를 대담하게 연결시킨 작품으로, 무대장치에 대한 감독의 완벽주의적 감각과 심도 깊은 미장센을 만날 수 있다.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옛날 옛적에’(1922)는 가상의 왕국 일리야를 배경으로 제멋대로인 왕녀가 수많은 구혼자를 냉정하게 거절하다 도자기 장인으로 변장해 접근한 덴마크 왕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덴마크 극작가 홀거 드라크만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일부 필름이 소실됐으나 남아 있는 스틸과 자막을 통해 복원됐다. 드레이어는 이 작품을 연극으로도 각색해 코펜하겐 왕립극장에서 공연한 바 있다.

‘집안의 주인’(1925)은 실제 아파트를 그대로 재현한 세트에서 촬영된 실내극으로, 억압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자각해가는 여성을 섬세하게 그려 정서적 리얼리즘이 탁월하게 드러난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그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다. 노르웨이의 자연 풍광이 인상적인 ‘글롬달의 신부’(1925)는 밝은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띠면서 재난영화의 면모를 갖춘 작품이다. 사랑과 욕망, 계급 갈등이 자연의 힘과 맞물리며 전개된다.

드레이어 최초의 유성 영화인 ‘뱀파이어’(1932)는 세리단 르 파누의 소설 ‘카밀라’를 토대로 독일에서 제작한 드레이어의 흡혈귀 영화다. 눈에 보이는 흡혈귀의 존재보다 주민들이 느끼는 심리적 공포감에 중점을 둬 음울한 분위기와 등장인물의 미묘한 심리 묘사가 뛰어난 걸작이다.

이어지는 ‘분노의 날’(1943)은 ‘뱀파이어’ 이후 10여년간 영화를 만들지 못한 그가 나치 독일의 지배하에 있던 고국 덴마크에서 완성시킨 작품이다. 마녀사냥을 소재로 인간의 욕망과 억압을 다룬다.

‘뱀파이어’
‘분노의 날’
‘게르트루드’
1955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오데트’는 극작가 카이 뭉크의 희곡 ‘말씀’을 원작으로, 신의 존재와 믿음의 의미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 장편 ‘게르트루드’(1964)는 사랑 없는 결혼에 지친 은퇴한 오페라 가수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 장 뤽 고다르는 이 영화를 두고 “광기와 아름다움이라는 면에서 베토벤의 후기 작품에 비견할 만하다”고 평했다.

장편에 이어 단편으로는 미혼 여성의 낙태와 출산 사이의 갈등을 다룬 ‘좋은 엄마들’(1942)을 비롯해 덴마크 작은 교회들의 고유한 개성을 담아낸 ‘마을의 교회’(1947), 암 조기 검진 홍보를 위해 제작된 ‘암과의 투쟁’(1947), 도로 안전 캠페인 의뢰를 받아 제작한 ‘그들은 간신히 페리에 탔다’(1948) 등 당대 그의 사회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특히 ‘그들은 간신히 페리에 탔다’는 드레이어의 작품 중 가장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덴마크 조각가 토발센의 예술 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 ‘토발센’(1949), 당시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를 조명한 ‘스토르스트룀 다리’(1950), 크론보르 성을 재보수하는 과정에서 크로겐 성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따라가는 ‘성 속의 성’(1954) 등도 스크린을 채운다.

이외에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시네토크가 마련된다. 오는 2월 28일 오후 3시 유운성 영화평론가의 ‘오데트’ 시네토크가 열린다.

광주극장 관계자는 “칼 드레이어 감독의 영화는 외적 사건보다 인물의 양심과 믿음, 두려움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태도로 특징지어지곤 한다.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으로 재조명되며, 수많은 영화인과 창작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면서 “봄이 오는 길목, 칼 드레이어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영화세계로 빠져보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자세한 사항은 광주극장 네이버 카페(https://cafe.naver.com/cinemagwangju/)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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