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술이 사회의 질문을 만날 때, 창업은 시작된다

최진영 ㈜윙스 대표

광남일보@gwangnam.co.kr
2026년 03월 10일(화) 17:22
최진영 ㈜윙스 대표
창업은 종종 화려하게 이야기된다. 혁신적인 기술, 빠른 성장, 투자 유치,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 그러나 실제 창업의 모습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창업은 멋있는 일이기보다, 긴 시간 버티는 일에 가깝다.

특히 기술 창업은 더욱 그렇다. 기술을 만든다고 해서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사회의 문제를 만나는 순간부터 진짜 일이 시작된다. 그때부터 창업가는 수많은 질문과 마주한다.

이 기술이 정말 필요한가, 누가 사용하게 될 것인가,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가. 기술을 개발하는 시간보다 문제를 이해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지기도 한다.

나는 아동의 언어발달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기술적 가능성에서 출발했다. 음성을 분석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있다면 아이들의 언어 발달을 더 빠르게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장을 만나면서 생각은 크게 달라졌다.

부모들은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했고, 전문가들은 “진단과 치료 사이의 시간이 너무 길다”고 이야기했다. 그 문제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스템의 문제였고, 구조의 문제였다. 기술 하나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교육과 의료, 그리고 현장의 여러 주체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문제였다.

그때부터 창업의 의미도 달라졌다. 기술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끝까지 붙잡는 일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창업을 ‘도전’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창업가의 일상은 대부분 버티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기술이 완성되기까지의 긴 시간, 시장이 이해하기까지의 기다림, 수없이 반복되는 실패와 수정의 과정. 창업가는 결국 그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버팀의 시간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기술은 결국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때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사회의 질문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반대로 작은 기술이라도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문제와 만난다면 그 기술은 반드시 성장하게 된다.

지역에서 창업을 하며 더욱 크게 느끼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지역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다. 의료 접근성, 교육 격차, 돌봄 공백, 고령화 문제까지. 기술이 닿지 못한 영역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지역은 오히려 기술 창업가에게 더 많은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시장이 기술을 이해하기까지도 시간이 필요하고, 제도가 기술을 따라오기까지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에서 창업가는 끊임없이 질문받는다. 정말 필요한 기술이 맞는지, 끝까지 해낼 수 있는지, 이 길이 맞는지 말이다.

그 질문들 앞에서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창업가는 많지 않다. 그래서 창업은 결국 확신보다 책임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라면, 누군가는 그 문제를 오래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창업가는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혁신 역시 거창한 순간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문제를 오래 바라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 문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기술은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현실이 되고, 사회는 그 변화를 뒤늦게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창업은 멋있는 일이 아니라, 책임 있는 일이다. 기술을 만든다는 책임,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책임, 그리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책임이다. 이 책임의 시간이 쌓일 때 비로소 기술은 사람의 삶을 바꾸는 힘을 갖게 된다.

창업은 세상을 단번에 바꾸는 일이 아니다. 어떤 문제를 오래 바라보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해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창업은 화려한 순간보다 조용한 시간이 훨씬 길다.

하지만 바로 그 시간 속에서 기술은 사람을 만나고, 문제는 해답을 만나며, 작은 변화가 시작된다. 창업가는 결국 기술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가 던진 질문을 끝까지 붙잡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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