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무대의 끝에서, 비로소 숨을 고른다

고정한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운영실장

고정한 gn@gwangnam.co.kr
2026년 04월 10일(금) 11:13
고정한
조명이 꺼지고, 마지막 음이 공기 속에서 사라질 때, 나는 그제야 비로소 숨을 고른다. 길게 이어지던 긴장과 집중이 서서히 풀리며, 비로소 나 자신의 호흡을 자각하게 된다. 관객의 박수는 무대를 향하지만, 그 울림의 끝에서 나는 늘 나의 자리와 마주한다. 박수의 방향과 나의 위치는 언제나 어긋나 있지만, 그 어긋남 속에서 내가 존재하는 이유 또한 분명해진다. 준비된 무대가 완성되는 동안, 나는 언제나 무대의 바깥에서 이 시간을 건너는 사람이다. 관객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그러나 모든 흐름을 가장 가까이에서 감각하는 자리에서 나는 이 시간을 통과한다. 우리는 박수 소리에 취하기보다, 그 박수가 안전하게 마침표를 찍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무대의 이면(裏面)’이다. 그 안도는 소리 없이 찾아오지만, 어떤 환호보다 깊고 현실적이다.

하나의 공연이 완성되기까지는 수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기획의 첫 문장을 쓰는 순간부터, 그 문장이 실제 무대 위의 장면으로 구현되기까지는 긴 시간과 수많은 선택이 축적된다. 연습의 시간, 무대 설치와 점검, 그리고 막이 오르기 직전의 정적까지. 그 정적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수많은 준비가 응축된 밀도의 시간이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나는 다양한 역할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하며 발을 맞추는 운영 총괄자이다.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무대를 향해 움직인다. 누군가는 창작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누군가는 기술로 그 이야기를 구현하며, 누군가는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균형을 잡는다. 그 과정은 때로 정교한 기계처럼 맞물리고,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흔들리며 끊임없이 조율된다. 우리는 늘 완벽한 설계와 불완전한 현실 사이에서, 가장 현실적인 최선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예술인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세계를 펼친다. 그들의 시간은 강렬하고, 그 순간은 되돌릴 수 없다. 단 한 번의 호흡, 단 한 번의 움직임이 공연의 결을 바꾸고, 그날의 기억을 결정짓는다. 그 찰나의 순간이 가능해지기까지, 무대 뒤에서는 수많은 선택과 조율이 이어진다. 수많은 ‘만약’과 ‘혹시’를 대비하며, 보이지 않는 준비가 반복된다. 행정은 바로 그 시간을 지탱하는 뼈대다.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골조와 같다. 화려한 외벽만으로는 건물이 서 있을 수 없듯, 정교하게 설계된 행정적 토대 없이는 예술의 자유도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단순한 일정과 예산이 아니라, 결국 사람과 시간, 그리고 그 사이의 신뢰다.

예술이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도약하려 한다면, 행정은 언제나 ‘유한한 현실’이라는 지면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 지면은 때로 단단한 기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넘어서기 어려운 경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예술감독의 뜨거운 열망 앞에 ‘예산과 규정상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답을 내놓아야 하는 순간, 행정은 흔히 예술의 날개를 꺾는 차가운 가위로 오해받곤 한다. 그러나 그 말 한마디 뒤에는 수많은 계산과 책임, 그리고 지속 가능성을 향한 고민이 놓여 있다. 결과의 화려함만을 유일한 가치로 여기고, 그 화려함을 떠받치는 투명한 과정과 견고한 체계를 그저 ‘비용’이나 ‘제약’으로 치부하는 세태는 서글픈 단면이다. 숫자로 환산될 수 없는 가치를 기어이 숫자로 증명해내야만 그 존재를 인정받는 환경 속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균형을 잡는 일의 무게는 좀처럼 헤아림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숫자와 문장들 사이에서, 예술이 무너지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최소한의 틀을 만들어낸다.

세상은 언제나 완성된 결과물이라는 열매에만 박수를 보내지만, 그 열매가 맺히기까지 수천 번의 조율과 굴곡진 인내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한 번의 공연 뒤에는 수없이 반복된 리허설과 수정,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실패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때로는 무대에 오르지 못한 아이디어와, 실행되지 못한 선택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축적된 시간들이 있었기에, 관객은 단 한 번의 완성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운영의 책임을 맡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일을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의미가 아니라, 상황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그 중심을 놓지 않는 일이다. 막이 오르기 전의 긴장, 공연 중의 모든 변수, 그리고 막이 내릴 때까지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압박. 나는 그 시간 동안 무대와 나의 책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서 있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문제를 문제로 드러나지 않게 처리하는 일. 그것이 이 자리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현장은 늘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가 예술을 위한 선택이고, 어디서부터가 현실의 한계인가. 그 질문에는 정답이 없고, 매번 다른 맥락 속에서 새롭게 답해야 한다. 더 나은 무대를 위해 확장해야 할 것들과, 반드시 지켜야 할 균형 사이에서 우리는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결정은 단순한 판단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들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이다. 그 선택은 예술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때로는 조직을 지키기 위해 단단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하나의 공연이라는 형태로 남는다.

그래서 행정인과 예술인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단지 서 있는 위치가 다를 뿐이다. 한쪽이 무대를 밝히는 빛이라면, 다른 한쪽은 그 빛이 꺼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구조이다. 빛과 구조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그 관계는 때로 긴장과 오해를 동반하지만, 결국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협력의 형태다.

나는 오늘도 무대 뒤 가장 어두운 자리에 선다. 그 자리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감지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막이 오르고 내리는 그 모든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변수들이 조용히 지나가고, 계획된 흐름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완벽한 공연은 ‘아무 문제도 없었던 공연’이기 때문이다. 그 ‘아무 일 없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 채로.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야, 관객들이 오직 황홀경만을 기억하기를 바라며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이 시간은 누구의 것이었는가. 무대 위의 예술가만의 것도, 무대 뒤의 행정인만의 것도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예술인도, 행정인도 아닌, 그 경계 어딘가에서 함께 견뎌낸 사람들의 것이며 서로의 고통과 희열을 나누어 가진 자들의 거룩한 공모지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공모를 반복하기 위해,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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