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역은 흔들림을 지나 다시 삶을 세우는 시간

박성우 더드림 대표

광남일보@gwangnam.co.kr
2026년 03월 22일(일) 18:20
박성우 더드림 대표
군 생활의 막이 내려오는 순간, 많은 제대군인은 마치 엔딩 크레딧이 천천히 올라가는 듯한 묘한 여운 속에서 전역을 맞이한다. 수년간 익숙했던 규율과 명령 체계, 조직이 만들어준 일상의 리듬이 사라지고 낯선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그 순간, 막막함과 혼란은 자연스럽게 밀려온다. 선택과 책임의 무게가 온전히 자신에게 쏟아지는 변화 속에서 전역은 끝처럼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이 시점은 단순한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문장을 이어주는 접속사, 성장의 숨 고르기이자 ‘And’의 자리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역 직후 가장 먼저 찾아오는 감정은 방향을 잃은 듯한 공허함이다. 폐쇄적 구조의 군 환경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사회의 흐름과 변화를 일상적으로 접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자신을 향한 질문이 커지고, 그 질문이 곧 정체성의 흔들림으로 이어진다.

군에서의 역할과 책임은 명확했지만, 사회에서는 자신의 자리를 직접 찾아야 한다. 준비했던 진로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거나 치열한 경쟁에서 맞닥뜨린 실패는 자신감을 적지 않게 흔들어 놓는다. 심리적 압박이 오래 지속되면 신체적 증상으로 번지기도 하면서 스스로 약해졌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능력 부족이나 실수의 결과가 아니다. 이는 누구나 지나가는 자연스러운 조정기이며, 전역자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일 뿐이다.

이 시간을 안정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시선을 ‘끝’이 아닌 ‘이어짐’에 두는 태도가 필요하다. 군 생활을 통해 다져온 책임감과 추진력, 위기 대응 능력은 사회에서 역시 강력한 자산으로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이 자산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삶의 다음 페이지에 이어낼지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일이다. 사회 구조를 이해하고 경험의 방향성을 점검하며, 필요한 공부와 작은 실행을 차근차근 이어간다면 흔들리던 감정은 서서히 정돈되고 새로운 중심을 찾게 된다.

전역의 공백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제대군인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확신이다. 광주 제대군인지원센터는 전담 상담과 진로·취·창업 교육 등 체계적인 지원을 통해 불안한 마음을 견고하게 붙잡아 준다. 상담을 통해 단기 목표부터 다시 세우기 시작하면 무너졌던 일상의 리듬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본인도 제대군인지원센터의 멘토로 활동하면서 실제 경험이 제대군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특강을 진행하며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제대군인이 공유하는 경험이며 성장통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면 마음의 짐은 훨씬 가벼워진다.

전역 직후 느껴지는 감정은 떫은맛이 강한 땡감을 떠올리게 한다. 처음에는 불안과 공허함이 압도적이지만, 그 속에는 이미 충분히 성숙한 힘이 잠재돼 있다. 시간이 흐르고 준비가 쌓이면 떫었던 감이 어느새 달콤한 홍시로 익어가듯, 흔들렸던 마음도 제자리를 찾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이 시기 자체를 두려움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이 흔들림은 다시 서기 위한 성장의 과정이며, 더 단단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인 관문이다.

전역은 끝이 아니다. 전역은 이어짐이며, 확장이며, 새 문장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 발짝씩 내디딜 때 우리는 어느새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깊어진 모습으로 삶의 주인공이 돼 있을 것이다. 제대군인들의 새로운 ‘And’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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