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불균형의 예술 정책,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이당금 예술이 빽그라운드 대표

광남일보@gwangnam.co.kr
2026년 03월 05일(목) 18:08
이당금 예술이 빽그라운드 대표
[문화산책]“문화예술 활동은 개인의 취미이기도 하지만 그 차원을 넘어 사회적 기여가 큰 영역입니다. 수익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자기 성취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면 공공의 지원 역시 필요합니다. 문화예술인 기본소득은 그런 맥락에서 검토할 수 있는 정책입니다. 지금 문화예술의 토대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래가 무너지면 전체가 흔들립니다. 지금 문화예술계는 위험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제6차 국무회의에서 농어촌 기본소득과 관련한 브리핑을 받던 대통령은 문화예술인 기본소득 문제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대통령은 문체부 장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부 예산 중 예술인 기본소득처럼 일정한 자격을 갖춘 예술인에게 일정액을 지원하는 예산이 있지 않습니까?” 문체부 장관은 “그런 사업이 있고 특히 청년 예술인을 중심으로 약 3000명 정도가 예술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다음 질문은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

“예술인 등록이 약 25만 명인데 지원 대상이 3000명이면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정확한 지적이다.

2012년 ‘예술인복지법’ 시행 이후 예술활동증명 제도가 도입되면서 예술인은 창작활동준비금, 생활안정자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여러 복지 제도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 가장 큰 사업인 창작활동준비금은 약 2만 명에게 연 300만 원을 지원하는 수준으로 예술인 전체 규모에 비하면 제한적이다. 대부분의 지원은 신청과 심사를 거쳐 일부만 선정되는 선별적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프랑스와 독일은 예술인을 문화 노동자(cultural worker)로 인정하는 제도적 기반을 갖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공연예술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 실업보험 제도인 ‘앵테르미탕 뒤 스펙타클(Intermittents du spectacle)’을 운영한다. 예술인이 일정 기간 동안 약 507시간의 예술 노동을 증명하면 공연이 없는 기간에도 실업급여 형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단기 계약이 반복되는 공연예술 노동의 특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독일 역시 예술가 사회보험 제도(Kunstlersozialkasse)를 통해 프리랜서 예술가에게 건강보험과 연금보험, 요양보험 가입을 보장한다. 보험료는 예술가 개인뿐 아니라 정부와 예술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이 함께 분담한다. 그 결과 독일의 예술가는 프리랜서 신분이지만 일반 노동자와 유사한 사회보험 체계 속에서 보호받는다.

한국의 예술 정책이 여전히 지원사업 중심에 머물러 있는 반면, 유럽의 여러 국가는 예술을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노동의 영역으로 인식하고 제도화하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현재 한국의 예술정책이 청년 예술가 프로젝트 지원 사업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청년 예술가에게 창작의 발판을 제공하는 정책은 중요하다. 그러나 문화정책 연구자들은 이러한 구조가 중장년과 원로 예술가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낳고 예술 정책의 세대 불균형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예술의 축적은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재 한국의 K-컬처 성과는 오랜 시간 실패와 실험, 가난과 고독 속에서도 사유의 작업을 놓지 않고 더께의 층을 이어온 중장년과 원로 예술가들의 축적된 시간 위에서 만들어졌다.예술은 단기간의 성과로 완성되는 산업이 아니다. 수십 년의 경험과 사유, 그리고 반복된 실패 속에서 비로소 깊이를 얻는다.

창작의 깊이가 형성되는 시기에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확보하지 못하면 예술 생태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예술 정책 역시 특정 세대에만 집중될 것이 아니라 세대 전체를 포괄하는 구조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원칙은 분명하다.

예술은 취미가 아니라 노동이라는 인식이다. 그리고 그 노동은 청년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장년과 원로 예술가들의 시간과 경험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세대를 위한 지원이 아니라 예술 노동 전체를 인정하는 정책적 전환이다. 대통령이 언급했던 문화예술인 기본소득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문화예술은 사회가 소비하는 가장 고급의 공공재다. 그 공공재를 생산하는 노동을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문화선진국이라는 말 역시 공허해질 것이다.
이 기사는 광남일보 홈페이지(www.gwangnam.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gwangnam.co.kr/article.php?aid=1772701732531931127
프린트 시간 : 2026년 03월 05일 21:2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