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훈의 세상읽기]‘철천지 원수’ 미국-이란도 한때 친구였다.
김상훈 기자 goart001@gwangnam.co.kr |
| 2026년 04월 27일(월) 0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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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천지원수(徹天之怨讐)’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하늘에 사무치도록 한이 맺히게 한 원수’라는 뜻인데 극단적이고 화해하기 어려운 원한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지난 2월 28일부터 전쟁을 하고 있는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바로 그 경우다. 이번 전쟁이 40여년 넘게 쌓아온 양국의 불신과 배신, 그리고 보복의 역사가 폭발한 결과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과 이란도 한때는 친구였다. 1925년 쿠데타로 집권한 레자 칸의 팔라비 왕조는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했고 당시 중동 원유에 눈독을 들인 미국은 이 왕조를 적극 지원했다.
하지만 1951년 반외세와 민족주의를 내세운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국민적 인기를 끌며 총리로 취임하면서 미국과 대립했다.
그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했고 소련의 영향을 받은 이란 공산당의 영향력도 커지자 미국은 영국과 함께 이란의 왕정 복원 쿠데타를 부추겼고 결국 1953년 성공했다. 재집권한 팔라비 왕조는 미국과 군사안보 협력을 시작하는 등 강력한 친미노선을 택했다.
하지만 팔라비 국왕은 점차 독재자로 변해 ‘사바크’라는 비밀경찰을 만들어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하고 고문하고 처형까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여기에 1963년 ‘백색혁명’이라는 급진적 현대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통적인 이슬람 가치관과 충돌까지 빚었다.
이러한 왕정 체제의 비민주성과 빈부 격차, 이슬람 전통을 무시한 서구화에 불만을 품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났고 1979년 이런 민심을 등에 업은 아야톨라 호메니이가 이슬람 혁명을 성공시키며 신정일치 체제를 구축했다.
#2
이 때부터 양국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란 혁명지도부는 미국으로 도망간 팔라비 국왕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이에 란 대학생들이 1979년 11월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외교관과 직원 52명을 억류하는 인질사건을 벌여 양국의 적대감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인질들은 444일만인 1981년 1월 풀려났지만 이로 인해 양국은 국교를 단절했고 지금까지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후 양국은 ‘원한이 너무 커 함께 살 수 없다’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관계가 됐다.
1980년부터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이란의 적인 이라크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고 1988년에는 페르시아만에 있던 미 해군 순양함이 이란 여객기를 군용기로 오인해 격추, 290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1996년 8월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하고 이들 국가의 원유와 가스 개발 투자를 금지하는 법을 발표하며 강력한 경제제재에 들어갔다.
심지어 2002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 국가로 지목했다.
이란도 이에 적극 대응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예멘의 후티반국 등을 지원하며 중동전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맞서는 전략을 구사해 나갔다.
#.3
2009년 들어선 미국 오마바 행정부는 양국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 오마바 대통령이 2013년 이란 대통령과 30년 만에 통화를 했고 양측은 핵문제 해결을 위해 협상을 해 나갔다. 2015년 7월에는 양측의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이란이 우라늄 농축 등 핵무기 관련 작업을 중단하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단계적으로 경제제재를 푼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란 핵합의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이 합의는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트럼프는 2018년 5월 이란 핵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경제 재재를 부활시킨 것이다.
2020년 1월에는 이란혁명수비대 최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을 암살 작전으로 제거했고,지난해 6월에는 이란 내 3곳의 주요 핵시설을 스텔스 폭격기 등을 동원해 파괴했다. 이번에도 핵협상을 벌이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전쟁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국제사회의 관계를 규정하는 문장이 있다. 즉, 국가간 관계는 선악이 아니라 손익을 따져 결정된다는 것으로 과거 적이었던 국가와도 공동의 이해관계가 생기면 협력할 수 있고, 과거 동맹도 국익 변화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1970년대 핑퐁외교 등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에게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고 말해 유명해졌다.
반세기 가까이 반목의 역사를 걸어온 미국과 이란도 이런 관계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휴전후 종전협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관심사가 되고 있다.
김상훈 기자 goart001@gwangna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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