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세평]눈먼자들의 오월

박병훈 톡특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대표

박병훈 gn@gwangnam.co.kr
2026년 05월 27일(수) 18:12
박병훈 톡톡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대표
오월이 그려낸 신록이 참으로 푸르다. 오월의 장미는 신록을 빛내는 화룡점정이다. 그 오월의 장미가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다. 1980년 오월은 핏빛이었다. 그 과정에서 연대와 나눔은 더욱 빛났다. 저항의 오월 위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서있다. 광주가 흘린 오월의 눈물로 영근 민주주의의 열매를 따먹고 있는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는 오월 계엄군의 탱크만큼이나 잔인하다. 해괴한 논리로 이를 옹호하고 있는 자들의 뇌구조도 연구대상이다.

눈먼자들이 광주의 오월을 마구 할퀴고 있다. 국가폭력의 범죄 피해자를 모욕한 행위는 그 무엇으로도 변명되거나 용서될 수 없다.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라는 소설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강한 의문이 담겨 있다. 이 소설은 우리의 일상을 정반대로 뒤바꿔놓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가치와 윤리를 상실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 묵시론적 작품이다. 한 남자가 차를 운전하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영문도 모른 채 눈이 먼다. 사람들은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리는 것처럼 눈이 멀어간다. 이상한 전염병은 도시 전체를 뒤덮으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간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눈이 멀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단순이 시각을 잃었다는 것이 아니다. 물질에 눈이 멀었을 뿐만 아니라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 인간이 지녀야 할 인간성조차 쉽게 말살하고 있어 더욱 더 눈먼자들이라는 점이다. 스타벅스코리아의 행위가 그렇다.

‘눈먼자들의 도시’는 실명과 침묵이라는 서사를 통해 인간의 무책임한 윤리의식과 붕괴된 가치관, 폭력이 만연한 현대사회를 날카로운 작가의 시각으로 해부하고 있다. 눈이 먼 전염병에 감염된 사람들은 수용소에 격리된다. 격리 수용된 ‘눈먼자’들은 그곳에서 다른 눈먼자들의 선동에 따라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또다른 만행을 저지른다.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는 명백한 공격이자 만행이다. 신경증 시대에 눈먼자들이 벌이는 공격이다. 이들은 타인의 관심에 집착한다. 자기가 원하는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지 않으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갈망들을 자기도 모르게 드러낸다.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소리는 크게 외치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돈이나 지위같은 겉모습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공격적 행동을 보인다. 이들의 공격성은 무조건적인 반대로 표현된다. 타인에 대한 비방과 폄훼로 나타난다. 혐오를 통해 자신의 불안을 억누르며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 합리화시킨다.

어떤 행동이 공격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한 가지는 피해자나 관찰자의 주관적인 사회적 명명 과정을 포함한다. 심리학자인 반두라는 공격성을 ‘행위자보다 평가자가 공격적이라고 여기는 가해적이며 파괴적인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사람들이 공격적이라고 명명하는 모든 것은 공격행동이라는 것이다. 공격에는 적대적 공격과 도구적 공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적대적 공격은 공격행동의 목적이 가해 그 자체일 때를 일컫는다. 이에 비해 도구적 공격은 돈, 지위, 권력, 자존심을 얻기 위한 공격을 말한다. 사회학습이론에 따르면 공격행동은 본보기 인물을 모방할 때 더욱 자주 발생한다. 폭력에 자주 노출되면 실생활에서 공격행동을 증가시킨다. 이에 더해 모방학습으로 인한 공격행동은 지속되기도 한다. 사람은 공격행동으로 인해 처벌받는 본보기인물의 행동보다 보상을 받거나 처벌을 피하는 인물의 행동을 더 모방하기 쉽다.

한편 관찰자와 본보기 인물의 입장이 유사할수록 모방공격 행동이 증가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본보기인물이 공격적 목적에 사용하는 도구를 보았을 때 그들이 보았던 물건을 공격적인 목적에 사용하기 쉽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공격행동의 모방과 관찰은 공격성을 증가시키기도 하지만 이타행동과 같은 친사회적 행동을 감소시킨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들에 대한 단호한 응징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눈먼자들에게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던 오월이 정의의 오월, 핏빛의 오월, 나눔과 연대의 오월로 다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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