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 칼럼]통합특별시는 남도땅을 K-문화산업의 허브로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문학박사)

광남일보@gwangnam.co.kr
2026년 05월 26일(화) 18:42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
AI와 반도체, SNS가 세상을 지배하는 속도의 시대, 동시에 국경을 넘어서는 글로벌 시대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결코 변해서는 안 될 가치가 있다.

인간다움, 그리고 고유의 전통이다. 전통은 한 나라와 지역의 정체성이자 품격이다. 모든 경계가 무너진 오늘날, 전통은 시대에 뒤처진 가치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시대일수록 전통은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위안과 균형을 제공하는 근원이 된다.

이제 ‘K-컬처’는 한국을 상징하는 보편적 용어가 됐다. 전통과 현대적 감각이 결합된 K-컬처는 음악과 드라마, 영화를 넘어 음식, 뷰티, 웹툰 등 삶의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곧 한류의 세계적 확산을 의미한다. 정부가 ‘K-문화 강국’을 주요 국정 방향으로 삼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한류는 단순한 콘텐츠 산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인간 삶의 질과 깊이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된다.

필자는 K-문화의 중요한 원천이 남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남도’는 단순한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을 의미한다. 광주와 전남으로 대표되는 남도에는 한국적 삶의 정서와 문화가 집약돼 있다.

오랜 세월 속에서 쌓여온 고단한 삶의 기억과 이를 이겨낸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 그리고 한(恨)과 흥이 어우러져 있다. 그런 점에서 남도는 특정 지역을 넘어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가 살아 숨 쉬는 근원지라 할 수 있다.

시인 송수권 역시 남도의 정서가 한국인의 정서를 대표한다고 보았다. 그는 남도의 정신을 황토, 갯벌, 대나무로 설명한다. 황토와 갯벌은 생명력과 개척 정신을 상징하며, 대나무는 절개와 풍류, 그리고 저항의 기질을 함께 담고 있다.

대나무는 사군자의 하나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동시에, 때로는 죽창이 되고 때로는 대금이 되는 이중적 상징성을 지닌다. 이는 평소에는 여유와 풍류를 즐기면서도, 불의 앞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남도 사람들의 기질과 맞닿아 있다. 동학농민운동, 항일 의병,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은 이러한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남도의 풍류 정신이다. 한국인은 예로부터 흥과 신명이 넘치는 민족이었다. 춤과 노래, 그림과 건축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예술에는 해학과 멋, 그리고 삶의 여유가 스며 있다. 그중에서도 남도는 이러한 풍류가 가장 풍부하게 살아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남도를 흔히 의향·예향·미향이라 부른다. 풍류는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한국 전통문화의 정수이며, K-문화의 뿌리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작 그 뿌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 벌교의 유기(鍮器), 장흥의 제와(製瓦), 보성의 삼베 짜기, 광양의 장도(長刀)와 궁시(弓矢), 곡성의 돌실나이, 판소리와 민요, 남도 음식과 전통술 등 수많은 문화가 사라졌거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한때 번성했던 충장로의 한복 산업 역시 크게 위축되었고, 남도의 전통 예술과 생활문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산업의 쇠퇴가 아니라, 한 나라의 정체성의 소멸과 문화의 단절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2019년 ‘대동전통문화대상’이 제정돼 30년 이상 전통을 이어온 장인들에게 ‘한우물상’을 수여하고 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민간단체인 대동문화재단이 상금 등 일체 경비를 시민 모금으로 마련하여, 전통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 계승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과거는 미래를 위해 존재하며, 우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 전통은 낡은 유산이 아니라 ‘오래된 힘’이다. 한 나라의 고유한 문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K-문화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인재를 키우고 토양을 가꾸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7월부터 출범하는 전남광주특별시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는 기회이자 동시에 도전이다. 산업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과 식문화야말로 인간 삶의 근본적 가치이자 지속 가능한 미래 자원이다. 광주와 전남의 가장 확실한 경쟁력은 문화예술 산업에 있다. 고유의 전통을 보존하고 재창조하기 위한 지속적인 투자와 정책적 관심이 절실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남도 고유의 문화와 정서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서 팔아야만 보배로서 가치가 있다.

남도땅 곳곳에 산재 한 문화예술과 식문화 등 풍류 자원들을 효율적으로 가공하고 재생산, 상품화해야 한다. 남도 땅이 K-문화산업의 허브로 거듭나기 위해서도 문화의 깊이를 담아낼 수 있는 더 큰 그릇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문화 관련 숙제들을 꼼꼼히 챙기고 풀어내야 할 때임을 결코 잊어 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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