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청소년의 꿈을 청년의 삶으로 이어가려면 박형주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장
박형주 gn@gwangnam.co.kr |
| 2026년 04월 27일(월) 18: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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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주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장 |
현행 체제에서 청소년과 청년은 행정의 ‘미아’다. 청소년은 성평등가족부라는 가족 중심 정책의 틀 안에 공고히 묶여 단순한 보호 대상에 그치고 있고, 청년은 고용노동부 등 여러 부처에 산재한 채 차가운 ‘취·창업 데이터’로만 관리된다. 왜 우리가 미래 세대의 삶을 이토록 분절적으로 다뤄야 하는가. 통합 부처 신설이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생애주기의 연속성을 회복해야 한다. 청소년기본법상 청소년은 9세부터 24세까지다. 청년기본법의 청년은 19세부터 시작된다. 즉, 19세에서 24세는 두 법 모두에 속하는 황금기이자 격동기다. 하지만 부처가 다르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의 진로 고민이 대학과 사회 초년생의 삶으로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한다. 청소년기의 정서적 지지와 청년기의 사회적 자립은 하나의 흐름이다. 이를 단절시키는 현재 이원화된 체제는 행정 낭비를 넘어 미래 세대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둘째,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 청소년 정책은 위기관리나 유해 요소 차단과 같은 ‘단순 관리’에 치중해 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청소년과 청년은 지도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주체’다. 부처 독립은 청소년을 가족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수동적 존재가 아닌, 자립 역량을 갖춘 ‘당당한 시민’으로서 존중하고 그들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뒷받침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셋째, 정책의 전문성과 예산의 집중도를 높여야 한다. 성평등가족부라는 방대한 조직 안에서 청소년 정책은 늘 뒷순위였다. 성평등과 가족 이슈에 밀려 청소년 예산은 현상 유지에 급급했다. 청년 정책 역시 국무조정실이 총괄한다지만 실상은 각 부처로 흩어져 컨트롤 타워가 실종된 상태다. 독립 부처가 신설된다면 미래 세대만을 위한 전용 예산을 편성하고, 이들의 삶 전체를 조망하는 전문적인 행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넷째, 국가 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미래 전략적 접근이다. 초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미래 세대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숫자가 적어질수록 그 한 명 한 명에 대한 국가적 투자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진다. 이들을 단순히 ‘인구 정책’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주체로 격상시켜 부처의 위상을 바로 세워야 한다.
다섯째, 수요자 중심의 원스톱 행정을 구현해야 한다. 청년들은 단순히 일자리만을 원하지 않는다. 주거, 심리 상담, 문화 활동, 정치 참여 등 삶 전반의 질적 향상을 원한다. 기존의 사후 관리 위주의 ‘보호’ 중심 접근이나, 경제 지표에만 치중한 ‘취업’ 중심의 분절된 시각으로는 이들의 복잡다단한 요구를 충족할 수 없다. 청소년에서 청년에 이르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정책 체계가 마련될 때 비로소 미래 세대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이 가능해진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이번 논의가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 대한민국 미래 설계의 근간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청소년과 청년을 잇는 ‘미래세대부’의 신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정부는 이들이 더 넓은 광장에서 마음껏 뛰놀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독립된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부처 신설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명확한 컨트롤 타워와 책임 있는 행정 체계는 정책의 질을 바꾸는 결정적인 마중물이 된다. 기성세대가 구축해 온 낡은 틀에 청소년과 청년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이제는 미래 세대의 문법으로 대화하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행정의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때다. 이재명 정부의 결단이 담긴 미래세대부가 그 혁신의 씨앗이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자라날 비옥한 토양이 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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