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한파에 ‘백년가게’도 잇따라 쓰러져

‘민주인사 사랑방’ 광주 동구 모회관 등 영업 종료
제조업 소공인도 직격탄…"명맥 단절은 경제 손실"

김은지 기자 eunzy@gwangnam.co.kr
2026년 02월 22일(일) 13:27
수십 년간 광주 지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백년가게’와 ‘백년소공인’들이 기록적인 경기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단순히 한 점포가 문을 닫는 경제적 현상을 넘어, 대를 이어 지역의 맛과 기술을 지켜온 ‘유형의 자산’들이 사라지고 있어 회복하기 어려운 문화적·경제적 손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중소벤처기업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광주지역에서 백년가게로 지정됐던 주요 업체들이 줄줄이 폐업하거나 지정 해제되고 있다.

먼저 광주 동구 대인동에서 생고기비빔밥으로 명성을 떨쳤던 ‘A회관’은 최근 영업을 종료했다.

A회관은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광주에서 벌어졌던 각종 시국사건과 관련된 회의나 기자회견이 수시로 열리던 ‘민주인사 사랑방’이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할 때마다 즐겨 찾았던 단골집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17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직후 지역 인사 40여 명과 함께 8000원짜리 생고기비빔밥으로 오찬을 하며 시민들과 소통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 시대의 깊은 서사가 깃든 공간조차 치솟는 원재료비와 인건비 부담이라는 거대한 파고를 넘지 못했다.

동구 학동에서 2대에 걸쳐 30년 이상 운영해 온 ‘B베이커리’도 최근 영업을 종료했다. 1989년 문을 연 B베이커리는 대형 프랜차이즈 확산세 속에서도 2대가 함께 30년 이상 운영하며 지역 독립 빵집의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최근 밀가루와 설탕 등 핵심 원부자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에 따른 채산성 악화를 극복하지 못했다.

음식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기반의 백년소공인들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지역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관련 업종의 타격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구 소재의 C업체는 수십 년간 금속 창호 제조 외길을 걸으며 기술력을 인정받아 백년소공인으로 지정됐으나, 최근 건설 물량 감소와 원자재 가격 급등이 겹치며 경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소공인들조차 일감 절벽 앞에 폐업이나 업종 전환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최근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중기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국적으로 휴·폐업으로 인해 백년소상공인 지정이 해제된 곳은 총 41곳에 달한다. 2018년 제도 도입 이후 초기에는 폐업 사례가 드물었으나, 고금리·고물가가 지속된 2021년 이후 폐업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광주·전남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광주 지역 폐업 사업자는 전년 대비 12.8% 증가한 2만6000여 명에 달한다. 특히 음식업과 소매업 등 내수 밀착형 업종의 타격이 큰데, 이는 백년가게 대다수가 분포한 업종과 일치한다.

현장에서는 정부의 ‘백년소상공인’ 정책이 홍보와 인증에만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년가게로 지정되면 인증 현판과 마케팅 지원을 받지만, 정작 폐업 위기에 몰린 가게를 살릴 실질적인 금융 지원이나 임대료 대책은 미비하다는 것이다.

광주의 한 상인연합회 관계자는 “백년가게는 지역 상권의 상징이자 정체성 그 자체”라며 “단순히 오래된 가게를 인증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지역 소멸과 경기 침체에 대응할 수 있는 맞춤형 경영 안정 자금과 원자재 수급 안정화 등 실질적인 구제책으로 정책 기조가 전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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