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아름다움은 그대에게 불멸의 생명을 주리라

백승현 대동문화재단 전문위원

백승현 gn@gwangnam.co.kr
2026년 03월 26일(목) 17:46
백승현 대동문화재단 전문위원
소년은 ‘국민핵교’를 나왔으니 6명의 담임 선생님이 있었을 텐데, 5학년 담임 선생님의 이름만 기억에 남아 있다. 선생님은 소년에게 교내 독서대회에 나가보라고 권했다. 학년별로 책자를 서너 권 읽고 책의 내용을 맞히는 문제를 내서 평가하곤 시상을 하는 방식이었다. 학급마다 학급 문고가 있었고, 학교엔 작지만 도서관도 있었다. 교내 대회에 나간 소년이 상을 받고는, 학교 대표로 교육청 주최의 독서대회에 나가 또 상을 받았다. 담임 선생님이 반 학생들 앞에서 소년에게 상장을 주곤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었는데, 소년은 머리가 오랫동안 따뜻해지는 그 느낌을 환갑이 내일모레인 지금의 나이에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선생님은 소년에게 독서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가르쳐주셨다.

중학생이 된 소년의 학업 성적은 모든 과목이 그럭저럭이었는데, 국어 과목은 꽤 나은 편이었다. 국어를 가르치던 여선생님이 불러 그 학생에게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을 가져다주며 읽어보라고 권했다. 베개로 써도 될 만큼 두꺼운 ‘벽돌책’이었는데, 학생은 그 소설집을 일주일 만에 다 읽고 선생님에게 반납했다. 놀란 선생님이 학생에게 정말로 다 읽었느냐고 물어보곤, 전집의 다른 책을 빌려주었다. 그렇게 한 학기 만에 30권의 전집을 다 읽었다. 첫 번째 선생님이 빌려주신 책은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이었는데, 마태복음 7장 13절의 성경 구절이 소설의 첫머리에 쓰여 있었다, 학생은 그 성경 구절을 불어로 기억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Entrez par la porte etroite.) 사촌 남매인 제롬과 알리사의 순수한 사랑과 청교도적 금욕주의 신앙 사이의 고통스러운 도덕적 선택의 문제를 담은 소설을 밤새 읽으며 소년은 정신적인 신열을 앓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학생은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 문예부에 들어가게 되어 2학년까지 2년 동안 대동제라는 축제에 참여했다. 문예반은 시화전을 열었는데, 시 작품을 3편 내고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려 대강당 벽에 걸었다. 축제 땐 전교생이 모여 공연을 보았는데, 그때 문예반은 7명 정도의 문예반 선후배들이 모둠을 짜서 ‘연대시’라는 것을 낭송했다. 긴 두루마리에 몇 편의 시를 써서 때론 1명이, 때로는 2명이, 때로는 전체가 큰 소리로 낭송하는 형식이었다. 학생은 그 연대시 몇 편 중 한 편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육사의 ‘광야’였다. ‘다시 천고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학생은 그 대목을 혼자서 낭송했는데, 전교생 앞에서 정말 초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대강당에 떠나갈 듯한 목소리로 ‘목 놓아’ 울부짖었다. 목울대가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끝내고 나니 가슴 속엔 왠지 모를 따뜻한 후련함이 가득 찼다.

대학교 때 담임 여교수님은 시인이시기도 했다. 교수님의 ‘창작론’ 강의에서 수필을 한 편 제출해 강평을 받았는데 ‘잘 썼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글을 쓰면서 살아도 좋겠다는 구체적인 삶의 방향이 생긴 것은 그 칭찬을 받은 뒤였다. 또는 글을 쓰지 않아도 문학 작품을 통해 삶의 방향을 잡아가고, 고통과 상처를 치유해가면서 평생을 살고 싶다는 태도가 생겼다.

최근 일이다. 어떤 인문학 강좌에서 특강 강사가 영화 ‘노마드랜드’를 소개하곤, 그 영화의 대사 중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이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이 서정적인 영화를 보고 나선,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시집을 사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소네트 18번의 시는 이랬다.

‘어떤 아름다운 것도 언젠가는 그 아름다움이 기울어지고/우연이나 자연의 변화로 고운 치장을 뺏기도다./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여름은 퇴색하지 않고,/그대가 지닌 미는 퇴색되지 않으리라./죽음도 앗아가지 못하리,/인간이 숨을 쉬고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한/이 시는 살고 그대에게 불멸의 생명을 주리.’

네바다주의 ‘엠파이어’에서 남편과 함께 평생 일하며 살아왔는데, 공장의 문이 닫혀 버리고, 그곳은 우편번호마저 사라진 유령 도시가 되어버리고, 남편마저 죽음을 맞자, 여주인공은 직장과 가족을 잃고 홀로 남겨진다.

주인공은 자신의 낡은 밴에 필요한 짐만 챙겨 길 위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노마드(유목민)’들을 만나 연대하고, 광활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교감한다. 그러면서 남편과의 이별은 영원한 단절이 아닌 만남의 한 과정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주인공은 용기를 얻어 새롭게 ‘노마드’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주인공은 극 중에서 ‘사랑을 망설이는’ 젊은 ‘노마드’에게 이 셰익스피어의 시를 읊어준다. 과거 남편과의 결혼식에서 낭독했던 서약이었던 이 시를 들려주고는 ‘용기를 더 내라’고 격려한다.

사실 이 시는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그들이 살던 집은 사라졌지만, 이 시를 기억하고 읊는 한 남편과 그들의 사랑은 여전히 ‘영원한 여름’ 속에 살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여주인공의 내면은 이 치유의 시편으로 인문학적인 품위와 정신적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상처와 고통 없는 인생은 없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인간적인 품성은 우리가 예술과 문화라고 부르는 것들을 통해서 길러진다. 우리가 올바른 삶의 방향을 설정해야 할 때도 문화의 힘이 필요하다. 문화적 자산 속에서 이 고통스럽고 아픈 상실을 견뎌낼 힘을 얻어야 한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이 바로,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가장 높은 문화의 땅, ‘노마드 랜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락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 다시 출발해야 한다. 우리 앞엔 또 길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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