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 하나 곁에 두고서 '마음의 고요' 꿈꿔

박노식 시집 ‘괜찮은 꿈’ 펴내
시인의 감성 깊이있게 투영
제4부 구성 작품 65편 수록

고선주 기자 rainidea@gwangnam.co.kr
2026년 05월 10일(일) 18:08
시집 표지
박노식 시인
돌부처(시인의 말)를 안고 살아가는 일상에서 괜찮은 꿈 너머에 있을 마음의 고요를 꿈꾸고 있다.

박노식 시인이 마흔두번째 문학들 시인선으로 펴낸 여섯번째 시집 ‘괜찮은 꿈’에서다. 시집 곳곳에서 탐욕과 균열이 간 삶 속 침잠하는 고요의 세계를 갈구한다. 한때 요란스런 일상이 놓였으나 시골로 들어간 이후에는 오히려 고요의 본질을 터득한 듯 보인다. 그는 세상 사람들 모두 고요에 감염되기를 희망한다. 고요에 감명되기 전 그는 슬픔이라는 바이러스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시 ‘슬픔을 바다에 뿌릴 때 불두화는 눈을 뜨고’는 대화 혹은 독백하듯 한 구어체에 기대 풀어가는 시인의 감성이 깊이있게 투영돼 있다. 어쩌면 시집 전체에서 시인의 감성이 가장 농익어 보이는 작품의 하나로 등단 11년만에 여섯권의 시집을 펴냈으니 문체적으로 얼마나 깊어졌는가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늦깎이로 등단한 그로서는 짧은 시간에 비해 많은 시집을 펴냈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련만 그래도 묵묵히 그는 창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듯 싶다. 시인이 시를 쓰고, 작가가 글을 쓰는 것은 지극히 온당한 행위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허투루 창작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뒤늦게 등단해 문인의 프로필을 얻은 만큼 다른 이들이 30∼40년에 걸쳐 해온 일을 본인은 나이도 있고, 주어진 시간도 그들에 비해 짧으니까 창작적 부지런을 떠는 일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한다.

비교적 제목이 긴 시 ‘슬픔을 바다에 뿌릴 때 불두화는 눈을 뜨고’는 이별이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닌데다 자기를 잃어버리는 변곡과도 같은 이치여서 어떠한 결과물을 이미 벗어나버린 상태에 도달한 시적 화자의 심리 상태에 대한 합리적 근거 찾기 정도로 접근했다. 불두화를 통해 다른 상황의 도래를 맞아들이고 있지만 불두화는 꽃만 피지, 열매를 맺지 않는다. 이를테면 결과에 대한 집착이 없다는 의미다.

시인은 ‘…전·중략…//슬픔아, 네가 떠나는 건 내가 이미 변방의 사그라진 조각달인 것을 늦게 알았던 때야//흰, 그리고 둥근 접시를 앞에 두고서 눈을 감는 버릇처럼 생은 낯설고 때론 익숙한 손톱 밑의 반달 같아//잘 가, 슬픔아/때로 너의 바닷가에서 나를 대신 울어 주면서 아프지 않길,//그러니까 넌 웃어, 꼭 웃어 봐, 아프지 않게//곧 불두화가 온 하늘을 하얗게 물들이겠구나’라고 노래한다.

이어 ‘슬픔의 길’에서는 앞선 시와는 다른 결을 이룬다. 여기서 슬픔의 길은 ‘자주 휘고 아주 멀어서 홀로 두고 온 마음처럼 가여워진 길이다. 그 가여워진 길을 오르내렸지만 ’정든 사람들은 다가갈수록 서로의 뒤가 멀어지고 어둠이 깊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을 너무도 잘 인지하고 있다. 앞선 시가 슬픔에 대한 마음가짐을 말했다면 슬픔의 길은 통증이 가득한 상태라는 것이다.

‘…전·중략…//정든 사람들은 다가갈수록 서로의 뒤가 멀어지고 어둠이 깊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비 내리는 밤길을 걷는 일은 아직도 이 길 위에 사랑이 있고 아픔이 있기 때문,//길가의 노란 꽃들은 만발하고 꽃잎의 가장자리는 환하고 여려서 작은 벌들만 즐거워한다//단 한 번으로도 슬픔의 길은 끔찍한 통증을 낳는다’고 읊는다.

‘흐린 날은 생각이 멀리 간다’는 문체적으로 앞 시와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휘어서 겨우 접어든 길인데 이번에는 온통 삶의 저변에 깔린 흐린 날이 문제다. 또 ‘잡념도 없이 한 곳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은 거기에 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마음을 빼앗기는 일과 설움이 하나의 문답처럼 조형성을 습득해간다. 기온이 생각에 미치는 영향을 한번쯤 생각했을 터이지만 시적 화자는 어이해 멀리가는 생각을 상상했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흐린 날에는 모든 말들이 달아나는 출구가 명징해져서 그렇다는 것이다. 흐린 날에는 무언가를 위한 문이 열린다는 인식이다. 시적 화자가 처한 상황의 높낮이에 따라 날씨는 심상적 층위를 명징한다.

이번 시편들에서 시인은 유독 상실의 상황들과 우울한 순간들, 마음의 퇴적아닌 침식과 같은 상황에 몰렸는지 모른다. 다만 시인은 ‘홀로 걷던 불안의 길들이 지워질 때’(‘밤눈’)만이 순백의 세상, 시적 화자의 내면의 고요가 찾아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모두 괜찮은 꿈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로 읽힌다.

이외에 시 ‘아주 오래 혼자인 사람’은 그가 사는 곳으로부터 운주사가 자리하고 있는데 천불천탑과 미륵세상의 염원이 궁구하게 포용된 공간으로부터 마치 잠시 나와있는 듯한 깨달음의 삶의 깊이를 천착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상실이 큰 사람은 침묵을 일찍 배운다’를 비롯해 ‘나는 우울의 집에서 태어나 오래 걸었다’, ‘한 곳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은 거기에 설움이 있기 때문’, ‘한때의 상큼한 노래는 깨어진 조각처럼 뒹군다’ 등 제4부로 구성, 분주한 일상 틈틈이 창작한 시작품 65편이 실렸다.

박노식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앓고 나서 그가 다녀가듯 무정한 것이 시다. 어느 날은 종일 눈이 비고 주위엔 새소리뿐, 헤어질 사람도 애써 맞이할 얼굴도 없으니, 돌부처 하나를 곁에 둔다. 아무도 없다. 나는 여전히 앓고 있다”고 전했다.

곽재구 시인은 시해설에서 “머리를 발보다 낮은 위치에 둔 운주사의 와불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그리워해야 할 시간들, 꾸어야 할 꿈들이 밤하늘 별처럼 깔려 있다. 와불이 운주사에 누워 있는 한 사랑해야 할 시간들을 찾는 항해사들의 항해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노식 시인은 2015년 ‘유심’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을 비롯해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 ‘길에서 만난 눈송이처럼’, ‘가슴이 먼저 울어버릴 때’. 시화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제주에 봄’ 등을 펴냈으며.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받은 바 있다. 현재 화순군 한천면 오지에서 시 창작에 몰두하며 ‘시인 문병란의 집’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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