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삼팔이 온다" 평등·평화·생명을 향한 시간 김효경 광주여성민우회 활동가·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전 공동회장
광남일보@gwangnam.co.kr |
| 2026년 03월 03일(화) 1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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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경 광주여성민우회 활동가·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전 공동회장 |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은 여성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 그리고 참정권 쟁취의 역사 속에서 탄생했다. 1908년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맞서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다. 여기서 ‘빵’은 생존을 위한 기본적 권리를, ‘장미’는 존엄과 평등, 인간다운 삶을 의미했다. 이 외침은 단순한 노동조건 개선 요구를 넘어 사회 정의와 평등한 미래를 향한 선언이었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말하는 지속 가능발전 역시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경제 성장만으로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 안전한 삶이 보장될 때 비로소 사회는 지속 가능해진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제시하는 빈곤 해소, 양질의 일자리, 성평등, 평화와 정의의 가치는 결국 ‘빵’과 ‘장미’를 모두 보장하는 사회를 향한 약속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성차별이 해소됐다고 말하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삶은 어떠한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성별임금격차’를 통계에 포함한 1992년 이후 단 한 번도 1위를 벗어난 적이 없으며, 인류 문명과 함께 이어져 온 여성폭력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언어조차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만들어내며 여성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여전히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다시 묻게 한다.
지속 가능한 사회란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는 민주주의 완성의 조건이며, 지구 위의 모든 존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돌봄과 연대의 기반이기도 하다.
지난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 시도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여성과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빛의 혁명’을 만들어냈다.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 누구나 존엄하게 살아가는 성평등한 사회에 대한 상상은 광장에서 더욱 또렷해졌다.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시민들의 연대와 참여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보여줬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부터 세계여성의 날 행사가 이어져 왔다. 민주화와 통일, 여성해방, 성별임금격차 해소, 미투혁명,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마주한 현실에 대해 시민들과 공유하며, 성평등을 향한 연대의 장으로 확장돼 왔다.
다가오는 제41회 세계여성의 날 슬로건은 ‘빛의 혁명을 완수하라’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더 안전하고 평등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자는 사회적 요청이다.
빛의 광장을 가득 채웠던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에 이제는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 삶을 파괴하는 어떠한 폭력에도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선언, 여성폭력과 기후재난, 차별과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선택하겠다는 다짐이 바로 오늘 우리가 지속 가능성을 말하는 이유다.
여느 출근길,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며 콘크리트 건물을 뒤로 한채 라디오에서는 세계 곳곳의 전쟁 소식과 정치권의 갈등이 흘러나오고,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지원한 일론 머스크가 마치 평화를 만들어낸 영웅처럼 소비되는 뉴스들이 흘러나온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과연 지속 가능한가. 우리의 삶과 미래를 과학과 기술에 온전히 맡겨도 되는가. 인간의 조건이 지구라는 진리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다시 3ㆍ8이 온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기운을 느끼며 세계여성의 날을 기다린다.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연대의 장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외치는 광장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서로의 삶을 마주하며 빛이 되겠다는 다짐을 다시 세운다.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차별 없이 존엄하게 존재할 권리, 그리고 함께 평화를 만들어갈 권리를 향한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 그것은 단지 하루의 기념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묻는 시간이다. 성평등과 평화, 생명의 존엄을 향한 약속은 그렇게 다시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