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슬세권에 깃든 100만종의 우주

김동관 광주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업부장

김동관 gn@gwangnam.co.kr
2026년 05월 19일(화) 16:56
김동관 광주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사업부장
매년 5월 22일은 UN이 지정한 ‘국제 생물다양성의 날’이다. 1992년 브라질 리우 지구정상회의에서 생물다양성협약이 채택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이날은 단순히 동식물을 보호하자는 구호를 넘어, 지구가 존재하는 근간이자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지탱하는 생물다양성의 절대적 가치를 되새기는 날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류 사회가 유례없는 물질적 번영을 구가할수록 그 번영의 토대이자 생명줄인 생태계는 심각한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산업혁명 이후 불과 200여년 사이 인류는 거주지의 중심을 자연 부락에서 도시로 급격히 옮겼다. 현재 한국 인구의 약 92%가 국토 면적의 17%에 불과한 도시 공간에 밀집해 살고 있다. 도시는 전 세계 GDP의 70% 이상을 창출하는 자본과 인구의 중심지이지만, 지구 전체 면적의 2%에 불과한 이 좁은 공간에서의 밀집된 삶은 자연의 희생을 당연한 전제로 삼아왔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도시 아래에서 생태계의 실핏줄은 끊겼고, 우리는 자연과 분리된 채 인공적인 풍요 속에서 안주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생물다양성은 결코 문명과 동떨어진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문명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둥이다. 식량, 물, 의약품, 기후 안정 등 인류 생존의 필수 요소 대부분을 우리는 자연에 의존한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전 세계 GDP의 절반이 넘는 약 44조달러의 가치가 자연 자본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육지와 바다 생태계는 인류가 내뿜는 탄소의 절반 이상을 묵묵히 흡수하며 기후 재난의 최후 보루 역할을 수행한다. 문제는 생태계가 촘촘하게 얽힌 그물망과 같다는 점이다. 한 귀퉁이가 끊어지면 전체 시스템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현재 지구상에서는 약 100만종의 생물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과거 강력한 탄소 흡수원이었던 습지와 숲은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돼 오히려 탄소를 뿜어내는 배출원으로 변해가고 있다. 인간 사회의 풍요가 생물다양성의 급격한 감소를 야기하고, 그 결과가 다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비극적 아이러니의 정점에 우리는 서 있다.

올해 생물다양성의 날 슬로건은 ‘Acting locally for global impact’이다. 거창한 국제협약이나 정부 간 담론만큼 중요한 것은 결국 생태계를 회복시키는 실질적인 힘이 우리 마을, 우리 지역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0년대 중반 광주에서 싹튼 ‘광주 앞산뒷산 네트워크’ 활동은 매우 선구적이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이 활동은 무등산처럼 이름난 국립공원이나 주요 명산에만 주목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우리가 매일 산책하며 마주하는 해발 100~500m의 ‘동네 산’과 근린공원을 지키자는 절박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시민단체와 마을 활동가들이 힘을 모은 이 연대는 도심 생태 공간을 조성하고 동식물 모니터링을 통해 지역의 생물다양성을 꼼꼼히 기록해 왔다. 이는 단순한 환경 보전 운동을 넘어 숲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단절됐던 시민들을 연결하고, 공동체의 정서적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이제 생태 보전의 주체는 전문가나 특정 시민단체를 넘어 마을 공동체 전체로 확장돼야 한다. 광주의 96개 동이 주민자치회로 전환되면서 주민들은 마을의 문제를 스스로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치계획’을 수립할 권한과 책무를 갖게 됐다.

이제 자치계획 수립 과정에서 우리 마을에 어떤 생태 자원이 있는지, 어떤 작은 생물들이 함께 살고 있는지를 살피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단순히 편의시설을 늘리는 행정을 넘어 생물다양성 보전이 주민 삶의 질 향상과 건강으로 이어지는 ‘생태적 마을 의제’가 적극적으로 발굴돼야 한다.

동네 작은 숲의 나무 한 그루가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마을 습지의 생태계가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장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지방정부의 행정적·재정적 유도와 제도적 장치 마련 또한 시급한 과제다.

도시 시민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생태 시민성’의 발현이다. “내 집 앞 10분 거리의 녹지가 나의 건강과 행복을 결정한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마을의 작은 녹지 보전 노력이 전 지구적 위기를 해결하는 단초가 된다는 자부심도 가져야 한다.

지구적인 시각으로 우리 마을을 다시 바라보자. 우리가 지역에서 선택하는 삶의 방식과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지구의 지도를 바꾸고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이번 생물다양성의 날을 맞아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우리 동네 앞산과 뒷산에 핀 이름 모를 들꽃과 나무, 그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피는 일부터 시작해 보길 제안한다. 그 작은 시선이 모여 거대한 생명의 그물망을 다시 짜는 위대한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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