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탄광마을 이야기, 국경 넘어 평화의 메시지로

청풍초 학생들 제작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
우크라이나 국제청소년영화제 개막작 선정

정채경 기자 view2018@gwangnam.co.kr
2026년 05월 20일(수) 11:36
탄광마을의 기억을 품은 이야기가 국경을 넘어 전쟁의 땅으로 향한다. 포탄이 떨어지는 우크라이나로 전남 화순지역 아이들이 만든 영화 한 편이 떠나는 것. 작품에는 거대한 자본도, 유명 배우도 없다. 대신 폐광마을에서 살아온 할머니와 광부들의 기억, 그리고 아이들의 진심이 있다. 이같은 영화가 전쟁의 땅에서 가장 먼저 상영된다.

19일 영화 제작사 무당벌레에 따르면 박기복 감독이 청풍 할리우드 영화학교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한 영화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가 2026 ICJ국제영화상에 공식 초청됐다.

작품은 개막 프로그램 상영작으로 선정돼 9월 12일 우크라이나 서부 우즈호로드(Uzhhorod) 성에서 열리는 레드카펫 행사에서 공식 상영된다. 이와 함께 국제 영화교육 프로젝트 ‘Cinema in Schools’ 프로그램으로 우크라이나 현지 100여 개 학교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 국제청소년영화제는 전쟁 상황 속에서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평화, 미래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열리는 국제 문화행사다. 영화제가 열릴 우즈호로드는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이 격화되면서 행사 장소 변경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공식 초청된 ‘할머니와 나와 민들레’는 화순 폐광 지역을 배경으로 제작된 어린이 장편영화다. 폐광 마을로 전학 온 손녀와 치매에 걸린 할머니, 그리고 학생들의 우정과 성장을 그리며 지역의 역사와 공동체성을 다룬다. 화순탄광은 일제강점기 첫 채굴을 시작한 이후 118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전남도교육청과 화순군의 지원 아래 청풍초 전교생이 감독, 배우, 스태프 등 영화 제작 전 과정에 참여해 해지역 탄광 역사와 광부들의 삶, 노동의 의미를 배우고 기록한 가족영화로 완성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가진 힘은 진짜 이야기라는 점이다. 학생들은 촬영 과정에서 직접 광산의 역사를 조사했고, 지역 어르신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탄광마을이 지나온 시간을 배웠다. 교실에서 배우는 역사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을 영화 속으로 옮겼다.

작품은 기획 단계부터 지역사회와 교육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1년 전 학생들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카메오로 특별 출연한 김대중 교육감 후보의 연기, 전남도교육청이 주최한 ‘제2회 전남도 작은학교 영화·영상제’ 수상, 화순시네마 무료 상영회를 통해 지역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우크라이나 초청은 단순한 영화제 진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쟁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이 영화를 만나게 된다는 점에서 작품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화순의 아이들이 폐광마을의 아픈 역사 속에서 사람과 공동체의 가치를 발견했듯, 우크라이나의 아이들도 영화 속 이야기를 통해 상처를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언어와 국경은 다르지만 아이들이 만든 영화가 아이들에게 전하는 마음은 결국 평화와 연대라는 하나의 메시지로 이어진다. 청풍초 학생들은 영화제가 평화롭게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영화제 기간만이라도 휴전이 이뤄지길 촉구하는 서한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사법 관련 기구에 전달할 계획이다.

총괄 연출을 맡은 박기복 감독은 “학생들과 함께 지역의 아픈 역사와 광부들의 삶을 영화로 남기고 싶었다”며 “작은 시골학교 아이들의 진심이 전쟁 속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으로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한 청풍초 학생은 “촬영을 하며 광부들의 삶과 노동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됐다”며 “우리 영화가 해외에서도 상영된다고 하니 매우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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