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운동회와 소풍의 새로운 패러다임

박병진 금구초 교장(교육학박사)

박병진 gn@gwangnam.co.kr
2026년 04월 29일(수) 18:00
박병진 금구초 교장(교육학박사)
운동장에 하얀 먼지가 일던 날들이 있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아이들, 그늘막 아래에서 김밥과 과일을 나누던 학부모들, 이어달리기 마지막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의 함성. 한때 초등학교 운동회는 단순한 체육행사를 넘어 마을 전체가 함께하는 지역문화축제였다.

학교는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었고, 운동회는 그 공동체가 가장 생생하게 드러나는 날이었다. 운동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만남의 장이었고, 아이들의 웃음과 어른들의 정이 자연스럽게 섞이던 자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운동회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마을 축제의 성격은 점차 약해지고, 대신 계주와 각종 스포츠 경기 중심의 ‘체육대회’로 재편됐다.

이후에는 다시 변화가 일어났다. 경쟁 중심의 대규모 체육대회에 대한 부담과 안전 문제, 그리고 교육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더해지면서 학년별 소체육대회로 축소되기 시작했다. 전교생이 한날 한시에 모이는 대신, 학년 단위로 나눠 비교적 간단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준비의 부담을 줄이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지금, 많은 학교에서는 전문업체가 진행하는 놀이형 프로그램으로 운동회가 대체되고 있다. 아이들은 점수를 따기 위해 경쟁하기보다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협동 놀이를 즐기며 자연스럽게 참여한다.

소풍 또한 비슷한 흐름 속에서 변화해 왔다. 예전의 소풍은 자연 속으로 떠나는 하루였다. 도시락을 들고 산이나 공원으로 가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수건돌리기나 보물찾기를 하던 기억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다. 친구들과 어깨를 맞대고 앉아 나눠 먹던 김밥 한 줄, 자유롭게 뛰어놀던 시간은 교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소풍은 점차 ‘현장체험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바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고, 역사와 과학, 문화를 몸으로 경험하는 교육적 활동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단순한 나들이가 아니라 학습의 연장선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학생들은 박물관과 과학관, 문화유산 현장을 방문하며 교실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와 연결 짓는 경험을 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학교가 주도하는 단체 체험학습은 점차 줄어들고,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체험학습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체험의 주체가 학교에서 가정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가족과 함께하는 체험학습을 위해 보통 1년에 2주 이상의 시간을 허용하고 있다.

개별 가정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경험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변화이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아이들이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던 기회가 줄어든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코로나 때문도 아니고, 체험학습 나갔던 버스에서 발생한 안전사고 때문도 아니다. 변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는 늘 변해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변화는 때로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그 방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개는 더 안전하고, 더 포용적이며, 더 교육적인 쪽을 향하고 있다.

운동회와 소풍의 변화도 결국은 진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방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던 가치가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때 교실을 가득 채우던 흰 먼지의 백묵 분필은 사라졌고, 물칠판을 거쳐 이제는 전자칠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수업은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학습 자료는 종이를 넘어 화면 속으로 이동하고 있다.

아이들이 배우는 방식, 교사가 가르치는 방식 모두가 달라지고 있다. 운동회와 소풍의 변화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버스를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던 현장체험학습, 운동장에서 왁자지껄 뛰놀며 먼지를 일으키던 하루, 학부모와 교사가 한데 어울려 웃고 응원하던 장면들은 이제 점점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단체로 이동하며 느끼던 설렘, 친구들과 함께하는 집단 경험은 개인화된 활동으로는 완전히 대체되기 어려운 가치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은 변화의 필요성을 이해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아쉬움을 품게 된다. 나도 그렇다.

다만 학교는 늘 그랬듯, 앞으로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또 다른 추억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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